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월27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 이후 치솟기 시작한 비트코인 가격이 연말까지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를 돌파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내슈빌=AP연합뉴스 |
우리 자본시장은 이러한 호재에 동참하지 못한 채 소외되고 있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에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코스피는 다시 2400선으로 물러났다. 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겠다며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밸류업(가치제고)’ 정책도 효과가 미약하다. 코스피·코스닥의 부진한 흐름에 개인투자자들은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이 같은 ‘서학개미’의 투자액이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내 증시는 ‘트럼프 2기’ 확정 이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 대선의 승패가 결정 난 6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는 3.16%, 코스닥은 4.41% 각각 하락했다. 미국 뉴욕증시가 5일(현지시간) 이후 11일까지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4.91%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기술주 중심으로 구성돼 한때 코스피와 동조화 현상을 보였던 나스닥도 이 기간 4.66% 상승했다.
국내 증시에선 무엇보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뚜렷하다. 외국인은 3분기 이후 매도세로 돌아섰는데,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도 2338억원 순매도했다. 6일 이후부터만 따지면 이날까지 4147억원을 순매도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지난 8∼10월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5조원을 순매도했는데 2008년 이후 외국인 3개월 누적 15조원 이상 순매도는 2008년 1∼3월과 2020년 3∼5월뿐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9만달러를 넘어선 비트코인은 10만달러 관측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각종 파생상품 시장에서 ‘비트코인 연내 10만달러 돌파’에 베팅한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소 데리비트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현재 다음달 27일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0만달러가 될 것이라는 미결제 약정 베팅에 약 7억8000만달러가 모였으며, 시카고상품거래소(CME) 선물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선물 거래에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한·미 자본시장의 명암은 ‘트럼프의 귀환’의 전주곡으로 여겨진다. 수출 위주인 한국 경제로선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고, 악재를 미리 반영하는 자본시장의 성향상 코스피의 부진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우량주들을 모아둔 코스피200의 흐름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날 코스피200은 2.19%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는데, 코스피 하락폭 1.94%보다 더 크게 내려앉았다. 코스피 대장주로 일컬어지는 삼성전자는 이날도 2000원 하락하며 5만3000원에 마감, 52주 신저가를 다시 경신했다. 여기에 국내 기업의 3분기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던 점도 약세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이에 개미는 ‘한국’을 떠나 ‘미국’ 주식 투자를 더욱 늘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 8일(결제일 기준) 1024억6216만달러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 말 680억2349만달러와 비교하면 50%가량 늘어난 수치이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49.09(1.94%)p 하락한 2,482.57에 코스닥은 18.32(2.51%)p 하락한 710.52에 장을 마감했다. 뉴스1 |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트럼프 불확실성’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하는 비트코인이나 미국 증시와는 다른 환경”이라며 “향후 트럼프 2기의 인선이 마무리되고 정책에 대한 정제된 견해가 나올 때쯤 돼야 시장의 불확실성은 줄어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랠리’에 대한 신중론도 나온다. ‘관세 폭탄’과 감세,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을 강조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하면 미국 내 재정적자 심화와 인플레이션 상승이 불가피한 만큼 실천에 옮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전망에서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 국채 금리와 달러 가치 상승에 이 같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도형·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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