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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원 넘는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트럼프가 없앨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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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한국 산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전기차·배터리·태양광·풍력 지원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칩스법) 폐지를 공약한 터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한국 배터리·전기차·반도체 기업은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당선인의 엄포가 현실화되면 세액공제와 보조금 혜택을 약속받고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거나 짓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배터리), 현대차·기아(전기차), 한화큐셀(태양광), 삼성전자·SK하이닉스(배터리) 등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IRA와 칩스법에 대한 주요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조선비즈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47대 대통령 당선인과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 트루스소셜



─IRA와 칩스법은 무슨 법이고, 왜 한국 기업에 중요한가.

IRA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22년 8월부터 인플레이션 완화를 목표로 시행 중인 법이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가 중점 지원 대상으로 배터리·태양광·풍력·핵심광물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란 형태로 투자금을 일부 돌려준다.

전기차 배터리는 IRA 45X 조항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셀에 ㎾h(킬로와트시)당 35달러, 모듈(팩)에 ㎾h당 10달러의 AMPC 혜택을 준다. 태양광 모듈(패널)엔 W당 7센트, 셀엔 W당 4센트, 잉곳과 웨이퍼엔 W당 4.69센트씩 현금을 주거나 세금을 줄여준다. 풍력도 미국에서 타워를 생산하고 판매하면 터빈 발전기의 용량에 따라 W당 3센트를 준다.

AMPC 세액공제 혜택은 단계적으로 축소돼 10년 후엔 완전히 사라진다. 2023년부터 2029년까지는 100% 지급되고 2030년 75%, 2031년 50%, 2032년 25% 수준으로 축소된 후 2033년에 종료된다.

전기차는 IRA 30D 조항에 따라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할 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전기차 제조사에는 청정에너지 관련 장비와 차량 생산 등의 설비투자에 대해 최대 30%의 세액공제(ITC) 혜택을 준다.

칩스법은 2022년 8월 발효된 법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칩스법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이 미국 내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단 10센트의 보조금도 주지 않고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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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생산시설 조감도. /LG에너지솔루션 제공



─IRA와 칩스법에 따라 한국 기업이 받는 보조금(세액공제)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IRA에 따라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총 2조6725억원의 AMPC 보조금을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테네시·미시간·오하이오주 공장 생산을 통해 1조7795억원을 수령했고, SK온이 조지아주 공장 생산으로 8281억원을 받았다. 삼성SDI는 다른 국가에서 생산한 셀을 미시간주 공장에서 팩·모듈로 조립한 물량에 대해서만 소규모(649억원) 보조금을 받았다. 삼성SDI가 인디애나주에 스텔란티스와 합작 건설 중인 공장이 12월부터 가동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AMPC를 받게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정부가 IRA AMPC 항목에 대한 잠정 가이던스를 내놨을 당시, 한국 배터리 기업은 보조금이 전액 지급되는 2029년까지 7년간 최대 92조원 규모의 혜택을 볼 것으로 관측됐다. 태양광 기업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은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1조원이 넘는 세액공제를 받았다. 지난해 연간 6702억원, 올해 1~3분기 3650억원의 AMPC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올해 4월 텍사스주에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해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이 2026년 가동을 시작하면 64억달러(약 9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반도체 공장 건설 등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입하고 보조금 4억5000만달러를 받기로 했다. 대만 TSMC도 애리조나주에 650억달러를 투자하고 66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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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BM3. /SK하이닉스 제공



─트럼프 당선인이 IRA와 칩스법을 마음대로 폐기할 수 있나.

IRA와 칩스법 모두 연방법(Act)이기 때문에 폐지나 개정을 위해서는 연방 상·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했고 개표가 진행 중인 하원도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 다수당이 되면 주요 법안을 폐기하거나 개정하기가 쉬워진다.

변수는 IRA와 칩스법 시행으로 혜택을 본 지역 중 테네시·인디애나·텍사스 등 다수가 공화당 텃밭이란 점이다. 지역 일자리와 경제가 걸려 있는 만큼 해당 주의 공화당 의원들은 법 폐지에 반대할 수 있다. 칩스법은 애초 트럼프 1기 때 공화당이 추진한 것을 바이든 정부에서 법제화한 것이기 때문에 IRA에 비해서는 변동 가능성이 작다는 관측도 있다.

TSMC 등 외국 반도체 기업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칩스법 보조금과 대출 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서기 전 최종 계약을 확정하고 지급 이행을 위한 구속력을 확보해 두려는 것이다.

─법을 바꾸지 않고도 대통령이 보조금 조항을 손볼 수 있나.

미국 대통령은 미국 헌법에 보장된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이용할 수 있다. 행정명령은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도 연방법 입법과 비슷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의회가 행정명령의 효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새로운 법을 통과시킬 수 없다. 의회가 예산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행정명령을 무력화할 수 있는데, 트럼프 2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차지하면 이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차기 대통령이 전임자의 행정명령을 취소할 수도 있다.

한 미국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IRA 법을 그대로 둔 상태로 행정명령을 통해 보조금 등의 조항을 의회 동의 없이 선택적으로 없애거나 축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입법 조치를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행정명령 카드를 수시로 꺼내 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공화당이 IRA와 칩스법을 축소할 법안을 추가로 낼 가능성은.

트럼프 당선인의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9월 IRA의 전기차 관련 혜택을 백지화하는 내용의 드라이브아메리칸법(Drive American Act)을 발의했다.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폐지하고 미국 내에서 제조된 가솔린·디젤 차량에 새로운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IRA의 30D 조항 중 일부를 삭제·수정하고 미국산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고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된 가솔린 또는 디젤 엔진 차량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칩스법은 트럼프 2기에서 2.0 버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전면 폐지보다는 현 보조금 규모를 축소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색깔을 입힌 새 버전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남희 기자(knh@chosunbiz.com);정재훤 기자(h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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