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연합뉴스 언론사 이미지

5·18 때 여고생 피신시킨 박병규 열사 유족도 정신적 손배 승소

연합뉴스 박철홍
원문보기
박병규 5·18 열사[국립 5·18민주묘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병규 5·18 열사
[국립 5·18민주묘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나는 할 일이 있어 남아야 한다. 너희는 가라."

5·18 당시 항쟁의 거점이었던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키다 산화한 박병규 열사. 박 열사의 형이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박 열사는 1980년 당시 동국대 1학년이었다.

서울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신군부 탄압이 거세지자 서울에 유학 중인 아들이 걱정된 부모는 박 열사를 광주로 오게 했다.

그러나 광주로 온 박 열사는 전남대 앞에서 공수부대가 학생과 시민들에게 곤봉을 내리치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시위에 가담했다.

항쟁 기간에는 학생수습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전남도청을 지키는 시민군들의 밥을 책임지는 취사반장 역할을 여고생들과 함께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덮친다는 소식에 박 열사는 함께 밥을 짓고 설거지하던 여고생들을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 너희는 살아야 한다"고 도청 밖으로 피신시켰다.

박 열사는 "나는 할 일이 있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도청으로 되돌아갔고,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키다 계엄군 총탄에 산화한 최후 항쟁인 열다섯명 중 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5·18 당시 주먹밥 나누는 시민들[5·18기념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5·18 당시 주먹밥 나누는 시민들
[5·18기념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들을 먼저 보낸 박 열사의 어머니는 한 맺힌 삶을 살다 주변 시장 상인들의 주선으로 1996년 교통사고 사망 미혼 여성과 아들을 영혼 결혼시켜줬다.


이듬해 완공된 국립 5·18민주묘지에 아들을 안장하며 묘비에 "죽음을 앞두고 전화로 안심시키던 네가 주검으로 돌아온 아침, 에미 가슴도 이 나라 정의도 무너지더니 17년 세월 끝에 이제 너를 내 가슴에서 보낼 수 있게 됐구나. 에미가"라는 글귀를 남겼다.

박 열사의 다른 가족들도 평생을 5·18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여동생 박경순 씨는 5·18민주묘지 소장을 역임한 뒤 2007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박 열사의 희생 후 낙인으로 취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 형 박계남 씨는 2016년부터 5·18 민주묘지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박 열사 곁을 지키다 최근 건강 악화로 그만뒀다.


광주지법 민사12단독 이상훈 부장판사는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헌정질서 파괴범죄로 박 열사가 사망했고 유족들도 그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명백하다며 형 박계남 씨에게 4천8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또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구금·구타·가혹행위 피해자 4명의 유족 15명에게도 상속 지분에 따라 180여만~1천2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광주지법[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지법
[연합뉴스 자료사진]


pch80@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김기현 부부 로저비비에 선물
    김기현 부부 로저비비에 선물
  2. 2이민지 3점슛
    이민지 3점슛
  3. 3트럼프 젤렌스키 키이우 공습
    트럼프 젤렌스키 키이우 공습
  4. 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5. 5임성근 셰프 식당 해명
    임성근 셰프 식당 해명

연합뉴스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