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불안으로 내년 1분기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할 것이다.’(블룸버그인텔리전스)
‘한국의 정치적 마비는 이미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유라시아그룹)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지난 7일 한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 경제가 계엄 사태로 이전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는 해외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9일 금융투자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4년, 2016년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게 이 보고서의 골자다. 앞서 한국 경제는 2004년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정치적 혼란을 딛고 성장했지만, 2024년엔 중국의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골드만삭스는 다만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자산 보유액이 과도한 시장 불안과 원화 가치 급락 발생 시 증권·외환시장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고, 통화·재정정책 여력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긴급 유동성 지원과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예고한 금리 인하 등 추가적인 통화 부양책이 준비 중”이라며 “정치적 안정이 회복되고 잠재적인 과도기적 조치가 명확해지면, 상대적으로 낮은 정부 부채를 고려할 때 향후 재정 완화는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성장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야당의 추가 탄핵안 발의와 과도기적 내각 구성, 개헌 논의 등을 주목해야 할 주요 이벤트로 꼽았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6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까지 경제·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적 긴장이 고조돼 경제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 국가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여파가 장기화하면 예산안을 비롯한 중요한 법안을 효과적으로 통과시키거나 경제 성장 둔화,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인구 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제약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이미 약세를 보이는 기업·소비자 신뢰가 약화하면 내수에 부담을 주고 경제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한국 자산에 대한 투자자 선호도를 떨어뜨려 금융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미국·중국과의 지정학적 관계, 반도체에 대한 투자 전망, 재정정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따라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명동거리에서 시민 및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앞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도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또는 재정이 약화되면 신용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내년 1분기 방한할 중국인 관광객이 83만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사회 불안에 대한 우려로 방한 시기를 미룰 것이며 이런 우려는 설 연휴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도 “정치적 마비는 이미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경제위기를 막더라도 시위 증가와 더불어 파업과 더 폭력적인 형태의 반대 시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싱가포르의 인터치 캐피털 마켓도 “당국의 투자자 심리 안정 노력에도 탄핵 표결 불성립에 대한 일부 실망감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경제매체 포브스의 수석 기고자인 윌리엄 페섹은 ‘윤석열 대통령의 절박한 묘책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위협하는 이유’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가 옳다는 걸 보여줬다”며 “중국의 경제 둔화, 미국의 정권 교체 등에 직면한 한국이 계엄 사태로 정치적 마비상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아시아에서 계엄령을 연상할 때 이제는 한국도 포함할 것”이라며 “계엄령이 한국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높였다”고 부연했다.
이상혁 선임기자, 조성민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