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
북한이 정부의 수해 피해 지원 의사 표명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자력 복구 의지를 강조했다. 필요하더라도 한국이 아닌 러시아에 손을 내밀겠다면서다.
이와 관련, 러시아 크렘린궁과 북한 관영 매체는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위문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은 김정은을 "친애하는 동지"로 부른 서한을 북측에 보내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안했다. "귀국 북서부 지역에 발생한 홍수의 비극적인 결과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분들께 위로와 응원의 말씀을 전해달라"는 내용이다. "당신은 언제나 러시아의 도움과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썼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에 김정은이 “푸틴 동지와 러시아 정부에 충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다만 러시아 측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큰물(홍수) 피해를 시급히 가시기 위한 국가적인 대책들이 강구됐으므로 이미 세워진 계획에 따라 피해 복구 사업이 진척될 것"이라면서 당장 받아들이진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정은은 대신 "만약 앞으로 반드시 도움이 필요될 때는 가장 진실한 벗들, 모스크바에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푸틴에 직접 감사 표시를 한 건 한국 정부가 북측에 인도주의적 지원 의사를 표명한 이후 보인 반응과는 대조적이다. 앞서 통일부는 1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폭우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와 함께 “주민들이 처한 인도적 어려움에 대해 동포애의 견지에서 북한 이재민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을 신속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지원 물품에 대해선 북측과 협의해 정하겠다면서 “서면, 대면, 제3국 협의” 등 형식을 가리지 않고 만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3일 김정은의 공군 직승비행(헬기)부대 현지 지도를 보도하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지금 적들의 쓰레기 언론들은 우리 피해 지역의 인명 피해가 1000명 또는 15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구조 임무 중 여러 대의 직승기(헬기)들이 추락된 것으로 보인다는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면서 “이런 모략 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압록강 유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침수 피해가 제일 컸던 신의주 지구에서 인명피해가 한 건도 나지 않은 사실”을 강조하고, “임무 수행 중 1대의 직승기가 구조 지역에서 불시 착륙한 사실이 있으나 비행사들이 모두 무사”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침수 피해는 있었지만 적어도 신의주 지역엔 사상자가 없었고, 한국 일부 언론이 보도한 헬기 추락도 인명 피해 없는 불시 착륙이었다는 식으로 공개 주장한 것이다. 일각에서 이재민 5000여명 가운데 4200여명이 구조된 것을 놓고 사망자 수가 800명 가량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는데, 북한은 이에 대해 “직승기로 4200여명, 수상 구조 임무를 수행한 기타 부대들까지 5000여 명을 구출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이어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면서 “어떻게 하나 우리를 깎아 내리자고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 쓰레기들의 상습적인 버릇과 추악한 본색”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정부의 지원 의사를 거부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다.
다만 북한 주장과 달리 정부는 위성사진 분석 등을 근거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압록강이 지나는 자강도, 양강도 역시 수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푸틴도 친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분들”을 위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4~5년 간 북한의 재난 복구 패턴을 보면 김정은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걸 꺼려하고, 이를 체면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엿보인다"면서 "이번에도 직접 수해 현장을 진두지휘해 자신이 주민들을 구출하는 '재난 리더십' 연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특히 러시아 측의 지원 의사도 "현 단계에서 필요하진 않다"며 에둘러 거절한 건 김정은이 직접 수재민을 구출하는 모습을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는 와중에 외부에 손을 벌리는 모양새는 맞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긴급 구호 물자나 식량 등을 지원 받는 과정에서 북한의 경제 실상을 노출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피해 상황을 축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다만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의 발표 만으로 우리 측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하진 않겠다"며 "좀 더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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