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부중 역도부 조성현(50·왼쪽) 코치와 안산공고 역도부 박상민(32) 코치가 역도 여자 81㎏ 이상급 박혜정 등 역대 선부중 졸업 역도부원 사진이 걸려있는 벽면을 뒤로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
“중량급은 스쿼트 할 때 발목이 잘 안 꺾이는데, 혜정이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고 대단했어요.”
2024 파리올림픽 역도 여자 81㎏ 이상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박혜정(21·고양시청)을 발굴한 안산 선부중 역도부 조성현(50) 코치는 “2016년 7월을 잊지 못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 코치는 안산 지역의 다른 중학교 1학년생이던 박혜정을 그때 처음 만났다. 박혜정의 은메달은 2008 베이징올림픽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금메달, 2016 리우올림픽 윤진희의 동메달 이후 8년 만의 여자 역도 메달이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역도 여자 81kg 이상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박혜정이 시상식에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8일 오후 선부중 역도관에서 만난 조 코치는 “처음 역도장에 와서 해본다는 스쿼트는 자연스럽고 완벽했고, 스트레칭 체조를 할 땐 다리를 180도로 찢는 유연성에 놀랐다”며 “‘장차 최고가 될 선수가 내 품에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여자 역도 국가대표 박혜정(21)이 지난 2021년 10월 전국체전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뒤 선부중 역도장으로 돌아와 조성현 선부중 역도부 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훈련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
여자 역도 국가대표 박혜정(21)이 2021년 10월 전국체전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뒤 선부중 역도장으로 돌아와 훈련을 하던 당시 모습. 손바닥에 굳은살과 살짝 맺힌 피가 보인다. 손성배 기자 |
박혜정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선부중으로 전학을 왔다. 운동을 늦게 시작한 만큼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서 박혜정은 한 학년 유급했고, 조 코치의 새벽·오전·오후 하루 세 번 일대일 훈련을 받았다. 조 코치는 “박혜정은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넥 클린 자세를 세계 신기록 수준인 180㎏까지 수행했다”며 “국내 적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한 뒤엔 ‘제2의 장미란이 아닌 제1의 박혜정이 되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소녀였다”고 했다.
박혜정은 경기를 나흘 앞둔 지난 7일 파리 현지에서 자신을 발굴하고 고교 3학년 선수촌 생활을 빼고 5년을 함께한 조 코치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조 코치는 “마음은 편하게, 탄수화물 많이 먹고 힘내자”는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박혜정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자신감을 보였다.
안산 선부중 역도부 운동선수들의 간식. 감자와 에너지바 등. 손성배 기자 |
선부중·안산공고 역도장에 있던 생 인삼 포대. 여자 역도 국가대표 박혜정이 고교 시절 먹고 힘을 냈다는 그 인삼이다. 손성배 기자 |
안산공고 역도부 박상민(32) 코치는 박혜정의 기량 비결을 월등한 훈련량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꼽았다. 박혜정의 선부중·안산공고 역도부 선배이기도 한 박 코치는 “혜정이의 타고난 재능에 힘든 역도부 훈련을 ‘땡땡이’치지 않고 모두 소화했던 노력이 결국 열매를 맺었다”고 말했다.
2019~2020년 코로나19 집합금지 명령으로 중·고교 운동부 훈련이 어려워지자 박혜정은 역도부 여자 삼총사로 불린 김이안(현 경남도청), 윤예진(종로구청)과 함께 수도권 일대 험한 산을 찾아다녔다. 박 코치에게 서울 근교 크로스핏 체육관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서 중량 운동을 하는 등 여건이 되는 대로 훈련에 매진했다.
박혜정이 거쳐 간 선부중엔 지난해 10월 역도 전용 체육관이 들어섰다. 역도관 가장 안쪽엔 그가 하체 운동에 사용한 오래된 레그 프레스 기구가 놓여있다. 1999년 창단한 선부중 역도부 25년 역사와 함께 한 기구라 다른 기구들은 폐기하면서도 이 기구만큼은 남겼다. 닳아 터진 스펀지와 발바닥 모양으로 패인 나무판은 박혜정을 포함한 역도 꿈나무들이 중력을 이겨내며 안간힘을 썼던 흔적이었다.
안산 선부중 역도부 조성현(50·왼쪽) 코치와 안산공고 역도부 박상민(32) 코치가 역도 여자 81㎏ 이상급 박혜정 등이 사용했던 선부중 역도부 레그프레스 옆에 나란히 섰다. 손성배 기자 |
안산 선부중 역도부 조성현(50·왼쪽) 코치와 안산공고 역도부 박상민(32) 코치가 역도 여자 81㎏ 이상급 국가대표 박혜정(21·고양시청)이 월등한 기량을 보여 새로 들였다는 케틀벨을 가리키고 있다. 손성배 기자 |
청소년기 박혜정을 지도한 코치들은 잘 성장한 제자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함께 훈련할 때 더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조 코치는 “지금은 여건이 좋아져 감자, 고구마, 삶은 달걀에 초콜릿 바까지 항시 구비하고 있지만 박혜정이 운동할 땐 그렇게 못 했었다”며 “한 후원자가 사준 생인삼 한 뿌리를 씹어 먹으며 운동했던 모습이 지금도 역력하다”고 말했다.
박혜정은 2021년 안산공고 2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용상 한국 신기록을 세운 뒤 지난 4월 국제역도연맹(IWF) 월드컵까지 3년간 꾸준히 자기 자신을 넘어서며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이번 올림픽에선 인상 131㎏, 용상 168㎏ 합계 299㎏으로 또 한 번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조 코치는 “이번 올림픽이 제1의 박혜정이 되는 출발점이었다. 앞으로 아프지 말고 더 높이 비상하길 바란다”며 “역도 중량급 전성기가 27~29세인 만큼 앞으로 4년 뒤인 LA 올림픽도 박혜정의 성장기 대회일 것”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여자 역도 선수 박혜정(21·고양시청)을 육성한 안산 선부중 역도부 조성현(50) 코치가 제2의 박혜정을 꿈꾸는 역도 유망주를 지도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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