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회사가 자율주행 산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의 규제 개선은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영상데이터 수집에 대한 정책은 최근에서야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고 자율주행 사고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은 하세월이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 국내 혁신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산업계에 따르면 자율주행과 관련된 정부 규제가 늦어지며 벤처·스타트업을 포함한 제조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 개선이 기업의 혁신에 비해 느릴 수는 있지만 두 발, 세 발 뒤에서 따라오는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현재 국내에서 자율주행 레벨3 이상의 차량이 상용화되지 않는 것은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제도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율주행차 사고에 대한 제도 부재다. 현재까지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 운행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날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자율주행 산업을 꺼리게 되는 걸림돌이라는 평가가 과거부터 이어져왔지만 여태 제자리걸음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은 캘리포니아·네바다 등 각 주 차원에서 이미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 정부는 올해까지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영상 데이터 수집에 대한 규제는 올해 2월에서야 일부 업체를 상대로 임시 해제됐다.
국내 자율주행 산업이 제도에 가로 막혀 공회전을 하는 동안 빠르게 치고 나간 곳은 중국이다. 중국의 최대 검색 기업인 바이두는 2021년 베이징에서 첫 자율주행 로보택시 상업 서비스를 시작한 뒤 현재 중국 10개 도시로 사업을 확대했다. 올해는 새로운 6세대 로보택시 1000대를 우한에 배치해 차량 운영과 관리 전반을 자동화할 계획을 밝혔다.
중국 자율주행 산업이 가속도가 붙는 데는 무엇보다 정부 지원이 빠르게 이뤄진 것이 영향을 끼쳤다. 중국 정부는 연구개발(R&D) 지원뿐 아니라 최근에도 비야디(BYD) 등 중국 자동차 업체 9개가 베이징 등 7개 도시에서의 자율주행 3·4를 테스트하는 것을 승인했다.
자율주행의 선두 주자인 미국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웨이모는 센프란시스코에서 운전자가 없는 완전 자율주행 승차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주정부가 글로벌 혁신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며 지원한 덕이라는 평가다. 텍사스주는 연내 미국 최초로 자율주행 화물 트럭을 위한 ‘스마트 화물 통행로’를 개통한다. 텍사스주가 2016년부터 자율주행 차량 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기업 혁신에 발맞춰 발판을 마련한 결과다. 한국은 올해 7월에서야 고속도로 등 광역지구를 자율주행 시범지구로 지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전통의 강호인 일본의 기세도 만만찮다. 일본 정부는 레벨4 차량의 본격적인 보급 시기를 2030년 이후로 설정하고 혁신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자율주행 사고의 처분 방침을 결정하는 별도 기관의 설치도 검토하고 있다. 닛산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올해 자율주행차를 공개했다. 올해 4분기 실증 시험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혼다는 일본 택시 업체 데이토·고쿠사이와 협업해 레벨4 로보택시 ‘크루즈 오리진’ 500대를 2026년부터 도쿄에서 운영한다.
더딘 규제 개선 탓에 업계 간 자율주행 수준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와 테슬라의 첨단주행보조시스템(ADAS)은 자율주행 레벨2로 같은 수준이지만 차이가 있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과 달리 현대차·기아의 ADAS는 도심 내 자율주행을 지원하지 않는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에 들어서거나 회전교차로 진입, 비보호 좌회전이나 우회전 기능도 상용화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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