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이후 문체부와 체육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운영 전반’, 체육회는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체육 업무 행태’를 문제 삼으며, 서로를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체육계 현안에 대한 ‘호통’은 끊이지 않았지만, 체육 발전을 위한 ‘진정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문체부와 체육계가 갈등을 빚는 주요 현안을 짚어보고, 엘리트생활 체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정형근, 배정호 기자] “문체부는 종목단체와 지방자치단체 회장의 자율성을 거부하는 것 같다. 문체부 직원은 모두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선거에 중립적이어야 하고, 선거에 개입하면 안 된다."
전국체전 폐막식이 열린 10월 17일. 대한체육회와 17개 시도체육회 및 회원종목단체 회장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체부를 향한 수위 높은 비판이 이어졌고, ‘선거 개입’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동안 문체부 유인촌 장관의 선거 관련 발언은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과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두 명에게 집중됐다.
“선거가 끝나고 만약 투표로 결정이 된다 하더라도 승인하지 않는 절차까지 갈 생각이다. 정몽규 회장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마찬가지이다.” (9월 SBS 김태현의 정치쇼)
체육계는 유인촌 장관의 발언이 명백한 ‘선거 개입’이며, 위탁선거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체육회의 관리감독 기관인 문체부는 선거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기관인데, 장관이 일선에서 ‘낙선 운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한축구협회의 경우 문체부는 ‘승인’ 권한도 없다. 대한체육회 산하종목단체인 대한축구협회는 체육회의 인준(승인)을 받는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문체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 임명직이다. 투표를 통해 뽑힌 선출직과 다르다. 체육인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회장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두 회장이 제대로 단체 운영을 못했다면, 체육인이 선거로 심판하면 된다. 그런데 문체부는 온갖 이유를 들어 두 회장이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결국 현 정권과 문체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회장에 앉히려 한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회장 ‘승인 불허’의 명분을 스포츠공정위원회 구성에서 찾고 있다.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대한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 임원의 ‘임기 연장’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다. 문체부는 현 김병철 스포츠공정위원장이 2017년 이기흥 회장의 특별 보좌역을 맡은 뒤 2019년 5월부터 현재까지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심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체육계는 문체부의 행보를 현 이기흥 회장의 차기 선거 출마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움직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주된 논리는 대한체육회는 이미 스포츠공정위 구성에 대해 문체부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이다. 대한체육회는 심의의 객관성을 위해 대한체육회 임직원을 배제한 법조계, 학계, 스포츠계 등 외부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했고, 심지어 문체부와 협의 이후 구성했다고 밝혔다.
문체부의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개입’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된 이후 첫 통합 회장을 뽑는 선거는 ‘친문체부’와 ‘반문체부’의 대결 양상으로 불렸다. 이른바 문체부가 낙점한 인사와 ‘체육의 자율성 확대’를 외치며 문체부에 정면으로 맞선 이기흥 회장 등이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문체부 직원이 일부 경기단체 사무국장과 사무처장에게 “이기흥 회장을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도와 달라”며 “문체부가 추천한 인사를 밀어야 한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큰 논란이 일었다.
이기흥 회장은 2016년 당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문체부의 일방통행식 행보를 문제 삼으며 ‘반문체부’ 인사로 불렸다.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문체부 주도 통합에 반대하자, 검찰은 대한수영연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했고 문체부는 자체 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했지만, 이 회장은 결국 2016년 초대 통합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
체육계는 2016년과 현재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문체부는 현재 감사원에 대한체육회 공익 감사를 청구하고, 예산 배분권 박탈 등 가능한 모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국민체육진흥법 제33조 제7항에 의거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해 위탁선거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선거운동 목적으로 매수 및 이해유도를 하거나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체육계는 문체부 유인촌 장관이 이기흥정몽규 현 회장을 차기 선거에서 낙선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허위 사실을 포함한 발언을 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다음은 문체부 유인촌 장관의 대한체육회대한축구협회 관련 발언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지난 8년 동안 마음대로 했다.”
“1년에 42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정부 예산을 받고도 학교 체육, 엘리트 체육은 계속 낭떠러지다.”
“어떻게 해서 체육회가 이렇게 괴물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정말 공정하다면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다시 출마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 여론을 보면 정몽규 회장 스스로 거취 결정하는 게 명예로울 것이다.”
체육계는 문체부가 ‘선출’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와 체육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유 장관의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이자 악의적인 비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모든 사안에 대해 문체부의 승인을 받아 사업을 추진했는데, 체육계 현안 및 문제점을 온전히 체육회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체육계 관계자는 “ 문체부에서 이기흥 회장과 정몽규 회장이 출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문체부는 국민적 여론을 이용해 두 회장과 체육 단체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파리올림픽에서 최다 금메달을 따며 종합 성적 8위를 이끈 이기흥 회장과 카타르 월드컵에서 기적의 16강을 이뤄낸 정몽규 회장은 억울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성과는 모두 묻히고, 체육의 ‘적폐’로 회장직을 마무리하는 셈이 된다. 두 회장 입장에선 회장직을 그만두고 싶어도 불명예 퇴진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지난 8월 체육단체 지원 예산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생활체육 예산 416억 원을 대한체육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자체에 교부하겠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회원종목단체 지원을 포함한 예산 체계를 개편할 계획도 밝혔다.
체육계는 문체부가 발표한 예산체계 개편안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자체 및 시도체육회 회원종목단체에 보조금을 직접 교부하면서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위탁선거법이 금지하고 있는 ‘매수 및 이해 유도죄’에 저촉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지역 민간체육회장 선거관리위원으로 선거 규정 마련, 법률해석 등을 수행한 스포츠 전문 강정한 변호사(진앤솔 법률사무소)는 “문체부가 승인 권한을 갖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 없이 승인을 불허한다면 입법 규정에 맞지 않고 월권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입법 취지에 맞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고, 예산이나 감사로 체육계를 압박한다면 민주적이고 투명한 협회 운영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는 감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체육계의 자정을 위한 자체적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선거의 중립성을 어기고 체육 단체의 선거에 직접 관여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다.
대한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 회장 선거는 올해 말과 내년 초에 걸쳐 열린다. 감독기관인 문체부가 ‘선거 중립’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다면 선거는 ‘이전투구’ 양상을 띨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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