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안창옥이 지난 3일 파리 올림픽 기계 체조 여자 도마 결승에서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로이터 |
파리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시몬 바일스(미국)가 세 번째 금메달을 따낸 순간 박수를 보낸 사람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북한 라이벌 안창옥(21)이었다. 안창옥은 TV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결승 진출자와 포옹하기도 했다. BBC는 4일 “앞선 여자 도마 결승전에서 북한은 남한(한국), 미국과 무대를 공유했다”며 “이는 외국인과의 드문 교류 장면을 보여준 사례로 안창옥은 해외여행 중 엄격한 관리 하에 외교적 체조를 수행해야 했다”고 전했다.
BBC는 ‘북한이 올림픽 무대에 돌아오면서 외교적인 체조를 선보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 체조, 배드민턴 선수들이 경기 도중 보인 호의적인 장면을 분석했다. BBC는 “파리 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들을 파견한 결정은 깊은 고립의 시기를 겪은 후 부분적으로 문을 다시 열고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며 “이는 북한이 남한에 쓰레기로 가득 찬 풍선을 보내는 등 긴장된 시기를 보내는 중 나온 결정”이라고 전했다. BBC는 “북한 선수들은 한국 라이벌과 함께 셀카를 찍기도 했다”며 “이는 북한이 국제 사회에 재합류하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선수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엄격하게 세계와의 교류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전 AP 기자이자 평양에 미국 뉴스 통신사 첫 지부를 연 진 에이치 리는 “북한의 이번 올림픽 참가 결정은 국제 사회로의 ‘눈에 띄는’ 복귀”라며 “북한은 파리에서 핵 문제와 상관없이 국제 사회에 재합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북한 리종식과 김금용, 중국 쑨잉샤와 왕추친, 한국 신유빈과 임종훈이 지난 30일 파리 올림픽 혼합 복식 시상식을 마친 뒤 셀카를 찍고 있다. UPI |
안창옥과 바일스에 대한 관중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바일스는 레이디 가가, 톰 크루즈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관중 수천명도 바일스의 이름을 연호했다. 반면, 안창옥은 중립적인 관중으로부터 예의 바른 박수를 받는 데 그쳤다.
라디오자유아시아(RFA)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올림픽 경기가 생중계되지 않는다. 2006~2008년 영국의 북한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는 BBC에 “평양의 지식 계층은 어떤 경로로든 올림픽 결과를 알고 있다”고 전했다. 킹스 칼리지 런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북한의 오랜 ‘스포츠 외교’ 예술은 국가의 정상성을 증명하려는 것”이라며 “북한 운동선수들은 세계적으로 의심을 받지 않는 몇 안 되는 대표자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남북이 경계를 허무는 드문 순간이 있었다. 탁구 혼합복식에서 동메달을 딴 임종훈, 신유빈이 은메달을 딴 북한 선수들과 셀카를 찍는 장면이었다. 셀카는 북한이 이번 올림픽에서 외부 세계와 가진 몇 안 되는 교류 중 하나다. 파르도 교수는 “이 셀카에 동의한 것이 북한의 ‘메시지’”라며 “평양의 동의를 얻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북한은 남한 사람들과 문제가 없으며, 문제가 있는 것은 남한 정부와의 문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 외에도 안창옥이 핀 배지 모음을 들고 있는 미확인 영상도 등장했다. 존 에버라드 전 대사는 “메달을 따지 못했을 때 큰 타격은 처벌이 아니라,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승리한 선수들은 사회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거나 새 집과 같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BBC는 “다만 이번 스포츠 외교가 남북한 간의 의미 있는 새로운 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며 선을 그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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