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재보선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직접적 충돌은 삼가고 있지만, 당내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한 대표 발언을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돼 향후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가닥이 잡힐지 주목된다.
尹 귀국 길 마중 나간 韓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텃밭서도 위기감
한 대표의 대통령실 인적 쇄신 주장은 김 여사 조언·측근 그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여사가 검찰의 명품백 사건 무혐의 결론 이후 마포대교를 시찰하는 등 ‘사과 없는 광폭행보’로 여론 악화에 기름을 붓고, 한 대표에 대한 ‘공격 사주’ 의혹을 받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비서관이 “십상시 같은 몇 사람이 김 여사를 쥐락펴락한다”고 한 녹취록이 공개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한 친한(친한동훈)계 의원은 13일 통화에서 “지금 국민께서 우려하는 지점이 있고, 여러 지지율(하락 추세)을 보면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잠재우고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나 당원 열망이 크다”며 “야당은 계속 특검이다 상설특검이다 정치 공세를 할 테고, 의혹은 한 시간이 멀다 않고 계속 나오니 그냥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용산 인적 쇄신론(12일 부산 금정)과 검찰을 향한 “납득할 만한 결과” 촉구(10일 인천 강화), 김 여사 공개 활동 자제 촉구(9일 금정) 언급은 재보선 유세 지원 현장에서 나왔다. 모두 여당이 수성을 노리는 ‘텃밭’ 지역인데도 김 여사 문제를 바라보는 민심이 싸늘하다는 평가다. 특히 4·10 총선에서 여당의 탄핵 저지선을 지켜준 부산 밑바닥 민심의 악화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친한계 원외 인사는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더라도 강화와 금정에서 느껴지는 손의 힘이 다르다. ‘늬들 뭐 하고 있냐’는 반응이다 보니 (한 대표가) 민심에 맞는 상식적인 발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침묵하는 대통령실
이제 관심은 한 대표의 김 여사 관련 발언 수위가 더 높아질지, 윤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서 한 대표의 주장을 수용할지에 모아진다.
친한계 내부는 ‘꺼낼 만한 카드는 다 빼들었다’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잇단 압박성 발언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파열음을 냈다가는 어렵사리 조성된 독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 대표 발언으로 독대 성사 가능성이 낮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재보궐선거 후 추진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협의 중”이라며 “독대와 관련해 변화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친윤계에서는 친한계 일각이 윤 대통령 부부의 서울 용산구 관저가 있는 ‘한남동 라인’이라는 용어를 써 가며 인적 쇄신 요구까지 제기한 데 대해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 않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그런 표현과 수위로 노골적 요구를 하는 건 당을 위해서도, 선거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친윤계 인사는 “대통령실 인적 쇄신 요구는 주로 야당이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한 대표는 배신자의 길로 들어섰고, 용산의 독대 요청 수용은 ‘각자 갈 길 간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최후의 만찬’ 성격이 아닌가 싶다”고 내다봤다.
나경원 의원이 이날 “저들(더불어민주당)의 악의적 정치프레임 안에서 용산 압박, 기승전 김건희 여사 언급을 하며 야권의 선거전략을 결과적으로 돕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당내에서는 한 대표가 당력을 엉뚱한 곳에 쏟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친한계 의원은 “공격으로 득점을 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실점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공격해 얻는 반사이익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대표 1심 선고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향후 공세의 고삐를 조이기 위해서라도 김 여사 문제를 이번에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태영·김나현·유지혜·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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