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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과태료 17억’ 미스터리…대포차 800대가 빚은 ‘덤터기’ [취재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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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위반 과태료 17억 체납 A씨
빌려준 명의가 대포차 유통에 활용
수백대 차량 과태료, 한 사람 앞으로
편집자주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

[123rf]


[헤럴드경제=박준규·이용경 기자] A씨는 과속과 난폭운전 등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로부터 2만1230건의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다. 모두 체납 상태다. 내지 않은 과태료는 17억1280만원에 달한다. A씨가 법 따위는 개의치 않는 ‘도로의 무법자’라고 넘기기엔 이상하리만치 과하다. 위반 건수도 체납 액수도 상상 이상이다. 매일 한 번씩, 58년을 단 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과태료 처분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문제의 A씨는 경찰이 파악한, 전국에서 과태료를 가장 많이 미납한 인물이다. 경찰청이 최근 국회 윤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과태료 미납 자료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알려졌다. 지금까지 경찰이 받지 못한 과태료는 1조2306억원(10월 10일 기준)이고 미납액이 많은 상위 100명의 미납 총액은 314억원이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이 100명의 명단 가장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A씨는 ▷일반도로와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속도 위반 ▷고속도로 갓길 통행 위반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통행 위반 ▷앞지르기 방법 위반 ▷신호·지시 위반 등 갖은 과태료 부과 이력을 자랑한다. 도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뭘까.

한 사람 이름의, 수백대의 차
헤럴드경제

중고차 매매단지에 주차된 차량들. 기사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음 [연합]


12일 헤럴드경제가 취재한 결과 A씨가 도로교통법을 조롱하는 무법자는 아니었다. 실은 그의 명의로 된 수백대의 차량이 전국의 도로를 누비면서 저지른 교통법규 위반이 쌓이고 쌓인 결과였다. 한 사람 이름으로 된 수백대의 차량. 사연은 이랬다.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B라는 사람이 A씨의 명의를 활용해 개인사업자로 중고차매매업을 벌였다. 사업자등록만 A의 이름으로 내고 실제 운영은 B가 했다. B는 매입한 중고차를 손님들에게 비정상적으로 판매했다. 구매자들은 B에게 차 구매비용을 냈고 B는 차키를 내줬지만 법적 의무인 명의변경은 생략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A씨 명의로 된 중고차 운전대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800대 이상의 ‘대포차’(등록부상 소유주와 실사용자가 다른 차량)가 만들어졌다.

대포차는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된 범죄행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단속이나 처벌 수준이 지금보다 느슨했다. B는 자동차 매매업자에게 적용되는 취등록세 면제 혜택을 누렸고 구매자들도 명의변경을 하지 않으면 세금을 아낄 수 있었다. 양쪽이 만족하는 ‘검은’ 거래였다. 자동차 보험 가입은 어렵지만, 어차피 대포차 수요자들에게 보험이 중요하진 않았다.

대포차를 산 사람들은 대체로 마구잡이로 운전했다. 과속과 신호위반이 일상이었다. 단속카메라가 번호판을 찍었고 경찰은 차량 소유주인 A씨 앞으로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몇년 동안 전국에 퍼져나간 대포차의 모든 과태료가 ‘명의자’인 A씨 앞으로 쌓였다. 과태료를 제때 내지 않으니 가산금이 붙었다(과태료 체납에 따른 가산금은 첫 달은 3%, 이후 매달 1.2%가 최장 60개월까지 부과됨).

2만 건, 17억원이 넘는 단 한 사람의 미납 과태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은 사라지고, 과태료만 쌓였다
헤럴드경제

[123rf]


A씨는 돈을 받고 자신의 명의를 빌려줬다. 그리고 그 명의는 범죄(대포차 유통)에 사용됐다.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안 A씨는 경찰에 B씨를 고소했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거래한 사람·구매자·운전자 모두 처벌된다. A·B씨는 모두 기소됐고 징역형 실형을 받아 복역했다.

그렇다면 당시 대포차를 구매해 몰고 다닌 운전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때 팔린 차량들은 운행정지 처분을 받고 자동차 등록이 말소됐다. 등록 말소된 차를 운전하다 걸리면 면허는 취소되고, 더불어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A씨의 명의로 팔린 무등록 차량과 운전자가 적발된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포차를 근절하기 위한 규제는 시간이 지나며 촘촘해졌지만 여전히 등록되지 않은 불법 차량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과태료도 문제다. 대포차 수백대의 운전자들이 남긴 위반의 기록은 고스란히 A씨 앞으로 쌓여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의 과태료를 장기간 미납한 개인의 경우 자동차 명의 문제에 엮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 등 관련법을 근거로 과태료 체납이 지속되면 차량 압류, 번호판 압수(영치), 예금 등 채권 압류 등 강제수단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포차 유통과 엮인 A씨의 사례에선 이런 수단들이 무의미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포차를 구입해 운행했던 실소유자가 적발된다면 해당 운전자를 ‘실질적인 차량 관리자’로 간주해 A씨 대신 과태료 납부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운전자를 찾아 제재해야 한다. 경찰이 애쓰곤 있으나 모든 대포차 운전자의 소재를 파악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국토교통부와 경찰, 지자체는 자동차이력관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번호판 인식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무등록 불법차량을 걸러내는 기술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nyang@heraldcorp.com
y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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