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집어삼키는 사상초유의 통합우승 4연패를 달성하며 ‘삼성 왕조’ 시대를 열었다. 2015년에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통합우승 5연패를 노렸지만,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핵심투수 3인방이 해외원정 도박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엔트리에서 빠졌다. 결국 마운드의 구멍을 메우지 못하고 그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친 뒤 삼성 왕조는 거짓말같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모기업이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야구단에 대한 투자 기조가 바뀌었고,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이적하면서 2016년부터 가을야구 초대장을 받아들기도 힘든 약체가 됐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게 2021년, 딱 한 차례에 불과할 정도다.
공교롭게도 삼성이 현재 홈구장으로 쓰는 삼성라이온즈파크(이하 라팍)는 2016년에 문을 열었다. 라팍은 홈 플레이트에서 좌우 펜스까지 99m, 중앙 펜스 122.5m로 그리 짧은 정도는 아니지만, 좌우중간 펜스가 107m로 다른 구장들에 비해 많이 짧다. 그래서 홈런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3회말 무사 1,3루 상황 삼성 3번타자 구자욱이 LG 선발 최원태를 상대로 3점홈런을 친 뒤 홈을 밟고 있다. 뉴스1 |
그러나 라팍 개장 후 삼성은 그 이점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올 시즌 이전까지 150홈런을 넘긴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타자 친화적인 구장의 이점은 상대팀들만 누렸다.
지난 시즌만 해도 88홈런으로 팀 홈런 순위 8위에 그쳤던 삼성 타선은 올 시즌 상전벽해 급의 변화를 겪었다. 지난 시즌의 두 배를 훌쩍 넘는 185홈런을 때려내며 팀 홈런 전체 1위에 오른 것이다. 삼성 타선의 리더인 구자욱은 33홈런을 터뜨리며 생애 첫 30홈런 이상 시즌을 보냈다. 3년차 내야수 김영웅은 28홈런을 때려내며 잠재력을 폭발시켰고, 오랜 기간 유망주의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던 이성규도 22홈런을 터뜨리며 팀 타선의 무게를 더했다. KT에서 주전 자리를 잃고 트레이드로 합류한 ‘왕년의 홈런왕’ 박병호는 KT에서는 홈런 3개에 그쳤으나 삼성 이적 후 20홈런을 터뜨리며 부활했다. 20홈런 중 라팍에서 때려낸 게 14개였을 정도로 홈런 공장장을 홈으로 쓰는 이점을 처음 누린 삼성이다.
홈런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정규시즌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PO·5전3승제) 직행 티켓을 따낸 삼성이 3년 만에 라팍에서 다시 열린 가을야구에서 첫 판부터 홈런포를 펑펑 터뜨리며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삼성은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PO 1차전 LG와의 경기에서 홈런만 3개를 터뜨린 타선의 폭발력과 선발 데니 레예스의 역투를 앞세워 10-4로 이겼다. 역대 5전3승제로 치러진 PO에서 1차전을 승리한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은 33번 중 25번으로, 그 확률은 75.7%에 달한다. 삼성으로선 한국시리즈를 향한 칠부능선을 넘은 셈이다. 삼성과 LG의 PO 2차전은 14일 오후 6시30분에 열린다. 삼성은 원태인, LG는 디트릭 엔스를 선발로 예고했다.
삼성 사령탑으로 첫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박진만 감독은 경기 전 “지난달 28일 이후 실전 경기를 치르지 않아 실전 감각이 떨어져있다. 우리의 장점인 장타력이 발휘되기 위해선 얼마나 실전 감각을 빨리 끌어올리느냐다. 준비는 잘 했다.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라고 걱정과 기대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박 감독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삼성의 가공할 만한 배팅 파워는 플레이오프 첫 판부터 확실하게 드러났다. 1회 1사 후 윤정빈의 2루타와 구자욱의 내야안타, 디아즈의 희생플라이로 간단히 선취점을 뽑아낸 삼성은 3회부터 3이닝 연속 홈런포를 폭발시켰다.
시작은 9월 이후 가공할 만한 타격 실력을 뽐내며 데뷔 첫 월간 MVP를 수상한 구자욱이었다. 구자욱은 9월 16경기에서 타율 0.500(1위), 9홈런(1위), 24타점(1위), 장타율 1.017(1위), 출루율 0.559(1위)으로 타격 대부분의 지표에서 1위에 오르는 맹타를 휘둘렀다. 당연히 월간 MVP는 그의 몫이었다. 기자단 투표 30표 중 29표를 싹쓸이할 정도였다. 그 기세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도 이어졌다.
4회 선두타자 김지찬과 윤정빈의 연속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구자욱은 볼카운트 1B-1S에서 LG 선발 최원태의 3구째 커터가 밋밋하게 가운데로 몰린 것을 놓치지 않고 들어올렸고, 타구는 쭉쭉 뻗어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겼다. 비거리 125m로 라팍이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홈런이 될만한 타구였다. 1-0에서 순식간에 4-0이 되면서 경기 흐름이 삼성으로 넘어가는 소중한 한 방이었다. 홈런포 포함 4타수 3안타 3타점 3득점 1볼넷으로 맹활약한 구자욱은 데일리 MVP에 선정됐다.
LG가 4회 오지환의 솔로포로 추격전을 시작하자 4회엔 팀내 홈런 2위 김영웅의 방망이가 번쩍하며 LG 벤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영웅은 4회 선두타자로 나서 최원태의 바깥쪽 체인지업을 걷어올렸다. 발사각도 43도의 플라이볼이었지만, 김영웅의 힘이 제대로 실린 타구는 둥실둥실 110m를 날아가 우측 펜스를 살짝 넘어갔다. 이 피홈런으로 최원태는 3이닝 7피안타 5실점(5자책)으로 조기에 마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삼성의 대체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도미니카 공화국)로 홈런포 대열에 합류했다. 5회 1사 1루에서 LG의 세 번째 투수 김진성의 몸쪽 낮은 코스로 잘 제구된 포크볼을 제대로 걷어올렸고,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큰 타구로 연결됐다.
삼성 마운드에선 부상으로 이탈한 코너 시볼드 대신 1선발 역할을 맡은 레예스의 역투가 반짝반짝 빛났다. 6.2이닝 동안 LG 타선을 4피안타 2볼넷으로 확실히 틀어막으며 3실점(1자책)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101구 중 직구는 23구에 불과할 정도로 적었지만, 커터(24구), 체인지업(22구), 슬라이더(19구), 투심(13개) 등 변형 직구와 변화구를 앞세운 투구가 인상적이었다. 탈삼진이 단 1개일 정도로 압도하는 맛은 적었지만, 다양한 구종을 앞세운 투구를 통해 LG 타자들의 타구를 빗맞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돋보였다.
LG는 선발 최원태가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힘든 경기를 펼쳤다. 1-7로 패색이 짙던 7회 잡은 2사 만루 기회에서 홍창기의 평범한 1루 땅볼을 삼성 1루수 디아즈가 잡지 못하는 실책을 틈타 3-7로 추격한 뒤 신민재의 적시타까지 4-7까지 따라붙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준플레이오프에서 KT와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느라 열세 상황에서 승리조 불펜을 낼 수 없었고, 추격조 불펜 투수들로는 불붙은 삼성 타선을 막아내기 역부족이었다. 7회 1점을 내준 뒤 8회에도 2점을 내주며 사실상 백기를 들어야했다.
삼성 박진만 감독은 9회 마운드에 필승조 김태훈(0.2이닝), 마무리 김재윤(0.1이닝)을 올려 컨디션을 점검하며 1차전 승리를 마무리했다.
대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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