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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노래했던 그 시절 그 기억… ‘대학가요제’는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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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 포에버’ 연습현장 모인 ‘초로의 청년들’
청년은 어느덧 초로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반백 머리의 ‘서울대트리오’ 정연택(56)은 지참해온 기타를 ‘쓱’ 문지르더니 이내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 가는 길/ 저기 저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1977년 MBC <대학가요제> 1회 동상 수상곡 ‘젊은 연인들’이다. 노래가 끝날 즈음 당시 ‘나 어떡해’로 대상을 수상했던 밴드 ‘샌드페블즈’ 보컬 여병섭이 손뼉을 치며 한마디 던졌다. “우와~. 살아~ 있네!”

지난 17일 오후 10시 <대학가요제>를 빛냈던 가수들이 가을 저녁 서울 양재동 스튜디오 ‘산’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참새와 허수아비’를 부르던 여대생 조정희(6회 대상)도,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를 부른 그룹 ‘에밀레’ 심재경(7회 대상)도 해맑은 미소로 문을 열었다. 듀엣 ‘높은음자리’의 김장수(9회 대상, ‘바다에 누워’), 가수 원미연(9회 입상, ‘들녘에서’), 유열(10회 대상,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정석(10회 금상, ‘첫눈이 온다구요’), 듀엣 ‘작품 하나’의 김정아(11회 대상, ‘난 아직도 널’)….

‘대학가요제포에버’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17일 서울 양재동 연습실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조정희, 여병섭, 김장수, 원미연, 김정아, 이정석, 이규석, 심재경, 이무창. 뒷줄은 밴드 스물하나 멤버들.

‘대학가요제포에버’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17일 서울 양재동 연습실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조정희, 여병섭, 김장수, 원미연, 김정아, 이정석, 이규석, 심재경, 이무창. 뒷줄은 밴드 스물하나 멤버들.


▲ “연주·노래 다 좋던 무서운 상대 ‘서울대트리오’ 생생해요”

“예선까진 우리가 1등이었는데…‘샌드페블즈’도 대단했죠”


스물 남짓한 가수들은 오는 24~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대학가요제 포에버’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차 스튜디오에 들렀다. 이 콘서트는 MBC가 지난 8월 <대학가요제>를 더 이상 열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추진됐다. <대학가요제> 출신 30여개 팀이 자발적으로 모여 ‘대학가요제 동창회’를 결성, 출연료를 받지 않고 공연 무대를 준비해왔다.

‘어둠이 밀려오고/ 달님이 미소질 때….’ 밴드 ‘무한궤도’의 신해철(12회 대상, ‘그대에게’) 지휘에 맞춰 밴드 도깨비(7회 금상)가 노래 ‘도깨비 잔치’를 불렀다. 신해철이 스태프에게 “그 부분 소리를 좀 키워주세요” 하고 주문했다.

밴드 ‘블루드래곤’ 이규석(11회 동상)은 뒤이어 ‘객석’을 불렀다. 그는 “멤버들은 보험회사 영업소장, 학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모였으면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가수 유열이 연습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가수 유열이 연습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원년 멤버로 당시 무대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팀도 있다. 제1회 대상 수상팀 ‘샌드페블즈’, 동상 수상팀 ‘서울대트리오’ 원년 멤버들이 각지에서 모여들 예정이다. 정연택과 더불어 민경식, 민병호 등 ‘서울대트리오’ 원년 멤버 모두 이날 연습에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민경식이 상을 당해 불발됐다. 실제 무대에는 세 명 모두 무대에 올라 37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게 된다.

‘샌드페블즈’에서도 멤버 김영국이 건강이 좋지 않아 연습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공연 당일에는 온다. 여병섭은 “1978년 김민수가 홍콩으로 가면서 한자리에 할 수 없었다. 30여년 만에 무대에 선다고 하니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1977년 MBC 에서 ‘나 어떡해’로 대상을 차지한 밴드 ‘샌드페블즈’.

1977년 MBC 에서 ‘나 어떡해’로 대상을 차지한 밴드 ‘샌드페블즈’.


라이벌로 경쟁하던 정연택과 여병섭도 그 긴 세월을 건너뛰어 만났다.


“그때가 생생해요. 제일 무서운 상대가 ‘젊은 연인들’을 부르던 서울대트리오였거든요. 그때 사회를 봤던 (이)수만 형이 와서 서울대트리오가 예선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하더군요. 노래도, 연주도 좋아서 도저히 못 이길 줄 알았는데….”(여병섭)

“맞아요. 그 예선전까지는 우리가 1등이었던 게 기억나네요. 샌드페블즈도 대단했지요.”(정연택)

여병섭은 “1977년 당시 화면을 찾아보면 멤버들의 옷이 갑자기 바뀌어 있을 것”이라며 “금상 발표 때까지 우리 이름이 안 나와서 떨어진 줄 알고 집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표가 나와 무대로 달려나가면서 그리됐다”고 웃었다.


‘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 뭇 남성팬들 마음을 흔들었던 조정희가 자정을 넘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높은음자리’의 김장수가 “느낌 좋아” 하며 여흥을 넣었다. ‘바다에 누워’ ‘첫눈이 온다구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 노래마다 합창이 터져나왔다.

1982년 ‘참새와 허수아비’로 대상을 차지한 조정희.

1982년 ‘참새와 허수아비’로 대상을 차지한 조정희.


조정희는 “참 잘 모였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대학가요제>가 왜 지속돼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절실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병섭은 “이렇게 순수하게 기획하고, 연습하고, 노래했던 것이 바로 오랜 세월 속 <대학가요제>였다”며 “ ‘자존심’이 상해서 시작한 공연인데, 오늘 보니 ‘자부심’으로 공연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에는 전유나, 썰물, 우순실, 배기성, 샤프, 김학래, 이명우, 정오차, 익스, 노사연도 합류해 출전곡을 열창할 예정이다. 연습 뒤 이들은 인근 주꾸미 집으로 옮겨 밤새 소주잔을 기울였다. 수십년간 묵힌 이야기를 털어놓고야 자리를 파했다. 말간 해가 동쪽에서 떠올랐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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