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
■
현대미술사의 전복과 도발 행위
자본주의 문화논리, 상품화 의심
도발적 태도가 시장 이익에 봉사
관객 시선 사로잡는 마케팅 전락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메리카’, 2016년. |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12만 달러(약 1억6000만원)에 거래되어 화제가 되었던 그의 작품 ‘코미디언’이 5년 만에 중국의 가상화폐 사업가에게 620만 달러(약 87억원)에 판매되었으니, 이러한 시장의 논리가 놀라울 따름이다. 변질하기 쉬운 바나나는 전시 중에 수시로 교체가 필요한 작품이지만, 이번 경매는 설치 매뉴얼과 인증서가 어떻게 미술시장에서 상품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개념미술의 형태로 3개의 에디션 중에서 1점은 이미 소장가에 의해서 구겐하임미술관에 기증되었고, 앞으로도 화제성 담론으로 미술사에 꾸준하게 회자될 것이다.
카텔란은 바나나 작품 이전에도 2016년에 18K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를 구겐하임미술관에 1년간 설치하고 방문객들에게 실제 사용하게 하여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은 바 있다. 그는 사회적 상식에 도발하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의도적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 변기’나 ‘바나나’는 ‘현대사회의 풍자와 비판, 조롱’이라는 작가적 관점에서 볼 때 낯선 도발 행위가 아니다.
전시장의 관람객 반응을 고려한 전복과 교란 행위는 뒤샹 이후 제도비판이나 개념미술 형식으로 현대미술에서 반복되어 나타났다.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이러한 행위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작가가 이미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지위에 있고, ‘예술(게임)의 규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갤러리스트, 기획자들은 무엇이 새로운 예술이 되고 상품이 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하지만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가장한 도발 행위는 패러디 형식으로 반복되면서 점차 문화적 소비 형태로 제도 속에 흡수, 변질되고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와 문화 논리』에서 예술이 역사적 깊이감을 상실하고 저항의 영역이 아닌 자본의 지배, 일상의 상품화로 전락하는 문화현상을 비판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과 부를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텔란 작품은 아이러니하게 부유한 사람들의 컬렉션, 투자수단이 된다. 그가 주로 유명한 기획자, 갤러리스트들과 이러한 실천을 공모(共謀)했다는 사실은 그의 사회비판이나 풍자가 다분히 계산적이고, 자신의 명성이나 미술시장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2011년 구겐하임 회고전 이후 잠정 은퇴를 선언했던 카텔란은 황금 변기와 바나나 논쟁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늘날 작가들은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이미지, 영상이 범람하는 스펙터클 사회에서 미술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적 방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파괴와 도발, 전복의 방식은 미술사에서 수사학적으로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스타일은 종종 사회, 정치적 이슈에 참여하거나 저항, 비판 또는 논평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작가들은 개인적 또는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내러티브에 도전하고 사회적 논쟁에 참여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 개념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황금 변기나 바나나 같은 카텔란의 도발은 다분히 관객 반응이나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안된 ‘스타일의 전략’에 가깝다.
신경과학자 카르멘 사이먼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다룬 책 『메이드 유 룩(Made You Look)』에서 인지과학을 통해 어떤 유형의 주의력이 고객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이끄는지 설명한다. 중의적 의미가 있는 ‘Made You Look’은 여기서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다’로 번역할 수 있다. 많은 작가는 관객의 시선과 세상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구축하고 전개할지 고려하는 것은 창작의 자연스러운 동인이다. 그러나 스타일의 전략은 우리를 유혹하는 수단이자 마케팅의 방법일 수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예술적 실체, 본질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마크 로스코 위작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Made You Look’의 한글 번역이 ‘당신의 눈을 속이다’라는 것은 이러한 현대미술 생태계를 풍자하는 표현으로 적절하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