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현지시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신화통신사=연합뉴스 |
[주간경향] ‘다른 나라를 침범하여 공격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침공’의 정의다. 이스라엘은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레바논 전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난 10월 1일에는 레바논 남부(이스라엘 북부) 국경지역에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주권국가 성립 이후 국제사회는 ‘침공’ 행위에 관한 정의를 문서로 확립해 왔다. 국제법의 한 영역인 ‘개전에 관한 정의론(jus ad bellum)’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연합헌장(유엔헌장) 제2조 제4항이다. ‘모든 회원국의 무력 위협이나 행사를 금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피해 합법적으로 침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국제연합헌장 제51조에 나온 예외조항에 따라 ‘무력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self-defence)을 발동했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지난 1년, 이스라엘의 행보는 이 예외조항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됐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지역을 기습공격했다. 즉각적 보복을 밝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폭격과 지상전을 시작했다. 압도적 무력을 앞세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궤멸하고,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것처럼 보였다. 개전 후 1년이 지났다.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진행 중이다. 첫째로 자위권 행사는 정해진 종료 기한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 1주년을 맞아 오히려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레바논 내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돕는다는 것이 침공 명분이 됐다. 둘째로 자위권 행사는 보복 대상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 지상군의 레바논 진격을 두고 “자신과 자국민을 방어하고 민간인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낼 권리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자위권을 인정했다. 반면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움직임을 두고는 “어떠한 공격을 가하든 엄정한 후과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 3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했다. 셋째로 자위권을 시행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그 우방국’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 10월 1일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신화통신사=연합뉴스 |
기간, 대상에 한계가 없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가 길어지는 만큼 사상자 수도 비례해서 늘었다. 이미 지난 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명을 넘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으로 단 2주 만에 이미 1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보건부는 지난 10월 1일 하루 동안에만 폭격으로 55명이 숨지고, 156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발생한 이스라엘인 피해는 1200여명 사망이었다. 자위권 행사는 필요성과 비례성을 충족해야 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자위권 행사와 침략전쟁을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쟁 목표가 ‘귀환’인가, ‘패권’인가
이스라엘은 전쟁을 중동 전역으로 확장할 기세다. 구체적으로 레바논(헤즈볼라)-예멘(후티)-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가 목표로 꼽힌다. 같은 시아파인 이라크·시리아 역시 잠재적 대상이다. 이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시아파 맹주’로 불리는 이란이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의 무장단체는 이란의 전통적 군사전략인 ‘포워드 디펜스(Forward Defense)’의 핵심이다. 이는 ‘이란 국경 밖에서 적과 전쟁을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이들 무장단체는 이란이 상정한 적에 맞설 대리인(Proxy)이 된다. 즉 이들의 궤멸을 목표로 한 공격은 이란 안보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라는 의미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해 “전쟁에 나오라”고 외친 것이다.
중동 지역에 형성된 시아파 벨트 |
이란은 응답했다. 지난 10월 1일 새벽 이란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 나타났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이날 발사된 미사일은 180여발이다. 다만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 정권이 추가 보복을 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보복 조치는 종료된다”며 확전을 경계하는 발언을 남겼다. 또 테헤란에서 암살당한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와 지난 9월 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지역 표적 공습으로 사망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에 대한 보복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란은 최소한의 자위권만 행사했음을 거듭 밝힌 셈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반응은 “이란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헤즈볼라 거점 레바논, 친이란 정부가 통치하는 시리아, 후티 반군이 있는 예멘, 이란을 ‘악의 축’으로 거명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맞선 ‘저항의 축’으로 자임하고 있는 국가 및 단체다. 이스라엘이 이들의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해 졌다.
지난 10월 2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있다./EPA=연합뉴스 |
이스라엘의 시아파 무장단체 공격→이란의 반격→이스라엘의 재반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전쟁의 목적’을 의심케 한다. 명분은 ‘이스라엘 북부(레바논 남부) 피란 주민들의 귀향’이지만, 실질은 ‘이스라엘의 지역패권 도전’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외교 전문지 ‘폴리티코’, ‘포린어페어스’, ‘포린폴리시’ 등에는 ‘이스라엘이 중동 권력의 현상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행보가 언제까지 중동의 ‘움마’(이슬람 공동체)를 깨우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중동 내 이슬람 국가들은 수니파, 시아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종파 갈등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대립 구도에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이 끼어들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다.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선례가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과 수교를 논의했던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이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공격하자 협상을 중단했다. 종파 갈등과 별개로 이슬람권이 공유하는 움마가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행보가 이를 자극할 경우 초래될 결과는 하나다. ‘제5차 중동전쟁’이다.
주간경향은 이스라엘 행보에 대한 중동 내 분위기, 확전 가능성 등을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교수, 언론인, 연구원 등과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이번 전쟁의 의미를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키워드는 ‘Unjustified’(정당하지 않은)였다.
