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용(82·뒷줄) 우키시마호 유족회 회장이 지난 7월 일부 승선자 명부의 사본을 갖고 한국을 방문한 일본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와 만났다. /일본 사민당 홈페이지 |
한 회장은 1945년 1월쯤 일본에 징용돼 갔다가 7개월 후 우키시마호에서 숨진 고(故) 한석희씨의 외아들이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1970년대부터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에 잠들어 있을 선친의 유해를 찾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1년 우키시마호 피해자 유족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 회장은 “1991년 소송 당시 일본 정부에 ‘승선자 명부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배가 침몰돼서 없다’고 했다. 그런데 올 들어 일본 언론인과 야당이 정보 공개 청구를 하니 75건 정도 명부가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선친의 경우, 같은 경남 거창 출신의 인척이 우키시마호에서 생존한 뒤 우리 집을 찾아와 ‘그 배에 함께 있었는데 나오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알려줘 희생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서 “젊은 나이에 자식도 남기지 못하고 연고 없는 곳에 끌려갔던 징용 피해자들 중에 ‘무명의 희생자’가 얼마나 많겠나”라고 말했다.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후, 일본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 3725명 중 52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 회장은 “당시 일본의 한 잡지에 게재된 한국인 사망자 524명 명단에는 선친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실제로 배에 탑승한 사람도, 한국인 사망자도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 회장은 마이즈루 앞바다와 인근에 묻힌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의 유골을 한·일 정부가 발굴해 유족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말했다. “내가 벌써 아버지 곁에 갈 나이가 됐다. 저승에서 선친을 뵈면 ‘유골을 찾아 한국 땅에 모셔놓고 왔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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