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은 9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오른쪽 두 번째)와의 회담에서 전기차 문제를 주요 의제로 꺼냈다. 사진 중국 외교부 |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관세 폭탄’을 막기 위해 중국이 전방위 외교전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스페인과 노르웨이 총리를 연이어 만나고, 중국 대표단은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날아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브뤼셀을 방문 중인 리페이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 등 고위급 대표단이 전날 자비네 바이안트 EU 집행위 통상총국장과 회동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논의는 다음 주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왕타오 중국 상무부장(장관)과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통상담당 집행부위원장 간의 장관급 논의를 준비하는 성격을 띤다. 양측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조정 문제를 논의할 전망이다.
EU는 앞서 발표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확정 관세 초안에서 기존 일반 관세 10%에 더한 추가 관세율을 17.0~36.3%포인트로 정했다. 이는 27개 회원국 투표를 거쳐 시행 여부가 최종 결정되는데, 회원국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통과된다. 가결되면 10월30일 관보에 게재되고 이후 5년간 시행된다.
EU 내 우군 확보를 위해 시 주석도 직접 나섰다. 9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의 회담에서 시 주석은 전기차를 주요 의제로 꺼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 기업이 스페인에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공평하며 안전하고 차별 없는 비즈니스 환경을 계속 제공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이 중국과 EU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50주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과 EU 관계에 있어 스페인도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스페인이 중국산 전기차 추가 관세율 확정을 위한 EU 투표에서 중국에 유리한 역할을 해줄 것을 압박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스페인 정부 발표문에는 전기차 관련 부분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산체스 총리가 “스페인은 중국 기업에 양호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시 주석과 만나기 전 한 비즈니스 행사에서 “스페인은 세계무역기구(WTO) 내에서 전기차 분쟁에 대한 협상 합의에 노력할 것”이라며 “무역전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함께 중국산 전기차 추가 관세 부과에 적극적인 EU 회원국 중 하나지만, 약한 고리로도 꼽힌다. 중국이 전기차 관세 맞불 조치로 EU산 돼지고기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인데, 스페인은 중국에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연간 15억달러(약 2조원) 상당의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같은 날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전기차 문제를 언급했다. 시 주석은 “양국 경제는 상호보완성이 높다”며 각자의 장점을 결합해 해상 운송, 농수산물, 전기차 등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또 “노르웨이가 중국과 유럽 간의 건강한 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해 달라”고도 했다.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 회원국으로서 유럽 내 영향력이 있는 노르웨이에 손을 내민 것이다.
스퇴레 총리는 방중 전 언론 인터뷰에서 “노르웨이는 중국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독일 전기차를 타고 있지만 중국 전기차를 타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수입을 금지한 일본 수산물의 빈자리를 노르웨이산으로 채우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외교전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EU는 지난 6월 최고 추가 관세율을 38.1%포인트로 예고했다가 7월(37.6%포인트)과 8월(36.3%포인트)에 연달아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중국과 협상할 의지를 보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 기업들과 주EU 중국상공회의소는 EU 집행위에 차량 판매가격과 수출물량을 조정하겠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잇달아 보내는 등 협상 가능성을 파고들고 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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