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의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포스터. 해양수산부 |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지 20년입니다. 옛날에 강원도 고성 거진항구에서는 강아지도 명태를 물고 다녔다는데, 명태는 왜 갑자기 없어졌나요? 너무 많이 잡아서 없어졌을까요? 아니면 기후변화 때문일까요? 숙제예요. 빨리 답해주세요. - 환경 초등생 M
“우리 행성 조사반이 초딩 숙제나 해주면 되냐, 이 말이야.”
“말도 마라. 우리 푸와로 탐정은 불륜 뒷조사 사업까지 개시했다고. 아무리 먹고 살기 어려워도 그렇지, 그게 지구환경과 무슨 상관이냐고? 정말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왓슨 요원은 영국 지부의 헤이스팅스 요원과 페이스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홈스 반장이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또 노가리를 까고 있군. 명태를 잡아야지, 명태를!”
“영국 지부는 북어 껍질 오그라들듯 재정난이 심각해졌대요. 반장님! 우리는 문제 없는 거죠?”
왓슨의 반격에 홈스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이제 막 도착한 제보를 보여줬어요.
“지금 강원도 고성에 명태 500마리가 찾아왔다는 소식이야. 빨리 가보자고.”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명태가 남한에서 잡힌 이유
지금은 사라졌지만, 명태는 국민 생선이었어요. 예로부터 명태에 관한 속담만 여럿일 정도로 일상과 가까이 있었고, 1990년대까지도 가정집 밥상에 흔하게 올랐죠.
명태는 1980년대 10만톤 이상 잡혔으나, 1990년대 1만톤 밑으로 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통계적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어획량이 줄었어요. 결국 명태 어획은 아예 금지되었죠.
명태. 국립수산과학원 |
명태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52년 승정원일기(효종 3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강원도에서 주상께 대구알젓을 올렸는데, 거기에 명태알젓이 섞여 있었습니다. 매우 정성이 부족하온 행위이니, 이 사건을 조사하여 엄중히 문초하고 폐해를 막아야 합니다.”
왕에게 올려야 할 대구알에 명태알을 섞은 거예요. 당시에는 대구알이 명태알보다 값진 음식이었나봐요.
명태는 조선시대 함경도에서 잡기 시작한 걸로 추정됩니다. 함경도 명천군의 명(明)과 어부 태씨의 태(太)자, 이렇게 한 글자씩 따서 ‘명태’라고 이름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죠. 그런데, 승정원일기를 보니 강원도에서도 잡았다고 하는데요?
왓슨 요원의 문헌 조사 결과, 명태의 서식지는 기후에 따라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왓슨이 이죽거리며 오래된 미술 작품을 하나 내놓았어요.
“반장님, 이 그림을 보십시오. 이 얼어붙은 강이 어딘지 아십니까? 1684년의 영국 런던 템즈강입니다. 얼어붙은 강에서 사람들이 겨울 축제를 벌이고 있어요. 심지어 빙판 위에 상점들도 있고요.”
13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 등에서 기온이 내려간 ‘소빙기’가 닥쳤다. 지금은 얼지 않는 영국 런던의 템스강에서 겨울축제를 벌이는 모습. 토머스 위키(Thomas Wyke)가 1683년 그렸다. 위키미디어코먼스 |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런던에서 산천어축제라도 했다는 건가?”
“아이고, 무식하셔라. 런던은 웬만해선 얼음이 얼지 않아요. 요즈음에 템스강이 얼었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폭염의 시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지만,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북반구 대부분 지역에서 평균 기온이 내려갑니다.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빙하가 확장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시기를 ‘소빙기’라고 부르죠. 1684년 런던의 작가 존 에블린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내가 얼어붙은 템스강을 건너는데, 얼음이 두꺼워 노점이 들어선 것은 물론 고기까지 구워 팔고 있었다. 이러한 노점과 상점 사이로 말과 마차, 수레가 지나다녔다.”
소빙기 기후와 날씨는 각종 기록과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템스강에서는 노점이 들어섰고, 네덜란드 운하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했죠. 영국에서 포도 농사가 사라졌고, 유럽 전역에서 냉해로 인한 흉작이 잦았어요. 홈스가 물었어요.
“그런데, 이 그림이 명태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반장님은 역사와 철학, 문학에는 젬병이시군요. 과학과 범죄학만 알아서는 지구 환경 문제를 풀 수 없답니다.”
왓슨이 두툼한 논문 더미를 던졌어요.
일부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한반도에도 소빙기로 부를 만한 기후변동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전역에 한랭한 기후가 계속되었고 바다도 비슷한 영향을 받았다는 거예요.
