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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로는 구현 못해 더 오싹… 배우 없이 AI로 만든 공포영화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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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모어 펌킨’ 권한슬 감독
AI 영화 ‘원 모어 펌킨’의 한 장면. 호박밭에 숨겨진 노부부의 비밀이 드러난다.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AI 영화 ‘원 모어 펌킨’의 한 장면. 호박밭에 숨겨진 노부부의 비밀이 드러난다.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당신 같은 신인에게 돈 많이 드는 판타지 시리즈를 맡길 수 없다.” 권한슬(30) 감독이 직접 쓴 ‘마법소녀 신나라’ 각본을 들고 여러 제작사와 만났을 때 들은 말이다. 제작사는 “우리가 기성 감독을 붙여 만들 테니 IP(지식재산권)를 넘길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권 감독은 직접 판타지 드라마를 구현하기 위해 CG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해 비디오 생성 AI ‘스테이블 디퓨전’이 공개되자 본격적으로 AI 영상 제작에 뛰어들었다.

올해 3월 권 감독은 AI로 만든 단편 영화 ‘원 모어 펌킨’으로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관객상을 받았다. 다음 달 4일부터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ID 필름(영화 시작 전 나오는 영상물)을 AI로 만들고, 지난 15일 열린 제1회 경상북도 국제 AI 메타버스 영화제에 조언하는 등 AI 콘텐츠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 참석한 '원 모어 펌킨'의 구도형 프로듀서, 권한슬 감독, 심사위원 리차드 테일러 웨타 워크숍 대표, 설한울 책임연구원(왼쪽부터).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 참석한 '원 모어 펌킨'의 구도형 프로듀서, 권한슬 감독, 심사위원 리차드 테일러 웨타 워크숍 대표, 설한울 책임연구원(왼쪽부터).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원 모어 펌킨’은 호박을 키우며 200살 넘게 장수한 노부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공포 영화. 제작비는 전기 요금을 빼면 0원으로, 단 5일 만에 3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권 감독은 “스터디 카페와 친구 회사 사무실을 전전하며 만들었다. 실제로 촬영했다면 특수 분장에 호박까지 다 심어야 하니 최소 1억은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노부부가 펄펄 끓는 호박죽 안에 빠져 있거나, 호박에 눈·코·입을 파낸 ‘잭 오 랜턴’이 피를 흘리는 장면처럼 AI가 생성해 내는 기괴한 이미지를 공포스럽게 활용했다. 권 감독은 “실사 촬영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AI 영상만의 특색을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AI는 여러 이미지를 섞어서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걸 잘하기 때문에, 한국적인 배경에 서양의 핼러윈 문화를 섞어봤죠. AI 영상의 한계인 ‘불쾌한 골짜기(인간을 어설프게 닮은 존재에 느끼는 혐오감)’도 공포 장르에선 강점이 되더라고요.”

AI 영상 제작에선 명령어를 섬세하게 입력하는 게 관건. 카메라 렌즈의 종류, 조명 각도와 세기, 카메라 앵글, 피사계 심도까지 세세하게 입력해야 한다. 중앙대 영화학과 출신인 권 감독은 “AI 영화라고 해서 버튼만 누른다고 만들어지진 않는다. 영화 문법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얼마나 연출력이 있는지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아직은 얼굴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움직임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1년 안에 AI 배우의 연기 지도까지 가능해질 겁니다.”

권한슬 감독의 '원 모어 펌킨'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권한슬 감독의 '원 모어 펌킨'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권 감독은 AI 영상 전문 스타트업을 설립해 기업·관공서의 광고를 만들고, AI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 플랫폼도 개발 중이다. “논의는 활발해졌지만, 국내 콘텐츠 업계의 AI 도입률은 낮은 편이에요. 전 세계에 AI 관련 서비스만 1만개가 넘기 때문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도 많고요. 장기적으로는 영화뿐 아니라 한국의 AI 콘텐츠 시장을 넓혀가는 게 목표입니다.”


여전히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CG 없는 촬영 방식, 톰 크루즈의 맨몸 액션에 열광하는 관객이 AI 영화에 돈을 쓸까. 권 감독은 “실사 영화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AI 영화가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성 감독들이 장악한 영화판에서 신인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고 믿어요. AI 배우를 쓰면, 터무니없이 비싼 배우 출연료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스태프에게 돌아갈 수 있고요.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겁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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