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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윤소희의 음악과 여행-미얀마의 찬팅…동남아<10> 미얀마②

뉴시스 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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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그 전에 알고 있던 ‘미얀마’는 민중과 승려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군부 독재의 나라라는 것이 전부였다. 기아에 허덕이며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즐비한 이 나라의 군부 수장 탄쉐 딸의 초호화 결혼식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뒤로는 국민들이 어리석기에 저런 지배자가 있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마저 있었으니 그 나라의 음악이며 문화는 볼 것도 없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수 년 전 전주 소리축제에서 들은 미얀마의 음악이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유독 아름다워 생각이 달라졌다. 음악이 저렇게 아름답다면 필시 그 나라는 아름다운 산과 들이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한 아름다운 문화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이미지가 확 바뀌었으니 음악의 힘이 그리도 대단했던 것이다.

그것이 인연의 끈이 됐을까. 지난해 겨울 미얀마로 위빠사나 수행을 가게 됐다. 시내로 접어드니 무섭고 암울한 나라로만 여겼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환했다. 숲속 수행 처, 예정대로 나의 처소가 배정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오로지 경행과 참선으로 나날을 보냈다. 누구하고도 개인적 커뮤니케이션을 갖지 말 것이며, 얼굴을 들어 주변을 보지도 말라는 규칙대로 하루하루가 흘렀다.

최고의 영성 지도자들이 200명에 달하는 모든 수행자들을 매일 매일 점검을 하며 요기(수행자)들을 최상으로 대우를 하는 수행처이지만 모든 것이 무료이니 사람들은 대중공양으로써 감사로움을 대신했다. “오늘은 어느 나라에서 온 누가 이 공양을 내었습니다”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그때 소개되는 나라들이 20개국이 넘었다. 그 중에 미국, 프랑스, 캐나다와 같은 이름은 그리 낮 선 것이 아니었지만 공산국가였던 러시아와 중국 등이 많은 것은 의외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가난한 미얀마 사람들이 이들을 위해 빈번히 공양을 하러 오는 것이었다. 부처님과 경전의 말씀대로라면 저렇게 착한 사람들의 나라는 분명 복 받고 잘 사는 곳이어야 할 텐데 세계 최빈국이라니. 그렇다면 이렇게 힘든 수행을 하고나면 나도 그들과 같이 빈궁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한 동안은 부질없는 생각들로 수행에 혼란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숲 속에서 수일간을 지내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의 살벌함이 보이기 시작했던 데다 그 살벌함 속에 깃든 나의 모습도 함께 보였기 때문이다. 모기며 벌레들을 시도 때도 없이 밟고 때리며 죽이는 것은 물론이요 숟가락에 음식을 떠서 넣은 입속은 독사보다 더 독한 침이 흘러나와서 물고기며 소, 양, 돼지에 온갖 풀잎들을 여지없이 삼키고 있지 않은가.


정신과 마음은 그 보다 더 하였다. 그간 비교적 얌전하게 살아 왔다고 여겼던 나 자신이었건만 알아차림 속에 본 나의 발걸음은 킬링필드의 정글에서 장총을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누군가 내게 덤벼들지 않나하고 사방을 쏘아보고 있으면서도 그럴 듯한 말과 웃음으로 위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궁극적으로 보면 동물들의 보호색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알고 보니 세상 어떤 일에도 분노나 서운함이 사라져 버렸고, 행복하다거나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에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행처의 규율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지만 귀는 항시 열려 있으니 새벽과 저녁으로 하는 기도 소리는 어쩔 수 없이 들려왔다. 그렇더라도 “좋다거나 싫다거나 나쁘다는 마음을 내기 전에 그것을 알아 차려서 끊어라”는 지도자의 지침을 철통같이 지켜야 하는데 천상의 화음 같은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아름답다’는 생각에 드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감각적인 음률을 금했던 초기 불교의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미얀마 승단은 예불 속에 의도적인 음악적 요소는 전혀 가미시키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도문을 읊는 순간에 자연히 율조가 생겨났으니 문화재로써 전문 승려들에 의해 공연되는 한국의 범패와는 차원이 다른 음향이었다.


미얀마의 의례문은 주로 팔리어와 미얀마어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팔리어는 성조에 따라 뜻이 달라지므로 낭송에도 언어에서 비롯된 율조가 자연히 형성됐던 것이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존귀하신 부처님께 절합니다)와 같은 기도문은 어느 사원에 가나 한결같이 하는 기도문인데 사원에 따라 개인에 따라 낭송조가 다소 다르기도 했다.

팔리어에 비하면 성조가 좀 더 단순하기는 하지만 미얀마어도 언어에 정해진 성조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베로 호미 수끼아따남 파리하란뚜~ ♩♪ ♬ ♪ ’(착한 사람도, 사기꾼 강도들도, 벌레와 귀신들까지도 모두 행복하기를……)”와 같은 것은 30분이 소요되는 긴 기도문이나 율조를 넣어 기도를 하니 30분이 지루한 줄을 몰랐다.

팔리어건 미얀마어건 읊조리다 보면 저절로 선율이 생겨나는지라 어떤 날에는 나도 모르게 그것을 악보로 적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을 멀리서 들으면 마치 유럽의 그레고리안찬트를 듣는 듯하기도 하거니와 그 가운데 화성적인 울림까지 있었으니 그것은 남녀가 합송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옥타브음정과 그 사이에 생성되는 배음들이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사찰의 예불 음악이 그레고리안찬트 같은 점은 대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정한 작곡가에 의해 쓰인 작품이 아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리어온 영성적 노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약진행이 거의 없고 부드럽고 완만한 순차진행 선율에 무반주의 담담한 발성이 닮았다. 음악에도 인류 보편의 특성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52호(11월2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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