중동이 느끼는 ‘이중잣대’
하마다 샤반 박사(Dr. Hamada Shaaban)는 반극단주의 및 평화 연구로 유명한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다. 그는 이번 전쟁의 의미를 두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에서 자행한 민간인 거주 건물 폭격 사례는 이번 전쟁의 부당함을 잘 보여준다”며 “우리는 전 세계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인권을 강조한 서구식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를 보호해야 할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말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 건설을 목표로 중동지역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개념인 ‘대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경에 관한 정치적 개념이다. 좁게는 팔레스타인, 넓게는 1921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했던 영국령 자치국 트란스요르단 지역이 전부 이스라엘 영토라는 인식이다. 이곳은 현재 대부분 요르단 영토다.
쿠웨이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ANA(Arab news agency) 소속 언론인 마그디 톨바(Magdy Tolba) 에디터 역시 유사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가 헤즈볼라 사령관이나 무장세력을 넘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약 10만명에 달하는 레바논, 시리아 국민을 난민으로 만들었다”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아랍 영토 점령에 단호히 반대하는 모든 저항 단체를 말살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저항의 축’을 구성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이라크, 예멘을 박멸할 때까지 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스타파 알사왈리(Mustafa Alsawahly)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 교수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며 가자지구 저항세력(하마스)을 지원하면 어떻게 보복당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며 “이는 모든 문제가 그들이 가자지구를 야만적으로 점령한 것에서 비롯됐음을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부당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쟁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이스라엘 주장과 달리 이번 전쟁을 단순한 자위권 행사로 보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전쟁의 근원에 대한 이들의 관점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란 등의 주요 행위자가 아닌 서구사회의 ‘이중잣대’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다. 샤반 박사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국가들의 경고를 보면 ‘이스라엘에 대해 어떠한 공격도 하지 말라’고만 할 뿐, ‘이스라엘이 새로운 단체나 국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자위권 행사이고, 공격받으면 확전이라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행보보다 서구사회의 이중잣대가 아랍 세계의 ‘움마’를 더 자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톨바 에디터는 “아랍인들 대부분이 인권과 도덕을 강조하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범죄행위를 중단하도록 하지 않는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지난 10월 2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왼쪽) 주유엔 이란 대사와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가 발언하고 있다./AFP=연합뉴스 |
다만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후 단기적 상황에 대해서는 세 사람 모두 ‘전면전’보단 ‘국지전’에 무게를 실었다. 가자지구, 레바논을 넘어선 지역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전 형태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알사왈리 교수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에 직접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헤즈볼라를 완전히 궤멸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지리적 거리가 있는 이란으로까지 전선을 확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상황이 관리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샤반 박사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사실이 알려지며 주요 산유국들 수출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 폐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고, 지난 10월 2일 WTI(서부텍사스유) 국제유가가 한때 5% 이상 급등했다”며 “이로 인해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다면 극적인 휴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쟁은 중동 내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 등이 하고 있지만 이를 지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미국 및 서구 지역이 두드리는 계산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미국의 군사력은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서도 빛났다. 공격 감행 3시간 전 이미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것이고, 이스라엘에 도달하는데 12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지중해 동부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구축함 두 척이 요격미사일 12발을 발사해 이란 미사일을 격추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동에서 바닥을 친 외교력이다. 본래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탈중동’이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연결해 이란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미국이 ‘역외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전략이 일그러졌다. 이스라엘은 이를 ‘중동 재편’의 기회로 삼고 사실상 미국의 의사를 무시한 채 움직이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미국에 알리지 않고 헤즈볼라 대원들의 삐삐(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시키며 단숨에 전선을 확장했다. 가자지구에서 휴전 협정 역시 이스라엘 측 거부로 공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의 참전은 미국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진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EPA=연합뉴스 |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를 두고 “미국이 중동지역 분쟁에 너무 쉽게 끌려들어 가고 있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셔틀 외교’(서로 직접 대화하지 않는 두 나라를 중재하는 외교)의 복원이다.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전쟁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이집트, 카타르 등과 함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압박하고, 하마스를 고립시켜 휴전안에 서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레임덕에 빠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게다가 중동에 만연한 미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걸림돌이다. 톨바 에디터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한 중동지역의 대립 구도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이스라엘에 대한 조치가 오는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스라엘 문제는 미국 정치적으로 ‘유대인의 돈’이냐, ‘젊은 유권자의 지지냐’의 문제로 치환된다”며 “선거를 치르는 데 유대인의 자금력이 필요하지만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최선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중동 문제를 현상 유지 수준에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난 후에야 중동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대선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현재의 전쟁 기조가 이어진다면 산술적으로 발생 가능한 사망자 수는 최소 2000명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평균 92분, 14곳 ‘뺑뺑이’… 응급실 대란을 기록하다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