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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인절미는 새 신부의 입막음 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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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이야기. 인절미
질 좋은 찹쌀을 골라 밥처럼 쪄서 안반이나 절구에 담고 떡메로 쳐서 모양을 만든 뒤 고물을 묻힌 떡, 인절미다. 인절미는 이두(吏讀)식 표기법인 인절병(引切餠), 인절미(引節米) 등으로 쓰는데 그 성질이 차지기 때문에 잡아 당겨 끊어야 하는 떡이라는 의미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안반에 놓고 떡을 칠 때 쑥을 섞어 만든 쑥인절미

안반에 놓고 떡을 칠 때 쑥을 섞어 만든 쑥인절미


인절미 이름에 관한 속설도 있다. 조선 인조(仁祖) 때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이 반란군에게 점령당하자 임금은 공주의 공산성으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피난 중인 어느 날,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 가지고 임금님께 바쳤는데 그 떡 맛이 좋고 처음 먹어보는 떡이라 신하들에게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이에 인조가 친히 떡 이름을 지어 내렸는데, 임서방이 절미(折米 조선시대에 공물을 쌀로 환산하여 받던 일)한 떡이라 하여 ‘임절미’라 한 것이 오늘날 인절미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네 선조들은 인절미를 혼례 때 이바지음식으로 사용했다. 특히 연안(延安 황해도 연백의 옛 지명) 백천 지방에서 생산되는 기름지고 찰진 찹쌀로 만든 연안인절미는 ‘혼인 인절미’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혼인 때 많이 만들어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연안인절미는 사돈댁으로 보낼 때 ‘안반만 하다’고 할 정도로 큼직하게 잘라 큰 고리짝에 담아 푸짐하게 이바지했다고 한다. 혼인상에는 놋그릇 가득히 담아냈다. 우리 풍속에 혼례 때 인절미를 상에 놓는 것이나, 사돈댁에 인절미를 이바지 보내는 풍습은, 찰기가 강함 찹쌀을 사용함으로써 끈적거리고 잘 들러붙은 성질을 이용, 남녀관계에서의 동질화 의식을 반영한 민속관행이라 할 수 있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가 돌아갈 때마다 ‘입마개떡’ 이라 하여 크게 만든 인절미를 들려 보내기도 했다. 이는 시집에서 입을 봉하고 살라는 의미를 지녔다. 더러는 시집 식구에게 비록 내 딸이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이 떡을 먹고 너그럽게 봐달라는 뇌물성 떡이며, 신랑과의 사이나 시집 식구와의 사이를 결착시키는 상징적 접착제 구실로 여기기도 했다.

인절미는 표면에 묻히는 고물의 종류에 따라 팥 인절미, 깨인절미 등으로 부르며, 찐 찹쌀을 안반에 놓고 칠 때 섞는 부재료에 따라 쑥인절미, 수리취인절미 등으로 부른다. <음식디미방>의 인절미 굽는 법을 보면 “엿을 떡 속에 구워 아침으로 먹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주식 대용으로 먹지 않았나 생각된다. <증보산림경제>에 인절병 제법이 처음으로 자세히 나오며, <규합총서>의 인절미 제법은 <증보산림경제>와 흡사하나 “쌀 씻기를 옥같이 씻고, 대추를 가늘게 두드려 떡에 넣어 볶은 팥 묻혀 굳으면 좋다” 고 했으니, 콩가루를 사용하는 대신 붉은 팥을 묻히고, 떡 칠 때도 대추를 넣는 것이 현재와 다른 방식이다.


<성호사설>에서는 “떡을 먼저 익힌 다음에 이것을 잘 치고, 여기에 볶아서 가루로 만든 것을 묻힌다.”고 설명하고 있어 지금의 인절미와 가장 유사하다.

/조선닷컴 라이프미디어팀 정재균 PD (jeongsan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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