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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현수막에 걸려 넘어져 ‘뇌진탕’…업체 “증거 대라. 보상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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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현수막, 횡단보도에 걸어놓지 않고 그 옆의 화단에 설치…본인 실수로 넘어진 것 아닌가 싶다”
당국 “A씨가 국민신문고 통해 문제 제기해 과거 대법 판례와 국가배상 규정 찾아 보상방안 안내했다”
행인이 허가도 받지 않고 걸어놓은 ‘불법’ 현수막에 걸려 넘어지며 머리가 깨지는 중상을 입었다.

세계일보

A씨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자 현수막이 걸린 화단을 가로질러 가려다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뒤로 넘어지며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연합뉴스


하지만 사실상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6월4일 오후 2시쯤 수도권의 한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뛰어가다 현수막의 길게 늘어진 줄에 목이 걸려 뒤로 넘어졌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부딪혀 피가 났지만, 다행히 현장 근무를 위해 안전모를 쓴 덕에 더 큰 위험은 피했다. 당시 사고 장소를 지나던 행인이 A씨를 부축해 길가로 데려가 주었지만, A씨는 그대로 앉은 채 30분 정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고 한다.

A씨가 신경외과를 찾아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해보니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지며 피가 났으며 뇌진탕 증세가 나타났다. 당시 의사는 머리 외부로 출혈이 발생해 뇌출혈을 피할 수 있었으며 자칫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의사는 정밀 검사를 위해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자고 했지만, A씨는 비용 부담이 커 추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업무 현장으로 복귀했다.

A씨는 사흘 뒤인 6월 7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고발했다. 그가 촬영한 사고 현장의 불법 현수막은 횡단보도 옆 화단의 가로수에 매여있었다.

가로수는 키가 작고 가로수 간 간격이 넓어 현수막이 낮게 걸렸으며 가늘고 긴 줄을 이용해 양옆으로 고정됐다. A씨는 사고 당시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자 화단을 가로질러 빨리 가려다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렸다.

확인 결과 문제의 현수막은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설치된 것이었다.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는 관할 동사무소는 문제의 현수막을 즉시 철거함과 동시에 관련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A씨에게 피해 보상 방안을 안내했다. 과거 대법원의 비슷한 판례를 찾아 불법 현수막 게시 업체에 보상받거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그러나 A씨가 7월쯤 불법 현수막 업체에 연락해보니 현수막 줄에 걸렸다는 증거를 대라거나, 사고 발생 한참 후인 이제 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보상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동사무소에서 알려준 대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고 했더니 소송이 하도 많아 빨라도 1년 이상 걸릴 예정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소송을 위한 서류 준비와 변호사 선임 등도 A씨에겐 큰 부담이 됐다.

A씨는 "현수막 줄에 목이 걸릴 때 목이 잘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생계를 위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현장 업무를 하고 있지만 머리가 계속 아프고 기억력도 떨어져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너무 만연해 있으며, 불법을 저지른 업체와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행정 당국 모두 후속 조치도 없고 무책임하다. 나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법 현수막 업체 관계자는 "현수막을 허가도 받지 않고 걸어놓은 점은 죄송하다"면서도 "매일 돈 내놓으라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 A씨의 주장도 앞뒤가 잘 안 맞는다고 판단한다. 현수막은 횡단보도에 걸어놓지 않고 그 옆의 화단에 걸어놓았는데 본인 실수로 넘어진 것 아닌가. 그리고 현수막에 걸려 넘어졌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동사무소 담당자는 "모든 현수막은 허가받고 걸어야 하지만 무허가 불법 현수막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수시로 단속을 나가며, 한번 단속하면 30~40개씩 떼어낸다. A씨의 사고가 발생한 현수막도 단속 대상이었다"면서 "A씨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 과거 대법원 판례와 국가배상 규정을 찾아 보상방안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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