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에서 3대 6으로 패배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4.11.1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아무리 불펜진이 강해도, 선발이 무너지면 경기 흐름을 내줄 수밖에 없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2024 프리미어12 첫 경기를 내준 야구대표팀엔 빠르게 '플랜B'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와 결단이 필요하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3일(한국시간)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1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3-6으로 패했다.
단 3안타 3사사구에 그친 타선이 답답했던 경기였지만, 2회 대거 6실점한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은 경험 많은 사이드암 고영표를 투입해 대만 타선을 묶는다는 계획이었으나, 고영표는 대만의 좌타 라인을 당해내지 못하고 초반에 무너졌다.
고영표가 2회에 무너지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야구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과 단기전의 중요성을 감안했을 때 벤치의 대응이 다소 늦었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고영표는 2회 2아웃까지 잡았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 한 개를 좀처럼 기록하지 못했다. 8번타자 리카이웨이에게 안타를 맞은 뒤 9번타자 장쿤위에겐 연거푸 4개의 볼을 던져 만루 위기를 초래했다.
KBO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제구력을 자랑하는 고영표가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지점에서 이미 고영표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13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에서 3대 6으로 패배한 대한민국 대표팀 고영표와 박동원이 어두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2024.11.1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코칭스태프가 마운드를 방문해 고영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고영표는 초구에 천천웨이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이후 린리에게도 초구에 2루타, 천제시엔에겐 2구에 2점홈런을 맞았다. 만루 이후 단 4개의 공에 6점을 내준 순간이었다.
벤치로선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영표가 장쿤위에 연거푸 4개의 볼을 던질 때 대비가 이뤄졌다면, 만루홈런 이후 추가 2실점 전엔 투수 교체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경기 초반이지만 점수 차가 6점까지 벌어지면서 타자들의 부담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3회부터 불펜진을 가동했고 남은 7이닝에서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았다. 결과론이긴 하나 무너지는 고영표를 좀 더 일찍 교체했다면, 만루홈런 직후에라도 결정했다면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다. 4점과 6점은 체감에서 적지 않은 차이다.
류중일 감독이 자평했듯 이번 대표팀의 불펜진은 수준급이다. 박영현, 김택연, 정해영, 조병현, 유영찬은 소속팀에서 마무리투수를 맡고 있고,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가 주무기인 젊은 투수다. 김서현과 이영하, 소형준, 좌완 최지민과 곽도규도 좋은 구위를 가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3회말 대한민국 최지민이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고 있다. 2024.11.1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하지만 대만전처럼 선발이 조기에 무너져버리면 좋은 불펜을 제대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초반 대량 실점만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남은 선발투수 곽빈과 임찬규, 최승용도 고영표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간판타자가 여럿 빠진 타선의 힘도 강력하진 않다.
그렇기에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불펜진은 언제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 초반부터 선발투수를 강판하고 불펜진을 가동할 수 있다는 자세로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선발 경험이 있는 이영하와 소형준 등을 롱릴리프로 대기시키며 투입을 준비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13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7회초 대한민국 공격 1사 상황에서 나승엽이 솔로홈런을 친 뒤 홈을 밟고 있다. 2024.11.13/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또 하나의 숙제는 라인업 변화다. 가뜩이나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 상태인데 대만전은 더욱 답답했다.
6번 이하 하위 타순에서 단 1사구만 기록하는 데 그쳤고, 홍창기-송성문의 테이블세터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4번타자로 내세운 윤동희 카드도 결과적으론 실패였다.
대만전에서 대타로 홈런을 때린 나승엽과 아직 경기에 나서지 못한 신민재, 박성한, 최원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라인업 변화가 여의찮다면 타순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14일 쿠바, 15일 일본전 등 쉽지 않은 일정을 앞두고 있다. 첫 경기를 패했기 때문에 앞으로 한 경기만 더 지면 자력 4강 진출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벼랑 끝에 몰린 각오로, 큰 변화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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