수온 1~10도에서 사는 냉수성 어종인 명태는 보통 함경도에서 많이 잡히지만, 소빙기에는 서식지의 남방한계선이 꾸준히 남쪽으로 내려갔어요. 한반도에서 이어진 소빙기 400년 동안 명태 어장은 강원도 삼척까지 이르렀죠.
그해 기상을 예측하는 속담도 있었죠. 강원도에 ‘여름에 명태나 도루묵, 양미리가 개락이면(많이 잡히면) 흉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한류성 어종이 여름에 많이 잡히면 그해 육지에서 냉해를 입어 농사를 망친다는 얘기예요. 가만히 듣던 홈스가 물었어요.
“이제 소빙기가 끝났고, 명태 서식지의 남방한계선이 다시 북상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명태가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는 거고?”
“긴 기후의 시간대에서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지요.”
명태들의 할머니, 등굽은 명태
강원도 고성의 아야진 항구에 가니, 갓 잡힌 명태들이 수조에서 헤엄치고 있었어요. 몸길이 15~17㎝로 아직 다 크지 않는 아성어였죠.
명태의 귀환 소식에,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어요. 기자들은 하얀 가운을 입은 박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질문을 퍼부었어요. 그는 10년 넘게 명태 양식과 방류를 연구한 ‘명태 박사’였어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살아있는 명태에 현상금까지 걸었죠.”
그는 ‘현상금 50만원’에 ‘집 나간 명태를 찾습니다’라고 써진 빛바랜 전단지를 보여줬어요.
“명태 수정란을 확보하려고 살아있는 명태를 찾았던 것입니다. 강원도의 모든 항구를 돌면서, 제 전화번호가 담긴 전단을 뿌렸습니다. 산 명태 한 마리에 50만원, 죽은 명태 5만원, 죽었어도 60㎝ 넘는 큰 명태를 가져온 사람에게는 10만원을 줬어요. 그렇게 명태에서 알을 확보해 수정, 부화시키고 성어로 길러내는 양식에 성공했습니다. 많은 치어를 방류했고요. 저는 그들 중 일부가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으로 믿습니다. 곧 유전자를 분석하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조용해진 항구에 홈스와 왓슨만 남았어요. 그런데, 바다에서 잡아 온 명태 중 핑크빛이 도는 명태 한 마리가 수조에서 폴짝 뛰기 시작했어요. “이리 와 봐!” 하고 부르는 거 같았죠. 가까이 가 보니, 정말로 핑크명태가 뻐끔거리며 말을 했어요.
“당신이 명태 박사인가요?”
“아니오. 저희는 서울에서 온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입니다. 명태 박사는 전단 붙이러 가셨어요.”
“아, 그렇군요. 명태 박사에게 꼭 전할 말이 있는데.”
핑크명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어요.
“우리들의 선조를 아십니까? 인공 수조에 들어와 최초로 알을 낳으신 우리들의 할머니! 우리는 그들의 자손입니다.”
문헌 조사를 했던 왓슨은 누굴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기억을 더듬으며 왓슨이 물었어요.
“등굽은 명태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2014년에 여기로 잡혀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고성의 실험실 수조에 갇혔어요. 할머니의 알은 익었고 수컷의 정액을 받았죠. 그렇게 해서 70만5000개의 수정란을 명태 박사가 얻은 거예요. 그런 과정이 반복되어 수많은 치어들이 바다에 방류된 거고요. 등굽은명태 할머니는 명태 인공양식의 기초를 닦은 거죠.”
핑크명태가 전한 비밀 메시지
자연에서 명태는 25만~40만 개의 알을 낳습니다. 여러분 입속에 들어가는 명란젓 한 숟갈에는 수천, 수만개의 알이 있어요. 하지만 그 많은 알 중에서 실제로 부화되어 치어가 되는 건 극소수입니다. 알에서 나온 치어는 물에 떠다니다가 다른 물고기의 ‘버금’하는 한 번의 입놀림에 죽죠. 천운으로 살아남은 극소수만 성어로 성장하는 거예요.
“최초의 산란 뒤 할머니는 한동안 건강했지만, 수조 내에서 충돌 사고로 등이 굽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둥둥 떠 있는 사체로 발견됐죠.”
“그런데, 명태 박사에게 전할 메시지란 게 뭐죠?”
“용왕님이 보낸 겁니다. 명태 치어를 그만 방류하라고요.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홈스와 왓슨은 궁금했어요. 핑크명태는 그러면 용궁에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죠. 동해의 무인도에서 용궁을 오가는 바다거북 셔틀이 있다고 했습니다. 승차권은 토끼 간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핑크명태가 웃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우루사 한 통이면 됩니다.”
홈스와 왓슨은 약국에 들러 우루사와 함께 용왕님께 드릴 선물로 밀크티슬도 한 상자 샀어요. 무인도에서는 바다거북이 기다리고 있었죠.
*10월21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