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뉴스1 |
14일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서로를 비판하는) 발언이 나오게 된 과정과 목적, 시장에 미친 영향 등을 다 조사하고 분석해야 불공정거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달 8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에 대해 엄정한 관리·감독과 불공정거래 조사를 지시한 데 대한 설명이다. 공개매수란 특정 주주가 경영권 확보 등을 위해 일정 기간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해 그 외 주주들의 주식을 장외에서 사주는 것을 말한다.
고려아연을 두고 다투는 회사 경영진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모든 투자자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시’ 후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지만, 금감원은 공시 전의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물량을 얼마에 살 것인지 외부에 발표하는 공개매수 공시 전에 상대방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자신들의 공개매수 가격 상향 조정 가능성을 일부 언론에 미리 언급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갈등은 지난달 12일 시작됐다.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인 영풍은 고려아연의 경영진과 갈등을 빚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손을 잡고 주당 66만원에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어 일주일 후인 9월 19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계열사와 협력사 임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온 힘을 다해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것이고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고려아연이 대항 공개매수를 할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실제로 발언한 지 9거래일 후에 고려아연은 주당 83만원에 대항 공개매수에 나선다고 공시했다.
문제는 최 회장의 발언이 나온 시점부터 대항 공개매수가 시작된 시기까지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 회장이 등판할 가능성이 커지자 주가는 67만9000원에서 77만6000원까지 올랐다. 한때는 79만1000원까지 뛰면서 MBK파트너스가 제시한 공개매수가(75만원)를 넘기도 했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실패로 몰아가기 위해 최 회장이 공개매수 공시 전에 발언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이런 목적성이 확인되면 불공정거래에 해당할 공산이 있다.
이후 MBK파트너스는 주당 83만원으로 공개매수가를 올렸고, 고려아연은 89만원으로 받아쳤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는 이달 14일,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는 같은 달 28일까지 진행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10월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발표한 것 역시 금감원이 지적할 소지가 있다.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는 먼저 고려아연의 경영 성과를 두고 부딪혔다. ‘고려아연의 무분별한 투자로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우려된다’는 MBK파트너스의 주장에 고려아연은 “2021~2024년까지 당사가 투자한 기업은 당기순이익을 냈다”며 “MBK파트너스·영풍은 투자사 우량기업의 당기순이익을 제외하는 등 (이익의 규모를) 교묘하게 비틀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동성을 평가절하하기 위한 악마의 편집”이라며 “6월 말 기준 당사의 현금은 2조1277억원, 총차입금은 1조3288억원으로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도 7989억원(이 남는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MBK파트너스는 곧장 재반박했다. MBK파트너스는 순현금은 차입금뿐만 아니라 사용이 제한된 현금도 빼야 한다는 게 그 골자였다. MBK파트너스는 “올해 반기 말 기준 남은 순현금 6680억원에 하반기 기확정된 호주 풍력발전소 투자금 잔액과 중간 배당금, 자사주 매입 등에 따른 금액을 차감하면 올해 말에는 440억원의 순부채로 전환될 예정”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이 가진 현금이 중요한 이유는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재원이라서다. 하지만 양측은 고려아연이 가진 현금을 두고 7989억원과 마이너스(-) 440억원이라고 주장이 갈리고 있다. 8000억원 넘게 차이 나는 만큼 어느 한쪽은 자신의 공개매수 성공을 위해 수치를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자사주 매수도 마찬가지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살 수 없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자본시장법상 공개매수자와 그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 공개매수 대상 회사의 주식을 공개매수가 아닌 방법으로 매수하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서울중앙지법이 기각하면서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수할 수 있게 되자,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에 쓸 수 있는 배당가능이익 한도는 586억원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자 고려아연은 배당가능이익은 6조원 이상이라며 “시세조종과 시장교란 의도를 가진 악의적인 행위”를 MBK파트너스가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주장이 부딪힌 때 역시 양측의 공개매수가 진행되고 있을 시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니면 말고 식의 싸움은 안 된다”라며 “자신에게 유리하고 타인에게 불리하게끔 (정보 등을) 유포하는 건 풍문 유포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금감원은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맺은 콜옵션(주식매도청구권) 계약이 제대로 공시됐는지 여부와 그간 보도된 사안들을 중점적으로 살필 방침이다.
한편 불공정거래 조사는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가 종료된 이후에나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검토해야 할 자료가 많아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혐의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는데, 주식 매각 명령까지 가능하다.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7월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 경영권 인수 당시 경쟁자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하이브의 공개매수가(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는다./연합뉴스 |
금감원의 불공정거래 조사 소요 기간을 짐작할 만한 과거 사례가 있다.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공개매수를 진행하던 지난해 2월 16일 IBK투자증권 판교점에서 대규모 주식 매수 주문이 접수됐다. 이에 SM엔터테인먼트의 가격은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매수가보다 뛰었고, 하이브는 “(특정 창구를 이용한 대량 매집은) 시세를 조종해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고 했다.
그달 하이브는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고, 8개월 뒤인 지난해 10월에야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등에 대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같은 달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을 불러 조사한 끝에 지난해 11월 금감원은 김 위원장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올해 8월 검찰은 김 위원장을 구속기소했고, 이달 11일 김 위원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보석을 청구했다. 카카오의 불공정거래 의혹은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8개월 뒤인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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