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9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공수처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사건 이첩 요구 언론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윤석열 대통령 긴급체포와 관련) 법과 원칙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끝까지 수사할 것(박세현 검찰 특별수사본부장, 8일 브리핑) " " 대통령도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면 긴급체포할 수 있다.(경찰 국수본 특별수사단 관계자, 9일 오전 브리핑) " " 신병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아무런 제한 없이 국가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9일 오후 국회 법사위) "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윤석열 대통령 내란죄 수사에 검찰 특별수사본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에 이어 공수처까지 뛰어들어 세 수사기관이 윤 대통령 체포·구속 등 신병확보를 위한 흡사 쟁탈전을 벌이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법무부에 윤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도 요청해 현직 대통령을 처음으로 출국금지했다.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의혹 검찰·특검 수사 당시엔 현직 대통령 신분인 점을 고려해 출금은 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이에 더해 “공수처가 수사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검·경은 13일까지 사건을 모두 이첩하라”고 통첩하기도 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검찰과 경찰은 내란자 사건 수사 대상자와 관계에 있어 공정성 논란이 있다”며 “공수처는 누구에게도 수사보고 하거나 지휘받지 않는 독립된 수사기관”이라며 이첩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인 점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계엄 심의에 참석한 점,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12·3일 비상계엄 당일 국회 출입 통제로 불법 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된 점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열어 사과를 하고 있다.2024.12.7 대통령실 제공 |
반면에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 이첩요구를 “법리에 따라 검토 중이다”라면서도 내부적으로 수사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법상 이첩요구 시한·요건·범위 등 세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뭉개기에 나선 것이다. 우종수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국수본은 내란죄의 수사 주체로서 무겁게 책임감을 느낀다”며 수사 의지를 보였다.
검·경 내부에선 공수처가 오동운 처장과 이 차장을 포함해 가용한 검사가 13명에 불과하고 지난해부터 1년여 벌여온 순직해병 사건 수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란죄 수사에 뛰어든 데 대해 “국가 중대 사건 수사역량을 갖고 있나”란 의문도 제기된다. 공수처는 6~7일 김용현 전 장관, 군 지휘부 및 경찰 수뇌부에 대한 체포·압수수색·통신영장 등 10여 건을 법원에 청구했으나 “경찰 등과 중복 청구”를 이유로 줄기각 당했다고 한다.
특히 검찰 특수본은 12·3 비상계엄 내란죄 수사에서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신병을 가장 먼저 확보한 상황이어서 전날에 이어 9일 김 전 장관에 대한 3차 조사를 벌이며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막바지 수사를 이어갔다.
검찰과 경찰이 13일까지 사건 이첩을 최종 거부하면 내란죄 수사는 3개 수사기관이 동시에 같은 사건을 수사하는 상황이 계속되게 된다.
이처럼 ‘수사기관의 삼국지’처럼 검·경·공이 한 사건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게 된 건 문재인 정부 시절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 등의 결과다. 2021년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지고, 경찰은 1차 수사권을 갖게 됐다. 또 경찰은 내란죄 등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반면에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는 최종적으로 부패·경제범죄 등 2개 범죄로 축소됐다.
야당·시민단체가 세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제출할 당시만 해도 검찰과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수사권이 있는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직접 수사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11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검·경·공, 명운 건 수사 총력전
수사팀 규모와 속도 면에서도 각 수사기관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6일 박세현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총 20명의 검사와 30여명의 검찰 수사관, 그리고 국방부로부터 각 군 검찰단 소속 군검사 5명과 군수사관 7명 등 12명을 파견받아 총 6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경찰 국수본 역시 120명 규모의 기존 전담수사팀을 최근 150명으로 확대했다. 김 전 장관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 등 물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박세현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
공수처는 4일 순직해병 등 모든 사건 수사를 일시 중단한 채 ‘비상계엄수사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이다. 이대환 수사3부장검사를 팀장으로, 오동운 처장과 이재승 차장 그리고 휴직이나 사직 의사를 밝힌 검사를 제외한 공수처 검사 11명과 수사관 36명 등 공수처 인원 전원이 투입됐다. 이 차장은 이날 “현재 비상계엄 관련한 국가 중대사가 더 우선이라 순직해병 사건 조사 등은 미룰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수사기관이 각자의 다급한 사정을 갖고 수사에 임하고 있다”며 “경찰은 사건에 관여돼 ‘셀프 수사’라는 비판까지 듣고 있어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권 폐지나 조직 해체 여론이 있는 검찰과 공수처로서도 내란죄 수사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 조직을 살려야 한다는 동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수사기관들의 내란죄(형법 87조) 수사권한과 중복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천 처장은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법률상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지에 대해선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검찰청법 해석상 가능한지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천 처장은 “세 수사 기관에서 동시에 수사권 관할 경쟁을 벌이다 보니 재판 절차의 적법성이나 증거 능력의 적법성으로 바로 직결되는 문제”라며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법관들이 굉장히 신중하고 무겁게 이 사건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