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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매’다…그래도 “동창회 가야죠, 여행도 가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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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치매센터가 국내 첫 치매 당사자 ‘치매극복 희망대사’로 위촉한 이기범(왼쪽)씨와 강주연씨가 지난달 4일 인천 미추홀구 뇌건강학교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나도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5년여 전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보며 최희영(가명·60)씨가 말했다. 최씨 어머니의 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온종일 창밖이 아니면 천장을 향해 있다가 감겼다.



남편이 2016년 알츠하이머 치매 판정을 받은 이진서(가명·75)씨는 진단 뒤 지금껏 남편의 생각을 물은 적이 없다고 했다. 더 정확히는 “물어볼 생각을 못 해봤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진료 때 남편의 주치의도 남편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답변을 기다리는 의사의 눈은 늘 ‘보호자’인 아내를 향했다. 원래 신경과 의사들이 그렇다고 하면서도 이씨는 “생각해보니 이상하다”고 했다.



궁금한데 묻지 못했거나, 궁금하지 않아 묻지 않았거나. 사랑하는 이가 치매였을 때 이야기다.



정부가 올해 펴낸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3’을 보면, 2022년 말 기준 대한민국 국민 100명 중 1~2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65살 이상 노인만 놓고 보면 10명 가운데 1명이다. 여기에 추정치까지 합하면 이 나라의 치매인은 해마다 5만명가량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가운데 10%는 치매가 65살 이전에 나타나는 초로기(조발성) 치매에 해당한다. 치매란 후천적 뇌손상에 의해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에서 인지 기능 장애가 나타나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증후군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에는 100세 시대 치매 예방법을 담은 책이 빼곡하다. 간간이 치매 가족의 간병기가 손짓한다. 치매 당사자가 쓴 책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모두 외국인이다. 검색어를 바꿔가며 온라인을 뒤져보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치매 당사자의 이야기는 꼭꼭 숨었다. 한국 사회는 치매라는 ‘병’에만 관심이 있고 치매를 살아가는 ‘사람’에는 무관심한 것일까? 치매는 분명 우리 사회 곳곳에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었다.



알츠하이머와 함께 살아가는 1인칭 안내서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의 저자 사토 마사히코는 “내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던 2005년에 비하면 최근에는 치매에 관한 책이나 강의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그 많은 책과 강의를 막상 찾아보면 정작 당사자의 입장에서 치매를 이해하고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찾기 어렵다”고 했다. 사토의 책은 2014년 발간됐는데, 2024년 한국 사회에 꼭 들어맞았다. 그 이유를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두려움과 혐오, 그리고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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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사회에서는 치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일까?



정신과 전문의 장기중 아주편한병원 진료원장은 치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점점 치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짚는다. 실제 치매는 대한민국 성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으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가 2019년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리서치앤리서치), 응답자의 46.2%가 치매를, 28%가 암을, 12.6%가 뇌졸중을 가장 두려운 질환이라고 답했다. 2년 뒤 두 기관이 1200명에게 실시한 치매 용어 대국민 인식조사(한국갤럽)에서는 43.8%가 치매라는 용어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 10명 중 6명이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치매 당사자의 목소리가 숨은 데는 치매를 향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 치매를 두고 ‘노망났다’거나 ‘벽에 똥칠하는 병’이라고 폄훼하는 모습은 비교적 최근까지 종종 보였다. 어리석다는 뜻의 한자가 두번 겹쳐 이뤄진 ‘치매’(어리석을 痴, 어리석을 呆)라는 용어에도 오래전부터 스며든 치매 혐오가 반영됐다고 해석된다. 장 원장은 이를 “의학의 역사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큰 두려움은 사회적 낙인, 혐오와 연결”된 것으로 접근했다. 과거 에이즈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로, 결핵은 ‘가난한 자에 대한 혐오’로, 코로나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혐오는 시선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기구인 알츠하이머병 인터내셔널(ADI)이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와 함께 166개국 4만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을 바탕으로 지난달 펴낸 ‘세계 알츠하이머 보고서 2024: 치매에 대한 글로벌 태도 변화’를 보면 응답자의 88%가 치매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이런 조사도 보이지 않는다.



2014년 7월 쉰여덟의 나이에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를 진단받은 영국인 웬디 미첼은 생전 “치매에도 시작과 중간, 끝이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치매라고 하면 초점 잃은 눈동자, 표정이 없는 얼굴, 병상에 갇힌 백발노인과 같이 흔히 연상되는 ‘인생의 끝’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반박이었다. 그는 올해 2월 세상에 이별을 고할 때까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그(Which me am I today·오늘은 어떤 나)를 운영하며 강연과 인터뷰, 각종 임상시험과 협회 활동을 통해 치매 및 치매를 향한 편견과 싸웠다. 세 권의 책에는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치매가 시각, 청각, 미각 등 사람의 감각을 어떻게 교란하는지, 감정이나 의사소통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세상에 전했다.



