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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학을 떼다’는 말라리아로 고생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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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도 지났다. 처서는 ‘곳’이나 ‘때’의 뜻으로 많이 쓰이는 한자 處와 ‘더위’를 의미하는 한자 暑가 결합한 말이다. 따라서 얼핏 ‘더운 때’를 일컫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處에는 ‘쉬다’ 또는 ‘머무르다’ 따위의 뜻도 있다. 즉 처서는 ‘더위가 더는 심해지지 않는 때’를 가리킨다. 이는 처서가 조선 연산군 때 ‘조서(조暑)’로 불린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인물 김처선(金處善)은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7명의 왕을 섬긴 환관이다. 그는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차례 관직을 잃고, 유배를 가기도 했다. 특히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에게 “고금에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다”고 직간하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연산군은 그의 이름에 들어 있는 ‘處’와 ‘善’을 쓰지 못하게 해 백성들이 개명을 해야 했고, ‘處暑도 ‘조暑’로 부르게 됐다. 조서는 ‘가는 더위’를 뜻한다.

더위가 물러가면 여름내 성화를 부리던 모기의 기세도 한풀 꺾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모기의 어원은 분명치 않다. 모기를 뜻하는 말이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세기로, 초기 형태는 ‘모’였다. 이후 ‘모긔’로 변했다가 ‘모기’ 혹은 ‘모구’로 변형됐다. ‘모구’는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쓰이고 있다.

모기는 ‘인류 최대의 살인자’로 불린다. 사람에 의한 살인보다 모기로 인해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말라리아다. 이런 말라리아는 동남아시아 등 외국에서나 만연하는 질병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도 말라리아로 고생했다. 학질(학疾)이 그것이다. 말라리아가 “병원충을 가진 학질모기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법정 전염병”이다.

학질에 걸리면 고생이 심하다. 병이 낫기도 힘들다. “사람이 괴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느라 진이 빠지거나 질리게 되다”를 뜻하는 말 ‘학을 떼다’가 여기서 나왔다. ‘학질’과 ‘학’은 동의어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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