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은 누구인가. 금리가 낮은 엔화를 금리가 높은 외화로 교환해 외화예금이나 해외유가증권 등에 투자하는 일본 거주자들을 풍자하는 용어다. 특히 2022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는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한 데 반해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를 오래 유지했기 때문에 거주자인 와타나베 부인뿐만 아니라 비거주자인 글로벌 투자자까지 나서서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소위 엔 캐리트레이드에 몰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의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엔 캐리트레이드 포지션의 청산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 행태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역사적으로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고 일본 금리가 급락하면서 더 이상 자국 내에서는 금융수익을 확보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초저금리가 고착화된 것은 버블 경제의 붕괴로 성장 동력이 사라진 데 따른 것이며 자연스럽게 해외투자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 행태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등극했다.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엔화가 오히려 강세로 반전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사실 와타나베 부인으로서는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하면 일본으로 자금을 환수하려는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엔화 강세를 조장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는 근본적으로 일본이 전통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국으로서 그동안 해외투자의 결과 어마어마한 대외금융자산이 축적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무역수지에서 소득수지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무역수지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흑자폭이 꾸준히 감소되다가 대략 2010년 전후 적자로 돌아섰다. 그 자리에 막대한 대외투자로 인한 배당과 이자소득이 들어섰고 이를 메꾸고도 남는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와타나베 부인이 국제수지 구조 변화에 일조를 한 셈이다.
이제 우리나라 상황을 보자. 그 어느 때보다 해외증권투자가 붐이다. 소위 ‘국장’에 대한 불신이 개인 주식투자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경제의 블록화가 강화된 여건에서 해외 직간접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국민연금 등도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해외투자가 불가피해졌다. 대외금융자산의 축적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거주자의 해외투자 결과를 나타내는 대외금융자산이 외국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결과인 대외금융부채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현재 순(net) 대외금융자산이 외환보유액의 두 배나 되고 5년 후에는 지금의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불과 수 년 전만해도 외환보유액을 제외하면 국제투자포지션이 순부채 상태를 면치 못했는데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글로벌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우리도 일본처럼 경상수지를 소득수지 흑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까지 한다.
우리나라가 수출주도경제인 점을 생각하면 무역수지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회복 등에 힘입어 무역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내고 있고 당초 전망을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무역수지가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다행히 대외투자자금의 배당과 이자소득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모양새를 닮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여건이 앞으로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동안의 환율 상승은 미국 경제의 호조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달러화 가치가 독보적으로 상승한 데 따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 거주자들의 해외투자가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최근 미 연준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하면서 환율 상승이 일부 되돌려지고 있으나 그간의 해외투자 추세는 국제금융시장에 큰 불안요인이 없는 한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 만약에 국제금융시장에 큰 위기가 닥친다면 우리 해외투자자금이 어떻게 움직일까. 일본처럼 통화가 강세로 전환되지는 못할지라도 해외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으로 환류될 수 있을까. 사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해외투자자금의 상당 규모가 환류되기는 했었다. 그에 비추어 본다면 그때보다 개인의 해외투자 비중이 확대된 지금 환류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과 비교해볼 때 자본시장 발전 정도가 차이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돌아 온 와타나베 부인은 밸류업을 이루어낸 일본 주식시장에서 투자대안을 찾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지금과 같은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디스카운트가 지속된다면 과연 국내로 돌아온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으로 자산을 재배분하는 데 혹여 주저하지나 않을지. 조속히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밸류업이 실현되기를 열망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서경IN skin@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