우리 사회가 치매 당사자 ‘커밍아웃’의 불모지인 것은 어쩌면 그들의 삶과 생각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라는 물음으로 돌아온다.







기억하길 종용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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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치매 당사자 단노 도모후미가 지난해 10월29일 인천 미추홀구 뇌건강학교에서 열린 초로기 치매 당사자 한일교류회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뇌건강학교 제공


한양에서 김서방을 찾던 중 꼭 1년 전 일본인 치매 당사자 단노 도모후미가 한국에 와서 강연한 사실을 확인했다. 2014년 서른아홉살에 알츠하이머형 초로기 치매 판정을 받은 단노의 이야기는 책(‘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과 영화(‘오렌지 램프’)로 소개된 바 있다.



강연 영상 속 단노가 조목조목 전하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는 “(치매) 당사자에게 기억을 확인하려는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 (…)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때 우리도 불안하다”거나 “(내가) 실수할 권리를 뺏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치매 환자’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병원에서는 환자지만 병원 밖에서는 똑같은 시민의 한 사람이니 그렇게 취급해달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미첼도 “‘기억해요?’ ‘기억해야 해요’, 이런 말은 끊임없이 나를 더 비참게 만든다”고 했다. 분명 치매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9월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단노는 “나도 처음 인지증(일본에서 치매를 일컫는 용어)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해 매일 밤 울면서 잠든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장년층 치매의 경우 2년 뒤에는 몸져눕게 된다거나 10년 뒤에는 죽는다는 글들을 본 뒤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아직 초·중학생인데… 무시무시한 공포가 밀려왔지만 인지증 가족 상담소는 있어도 인지증 당사자가 상담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경으로 나가기 시작한 ‘치매인과 가족모임’에서 단노는 “웃는 얼굴로 활동하는 당사자 한 분과 만나게 되면서 저 역시 그분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2015년 5월 치매 당사자가 당사자를 만나 다독일 수 있는 공간인 ‘오렌지 도어’를 센다이에 열었다. 단노는 “(인지증 당사자들의 경우)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가족에게 진심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같은 (인지증) 당사자끼리는 공감할 수 있으므로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센다이와 도쿄에 있는 병원 2곳과 협력해 진단 뒤 당사자들과 만나는 ‘피어 서포트’(동료 지원) 활동도 하고 있다. 또 일본 후생노동성 인지증 희망대사로 임명돼 “누구든 안심하고 치매에 걸릴 수 있는 사회” 만들기에 열심이다.



단노가 이토록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경에는 그의 열정에 더해 회사의 역할도 있었다. 자동차 판매회사 넷츠 도요타 센다이는 ‘판매 1위’ 영업사원이 치매 진단을 받자 내근직으로 발령을 내고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했다. 4년 전부터는 회사에 소속된 “스포츠 선수처럼” 치매 당사자 활동가로 치매 알리기 등 활동에 주력할 수 있게 했다.



인터뷰 말미에 단노는 말했다. “인지증은 환경에 따라서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본인이 인지증이 되었을 때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치매 당사자들이) 이야기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못 하게 하는 환경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국내 첫 치매 당사자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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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노의 목소리와 활동은 한국 사회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말 단노의 강연 중 하나는 인천 미추홀구 인천광역치매센터 부설 뇌건강학교에서 열렸다. 주최 쪽도 진행이 빠르다는 초로기 치매 10년차 단노가 강연하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다. 행사를 준비했던 이재문 작업치료사는 “전문가가 교육하는 것보다 당사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니 더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고 말했다. 뇌건강학교 식구들도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시작은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안고 살아가는 이기범씨의 강연이었다. 쉽지만은 않았다.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함께 강연 내용을 준비한 뒤 녹음도 하고 촬영도 해보면서 연습했다. 가족모임 앞에서 한 작은 강연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시범 강연은 올해 5월 치매 당사자의 ‘치매극복희망대사’ 위촉(인천광역치매센터)으로 이어졌고, 올해 6월 치매 당사자 강연자는 둘로 늘었다. 강연에 참석한 다른 치매 가족들은 ‘내 힘겨움에 가려 투병하고 있는 당사자의 아픔,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는 등의 소감을 이재문 치료사에게 전했다.



