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성관계 동의 앱이 등장했다. 다운로드 건수는 이미 1000여 건이 넘었다고 한다. 성관계에 동의했는지 여부가 성범죄 사건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만큼, 혹시 모를 법적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실제 성범죄 사건은 신고 또는 고소 후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이 “동의가 있었는데 고소했으니 무고로 역고소한다” 등 순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성범죄 사건 증가와 무고가 늘어나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경찰청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 건수는 2017년 3690건에서 지난해 4809건으로 6년 새 30% 이상 증가했다. 무고죄가 성립되는지 판단할 때 동의 여부는 핵심적 쟁점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같은 앱을 통한 동의가 실제 법적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법적 측면에서의 동의는 의사가 합치되거나 찬성 또는 반대 중 당사자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앱을 통해 동의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앱을 통한 동의가 사전적 동의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사전 동의가 있다고 해서 관계 중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동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전 동의가 있더라도 성관계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면책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 관계 중 동의를 철회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에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시작할 때와 달리 언제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상황으로 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명확한 의사표시가 가능하지만, 내밀한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전적인 동의를 철회하고 싶더라도 이를 즉각적으로 앱에 반영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의를 강요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폭행과 협박을 통해 강제로 동의 버튼을 누르게 할 수도 있다. 협박이 없어도 가스라이팅 등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도 모르게 버튼을 누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비자발적인 상황에서의 성폭력은 진술만 존재하더라도 정황이나 간접증거 등을 고려해 유죄 선고가 내려지곤 했다. 앱에 동의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정황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억울하게 성폭력 가해자로 몰린 사람에게 앱이 불리하게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사전에 동의했으나 직전 또는 중간에 동의를 철회했음에도 강제로 관계를 맺게 됐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은 상대방의 동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동의라는 내심(內心)의 의사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사기관이 아닌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또 해킹 등 보안 문제도 있다.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내용 등이 앱 서버에 저장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데이터가 해킹 등을 통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 내밀한 영역에 해당하는 만큼 유출되면 당사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LKB & Partners)는 “무고죄로 인한 처벌 가능성을 낮추고자 하는 것이 앱의 주요 목적으로 보인다”며 “동의의 효력, 철회 여부, 강요 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분쟁이 예상되는 만큼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LKB 수사대응팀, 압수수색대응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중앙지방법원 연계 조기조정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쇼핑 재승인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투데이/김이현 기자 ( spe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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