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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간첩죄에 ‘적국’ 개념 없애… 우방도 안봐주는 美, 최대 사형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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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수미 테리가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 2명(핸들러 1, 2)과 맨해튼 한 그리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미 법무부는 공소장에 이같이 수사 중 비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일보 DB


많은 국가들은 1차대전 시기를 전후해 군사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 간첩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후 2차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적국(敵國)을 위한 첩보 활동에 주로 법을 적용하고 처벌했지만, 냉전이 끝나고 나서도 적용 범위를 오히려 확대하면서 국가 기밀을 보호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도 자국(自國)의 비밀을 캐거나 외부에 유출하는 사례는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11년 제정한 공식기밀법(Official Secrets Act)을 통해 간첩 행위를 처벌해온 영국은 지난해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새로 제정해 간첩 행위에 대한 범위를 확대했다. 100년 넘은 공식기밀법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적국에 유용한’ 정보 제공을 대상으로 한다는 문구가 있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에 많았다. 복잡·다단해진 국제 관계에서 다양한 주체와 방법으로 기밀 유출이 벌어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10여 년 전부터 개정을 추진했다. 지난해 제정된 새 국가안보법은 ‘적국’ 개념을 없애고 ‘보호 대상 정보’ 및 ‘경제·산업 기밀’을 외국에 공개하는 행위, 외국 정보기관의 영국 내 활동을 돕는 행위, 사보타주(파괴 공작) 등을 처벌 대상으로 추가했다. 군사 기밀 등 보호 대상 정보의 경우 유출 시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이 법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상호 연결된 현대사회에선 ‘적국’이란 개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첨단 기술 등 기업 영업 비밀을 유출해 외국에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경우 등에도 간첩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중죄인 미국 간첩죄의 근거법인 간첩법(Espionage Act)은 미국에 해를 끼치거나 적을 도울 수 있는 국방 관련 정보를 무단으로 보t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모두 범죄로 규정한다. 우방국인 이스라엘, 심지어 미국 언론사에 국가 기밀 정보를 흘렸다가 기소되거나 처벌받은 경우도 있다.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다 이스라엘에 미국의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1985년 체포된 조너선 폴라드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35년간 복역하다 2020년에야 석방됐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과정 등이 기록된 국방부 비밀 보고서를 민간 기관인 ‘랜드연구소’ 직원이 빼돌려 뉴욕타임스를 통해 까발린 ‘펜타곤 페이퍼’ 사건의 폭로자 대니얼 엘스버그도 간첩법으로 기소됐다. 아직 재판 중이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문서를 가지고 나와 집에 보관한 등의 혐의로 지난해 기소됐을 때 적용된 법도 간첩법이었다.

지난달 한국계 수미 테리(52·한국명 김수미)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연방 검찰에 의해 기소될 때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적용을 받았다. 간첩법보다 형량(최대 5년 혹은 최대 25만달러 벌금)은 작은 반면 적용 범위가 두루뭉술하고 광범위한 것이 특징이다. FARA는 1938년에 제정됐지만 최근 들어 이를 적용한 기소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도 지난해 7월부터 간첩 행위의 범위를 크게 넓히고 처벌을 강화한 ‘반(反)간첩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간첩 행위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등으로 확대한 것이다. 정보 제공 대상에 대한 제한은 없다. ‘국가 안보와 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기에 중국 당국이 간첩 행위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처벌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주요 산업 관련 데이터, 중국 지도부에 대한 비판성 글을 외국에 보내도 간첩으로 지목돼 처벌될 여지를 열어두었다. 지난달 24일 중국의 방첩당국인 국가안전부는 국가 이익에 실제로 해를 입히지 않아도 간첩 혐의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반간첩법이 강도 높게 시행되는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간첩 혐의로 잡혀가는 일이 꽤 잦다. 2014년 이후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구체적 혐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중국통(中國通)’ 학자나 기업 고위직이다. 중국 관료와 만나 북한 상황을 물어본 일본인 사업가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동중국해·대만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한 시기에 체포·처벌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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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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