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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순응 얻는 ‘3차원 권력’ 탐구…은폐된 지배 폭로하며 자유·정의 강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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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룩스가 2014년 7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한 잡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티븐 룩스가 2014년 7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한 잡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나 힘’을 의미하는 권력은, 저마다의 해석과 적용으로 인해 종종 부정적인 의미나 현상을 배태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2024년 겨울, 다시 광장에 나서야 하는 시민들로서는,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기에 현직 대통령이 내란의 수괴가 되었나, 하는 자괴감 섞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스티븐 룩스 미국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의 ‘권력이란 무엇인가–3차원적 권력의 근본적 해부’는 광의로 보면 역사 이래 인류가 직면했던, 협의로 보면 지금 우리 시대가 직면한 권력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1974년 처음 출간되었는데, 국내에는 1992년 ‘3차원적 권력론’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바 있다. 스티븐 룩스는 2005년 제2판에 이어, 2021년 여든 살 나이에 제3개정판을 출간했는데, 이번 책은 제3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경제학자 현동균은 역자 서문에서 이 책을 일러 “현대적 권력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자 필독서”라고 말한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간접적 형태의 권력을 통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행사되고 있고, 사실 국민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일반인에게는 명백하게 드러나는 권력 행사조차도 볼 수 없도록 이미 세뇌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에 더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스티븐 룩스 지음, 현동균 옮김 진인진, 4만5000원

권력이란 무엇인가 스티븐 룩스 지음, 현동균 옮김 진인진, 4만5000원


스티븐 룩스 주장의 핵심은 ‘권력이 지배에 대한 자발적 순응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로 귀결된다. 그는 “우리에게 권력이라는 개념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즉 우리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묻는 것”이야말로 “권력이 사람들을 호도하고 그들의 판단을 왜곡함으로써 사람들 자신의 ‘이해관심’에 반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런 전제 아래 지은이는 권력을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한다. ‘일차원적 권력’은 가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즉 눈으로 쉽게 관찰되는 물리적 권력이다. 여기서 ‘차원’이라는 개념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대상이 가진 측면을 지시하거나 또는 그 대상들을 볼 수 있게 되는 방식”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일차원적 권력은 “정치적 참여에 의하여 드러나는 명시적인 ‘정책적 선호’를 뜻한다. 한편으로는 “관찰될 수 있는 (주관적) 이해관심의 갈등이 존재하는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나타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견해”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과 넬슨 폴스비 등은 “미국의 정치 체제 전체에서 권력이 실제로 다원적으로 분산되어 있음을 (그 결론으로서) 입증”하고자 했다. 이들은 엘리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정치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 대중과 다양한 이익집단의 견해가 반영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권력은 이미 다원화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티븐 룩스는 다원주의의 관점과 접근법, 방법론이 ‘다원주의’라는 결론만을 도출하는 하나의 시스템적 요소임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비(非)다원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차원적 권력’은 권력자의 이해·관심에만 부응하는 시스템이다. 이미 정해진 결정 사안의 범위 밖의 사안은 논의에서 배제함으로써 권력을 지키는 것이다.



시민의 사회적 삶은 “권력과 구조의 상호작용”, 즉 “능동적이면서 동시에 구조화되어진 양면적 본질을 지닌 행위주체들이 자신의 주어진 한계들 내에서 선택하고 전략을 추구하는, 그러한 가능성들로 촘촘히 엮여 있는 일종의 그물망” 안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지은이는 ‘삼차원적 권력’의 필요와 가치를 탐색한다. 삼차원적 권력은 “상대방의 순응을 확보하는 역량으로서의 권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스스로 선택하고 있으며, 자신들만의 독자적 ‘이해관심’을 추구하고, 모든 주장을 합리적으로 평가하며, 그리하여 자신들의 결론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작되자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작되자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결국 관건은 권력이 “피지배자로부터 ‘지배’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확보하는 ‘역량’”이다. 때론 “정상적이면서도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조차 ‘지배’”로 간주되기도 하고, 그 반대 상황도 얼마든지 발현될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지은이는 미셸 푸코의 말을 빌려 삼차원적 권력도 완전하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력은 자신의 상당 부분을 숨길 수 있는 상황 하에서만 (피지배자들에게) 용인될 수 있다. 권력의 성공은 자신 고유의 메커니즘을 숨길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한다.”



지은이는 삼차원적 권력이 그간의 권력 논의에서 가장 이상적인 이론임을 설파하면서도 책의 마지막 장인 ‘5. 삼차원에 대한 탐구’에서 ‘사차원적 권력’의 가능성을 잠시 논의한다.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의 추출”이 날로 발전하면서 “권력의 효과와 범위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지만, 지은이는 “권력이 작동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여전히 삼차원적 권력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기저라고 본 셈이다. 그럼에도 삼차원적 권력은 각종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단지 정치 혹은 경제적 도전이 아닌 ‘위해적 불확실성’이 지엽적인 문제에서 전 지구적 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면 “사람들이 가진 ‘인식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통제되지 않는 ‘삼차원적 권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자유와 정의의 기반이 되는 권력과, 그것의 지배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여러 학자들의 방대한 정치‧사회이론을 훑으면서도, 한 사회가 유연하게 작동하는 권력의 방향성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다시, 지은이의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각기 달리 표현될 수밖에 없지만 한겨울 광장으로 나서는 시민들은 이미 “우리에게 권력이라는 개념이 과연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즉 우리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묻고 있을 것이다. 의연한 시민들의 바람은, 곧 실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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