국내 1호 치매 당사자 ‘치매극복희망대사’는 강주연(64)씨와 이기범(65)씨다. 지난달 4일 뇌건강학교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주연씨는 중학교에서 30년 넘게 영어를 가르친 선생님이었다. 4년 전, 퇴직 뒤 갱년기 증상이 찾아왔는지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단기 기억력도 떨어지고 우울증도 함께 온 느낌이었다. 혹시 치매는 아닐까 의심했지만 병원에서 치매는 걱정 말라고 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1년 반 넘게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보건소를 찾아 인지검사를 했고, 2차 검사까지 한 2년 전 11월 그는 초로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언제 치매 진단을 받았는지는 기억을 떠났지만 강주연씨는 당시의 감정을 또렷이 기억했다. “내가 열심히 내 할 일을 다 했으니까 이제는 여행도 가고 좀 즐겁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실망감은 참… 지금도… 참… 괴로웠어요.” 내내 환한 모습이었던 그의 표정이 이때만큼은 그늘졌다.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공허함이 덮쳤지만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생각했다. 강주연씨는 “내가 실망하고 절망하고 그러면 아이들한테도 좋은 그것(영향)은 못 주잖아요. 그래서 엄마도 어떤 괴로움이 있어도 즐겁게 살아가고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상은 물론 변했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늘었다. 깜빡깜빡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최근에 기뻤던 일’을 묻자 강주연씨는 주저함 없이 “저는 늘 행복해요”라고 답한다. 인터뷰하는 날이라고 아들이 예쁘고 좋은 옷을 챙겨 입혀줬다는 자랑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마음속 근심도 물었다. 역시 두 아들에 대한 것이다. 강주연씨는 나중에 아들이 결혼할 때 엄마가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은 좀 있”다고 했다. 강주연씨의 소망을 물었다. 그는 “지금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는 진짜 (치매 진단을 받고) 숨어 있는 이들도 많을 거예요…. 저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다.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답을 건넸다.



이날 강주연씨 인터뷰에는 남편 이재목씨가 동석했다. 그는 강주연씨가 답을 하며 생각의 길을 놓쳐도 인터뷰 내내 한번을 거들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재목씨는 “(아내가) 요구하고 행동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을지라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으면 이 사람 생각대로 따라주”려고 한다며 “스트레스 안 받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강씨는 따로 진행한 남편 인터뷰가 끝날 무렵 본인이 인터뷰한 사실을 깜빡하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희망 전하려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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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극복 희망대사’ 이기범씨가 9월11일 인천 에스에스지(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에스에스지(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경인일보 제공


치매극복희망대사 이기범씨도 오랜 기간 나라의 녹을 먹었다. 인천시 지방공무원으로 40여년을 살아온 이기범씨는 중구에서 동장으로 퇴직했다. 동장 시절을 떠올리는 그는 즐거워 보였다. 이기범씨는 “가물가물하다”고 했지만 2년 전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는 보일락 말락 웃음을 머금고 그때도, 지금도 “나는 멀쩡하다고 생각한다”고 반복했다.



그에게 일상의 변화는 부인의 “걱정”과 “감시”에서 두드러진다고 했다. 이기범씨는 인터뷰 내내 “(부인이) 많이 걱정을 해요”라는 말을 되뇌었다. “혼자 전철 타고 내려가던” 경기도 용인의 초·중학교 동창 모임이나 “전철 타고 쭈르륵 가면 되는” 인천 주안의 군대 동기 모임도 못 가게 됐다. 그는 바뀐 일상이 불편하지만 “굳이 (가겠다고) 그렇게 고집부리지는 않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기범씨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다. 업무를 처리할 때면 항상 불안해서 몇번씩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가 치매 진단을 받자 함께 일했던 친구는 “네 성격에 그럴 줄 알았다” 안타까워 말했다. 이기범씨는 “이제 후회되고… 좀 대충할걸… 그러니까 편안하게 재미있게 사세요”라고 툭 던진다. 농담과 진담을 오가는 이야기 깊은 곳에 마음이 있다.



이기범씨는 지난 9월11일 프로야구 에스에스지(SSG)랜더스 대 롯데자이언츠의 시구자로 나섰다. 9월 말 강연에서 이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변화가 생긴 제 모습을 보이기까지는 꽤나 힘들었다”고 했다. 혹여나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날 피하면 어쩌지, 실수만 하는 게 아닌가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 망설이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숨기고 싶었다. 그래도 “저로 인해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사회에 더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싶어 용기 내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희망이 되고픈 마음은 강주연씨도 같았다. 그는 희망대사 활동을 나선 이유를 묻는 말에 “제가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라며 “치매 환자도 내일 당장 죽는 건 아니니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인간적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된다면 기꺼이 내가” 나설 수 있다고 답했다. 온 마음으로 성원하는 가족과 곁에서 함께 길을 찾아가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강주연씨와 이기범씨는 누군가에게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뷰의 끝자락, 이기범씨에게도 바람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동창회 가야죠”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두달 전 강연에서는 “요즘 하고 싶은 것이 한가지 생겼다. 혼자 여행을 떠나 좋은 걸 보고, 먹고, 즐기고 싶다”고 했다. 혼자는 못 가지만 그는 스스로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계획도 세워보고 싶다. 이기범씨는 “때론 보호자인 아내의 도움도 많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야 할 때가 있겠지만, 스스로 해보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고 말했다.



강주연씨와 이기범씨는 오늘도 치매의 ‘시작’을 살아가고 있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함께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당신에게 묻는다. 나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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