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성과 불법성이 속속 확인되며 내란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세계 각국 정상들을 서울에 모아놓고 제3회 민주주의정상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말과 전혀 다른 행보로 국제망신을 사면서, 미국 주도로 갓 출범한 국제회의 위신에까지 먹칠을 한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여정” 외친 尹
지난 3월 회의 당시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조 바이든 미국 당시 대통령의 주도로 2021년 12월 처음 개최된 비대면 화상 국제회의다. 약 110개국 정부와 시민사회, 민간 분야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반권위주의, 부패 척결, 인권증진 등의 의제로 진행됐다.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여정” 외친 尹
지난 3월 회의 당시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조 바이든 미국 당시 대통령의 주도로 2021년 12월 처음 개최된 비대면 화상 국제회의다. 약 110개국 정부와 시민사회, 민간 분야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반권위주의, 부패 척결, 인권증진 등의 의제로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2021년 12월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과 우리의 경험을 공유했다. 지난해 3월엔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미국,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잠비아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올해 3월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됐다. 3차 회의는 미국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한국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이라 의미가 더 컸다.
지난 3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회식을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윤 대통령은 폐회사를 맡아 “민주주의는 세계의 안보와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세계 도처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와 반지성주의가 고개를 들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도전에 맞서는 우리의 사명과 책임이 막중하다”며 “대한민국은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를 다져나가면서 세계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무슨 말 했나 따져보니…
윤 대통령은 1년 전 열린 2차 회의의 인도·태평양 지역회의때도 환영사를 하면서 “민주주의 위해 지원을 필요료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향후 3년간 1억달러 규모의 개발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지원의사를 밝히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자세하게 연설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고, 또 법치는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로서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의 공존을 가능케하는 제도”라며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는 것이 바로 부패”라고 했다.
그는 “부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며 “특정 집단과 세력이 주도하는 허위정보 유포와 그에 기반한 선동, 또 폭력과 협박, 은밀하고 사기적인 지대추구 행위, 이런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무력화시킨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그동안 반부패 법제를 개선하고 형사사법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부패 대응 역량을 강화해 왔다”며 “법에 기초한 성역 없는 수사와 엄정한 처벌은 부패 대응의 기초”라고 했다.
또 “자유, 인권, 법치, 민주주의라는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함께 연대하여 초국가적인 부패 범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연설 내용은 국내에서 제기된 자신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모든 논란과 배치된다.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강조했지만, 비상계엄포고령에는 현행 계엄법조차 초월한 내용인 ‘국회활동 금지’를 명시했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심야에 문자로 장관들을 호출해 개최한 국무회의에 몇명이 참석했는지, 정족수는 채웠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비상계엄 실행 과정에선 대북 참수작전을 훈련해온 군인들에게 ‘북한으로 가는 것’이라며 허위정보를 제공해 동원, 국회에 폭력적으로 진입하게 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대국민담화때에도 “종북 척결”을 위한 것이라며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로 군인을 보내 금새 ‘허위선동’임이 드러났다. 비상계엄은 충암고 출신이라는 ‘특정 세력’이 ‘허위 선동’을 하며 일으킨 친위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또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것 등을 근거로 수년째 선거부정을 주장해 수익을 창출해온 극우 유튜버들에 대통령이 과몰입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윤 대통령 자체가 ‘특정 집단과 세력이 주도하는 허위정보 유포와 그에 기반한 선동’이라는 사회병리현상의 일부가 된 형국이다.
‘폭력과 협박’의 경우 자신의 골프장 출입을 보도한 언론사,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한 언론사, 2022년 대선 검증보도 일환으로 윤석열 당시 후보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한 수사와 소송 등을 들 수 있다.
‘은밀하고 사기적인 지대추구 행위’와 관련한 의혹도 수두룩하다. ‘지대추구(Rent Seeking)’행위란 미국 경제학자 고든 털럭이 처음 소개한 것으로 ‘정부개입에 의해 발생하는 인위적 지대를 획득하기 위해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를 뜻한다. 관련한 대표적 의혹으로 대통령실 이전, 관저 이전,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을 들 수 있다.
‘성역없는 수사와 엄정한 처벌’을 외친 것과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디올백 수수 등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들에서 ‘수사의 성역’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최근 부상한 ‘명태균 게이트’는 조작된 여론조사가 대통령 선거에 유포됐고,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대통령으로서는 해선 안 될 ‘공천 개입’까지 발생했다는 의혹이다. 윤 대통령 연설에 나오는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 왜곡’의 결정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유리창이 계엄군의 진입 시도로 깨져 있다. 최상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주의 진영’에도 민폐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신냉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국제사회가 진영화하고 진영 대립의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이 ‘민주주의’라는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앞세워 연대를 강화하고 영향력을 확대해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는 배경에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나 미국과 대립적 경쟁 중인 중국 등을 ‘권위주의 진영’ 국가로 묶어 이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앞세운 정당성과 위신이 훼손되는 문제는 회의체에까지 악영향을 주는 심각한 ‘민폐’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에 핵심 역할을 부여하면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야심차게 출범시켰던 미국은 연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극도의 불편한 기색을 표출하고 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윤 대통령이 심각하게 잘못된 판단을 했다(President Yoon badly misjudged)”고 직격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계엄 선포 직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라며 “특정 국가의 법과 규정이 준수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의 희망이자 기대”라고 지적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국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조태열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계엄에 우려”를 표하고 “계엄해제에 환영의 뜻”을 밝히며 “향후 모든 정치적 이견이 평화롭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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