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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 1심 무죄 '인보사 사태'...피해자들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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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환자 상대 사기 벌였다고 볼 수 없어"
피해자 측 "형사와 민사책임은 별개"
장시간 수사-재판 '인보사 사태'가 남긴 질문은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성분 조작 의혹에 관여하고 상장과정에서 허위 공시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임원진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기소 4년여만의 1심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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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최경서)는 오늘(29일) 약사법 위반·자본시장법 위반·위계공무집행방해·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명예회장의 1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 차명주식 관련 혐의에 대해선 이미 대법원 판결을 받은 내용과 같은 사안이 기소된 것으로 보고 면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인보사 사태' 뭐길래…수사기록 15만 쪽, 5년 만 1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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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생명과학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 〈사진=JTBC 자료화면〉


골관절염 주사 치료제 인보사는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로 알려져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연골 재생' 효과가 있다는 홍보에 약 2년간 3700명의 환자가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19년 미국 FDA 승인 과정에서 인보사의 2액 세포 주요 성분이 식약처에 신고하고 허가받은 성분인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식약처는 주성분이 바뀐 경위 등에 대한 조사를 거쳐 코오롱생명과학이 자료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같은 해 6월 검찰이 코오롱생명과학 등 계열사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검찰은 이 명예회장 등이 인보사 성분이 다른 걸 알고도 고의로 숨긴 채 환자들에게 약을 판매했고, 코스닥 상장 과정에서도 관련 정보를 일부러 빠뜨렸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파악된 차명주식 거래 의혹 등을 더해 적용된 혐의만 7개에 달했습니다.

인보사 측은 세포 성분이 달라진 것을 몰랐고, 이 사실을 고의로 숨긴 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문서상으로는 연골유래세포로 기재되어있던 것이 맞지만, 실제로 허가를 받고 임상시험을 진행한 성분은 신장유래세포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수사와 재판기록만 15만 쪽, 재판은 약 5년간 96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1심 무죄 이유는…"허가 약품과 제조 약품 동일 성분, 안전성 우려 객관적 자료 없어"



1심 재판부는 "코오롱 생명과학이 제조·판매한 인보사는 품목 허가 과정에서 실제 시험 대상이 됐던 것과 완전히 같은 성분이고 사후적 변경이 이뤄진 것도 없다"며 "단지 의약품의 실제 품목과 그 기재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요 성분의 기재가 잘못됐던 것은 맞지만, 허가 과정에서 만들었던 약과 실제로 판매한 약이 결국 같은 약이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또 "성분 착오를 피고인들이 인지한 시점은 2019년 3월 30일 이후로, 다른 의약품인 걸 알면서도 속였다고는 볼 수 없다"며 약사법 위반,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어떻게?…"민사와 형사는 별개"



피해자들을 속여 팔았다는 사기 혐의도 무죄가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인보사의 성분 변경에 따른 안전성 문제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재판에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먼저 이유로 들었습니다.

재판부는 "안전성 우려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없더라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 FDA에서는 코오롱티슈진의 소명을 받아들여 인보사 성분 변경 없이 다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인보사는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했는데, 약품 광고 기재 내용이 의사들을 오인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환자들에 대한 사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환자들에 대한 사기 혐의의 성립 여부는 환자들이 코오롱 측을 상대로 진행 중인 민사 소송의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900여 명의 피해자가 낸 손해배상소송 3건이 이 사건 1심 소송 결과를 기다리며 대기 중에 있었습니다.

환자들을 대리하는 엄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오늘 형사재판 결과와 같이 코오롱 측에서 환자들을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정황이 있는 만큼 그 과실을 입증해 배상 책임을 지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엄 변호사는 "인보사 주성분을 '연골유래세포'로 홍보해 연골 재생 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던 만큼, 성분착오를 알고도 판매한 건 환자들에 대한 기망이라고 봐야 한다"며 "적어도 진료비와 주사비만큼은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급여 항목이었던 인보사 주사제의 가격은 1회 600만 원에서 7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재판부 "과학 분야 사법적 통제, 깊이 생각해봐야"



1시간 가까이 선고를 진행한 재판부는 마지막에 인보사 사태가 불거진 뒤 미국 FDA와 한국 식약처의 조치가 어떻게 달랐는지, 그 이후에 제약 분야와 사법 체계에서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를 짧게 언급했습니다.

재판부는 "사태 발생 당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FDA와 식약처의 판매 중단·보류 조치는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지만 그 이후의 조치가 사뭇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FDA는 인보사의 안전성과 사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과학적 관점에서 차분히 검토해 최근 1000명 넘는 환자에 대한 3상 임상 투약도 완료됐지만 한국에선 수년간 형사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 판결은 1심 판결이고 최종적으로 유지될지 모르지만, 만약 최종 판단이 같다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소송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찰은 "증거에 대한 평가와 관련 사건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법원의 판단을 바로 수긍하기 어렵다"며 항소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해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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