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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만큼 성숙한’ 박민지, 마음도 더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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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질환 극복하고 KLPGA 단일대회 4연패 신기록
우승상금 전액을 ‘동병상련의 이웃’ 위해 선뜻 기부
경향신문

박민지가 지난 6월 9일 강원도 양양 설해원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24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우승하고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KLPGA 제공


[주간경향]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통산 19승을 거둔 대형스타 박민지(26)는 사실 눈물을 잘 참는 ‘포커페이스’ 선수는 아니다. 2017년 데뷔 첫 우승 때도 울었고, 2018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3차 연장 끝에 두 번째 우승을 거뒀을 때는 허리 부상에 시달린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전 국민이 코로나19로 고통받던 2021년,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여자오픈에서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뒀을 때는 “저도 해냈으니 모두 힘내세요”라며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전 국민을 향해 메시지를 전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2021년 상반기에만 6승을 거두며 KLPGA 투어의 간판으로 떠 오른 이후 긴 시간 침묵하다가 2022년 첫 우승을 거뒀을 때는 “그동안 많이 울기도 했다”고, 인터뷰에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박민지가 지난 6월 9일 강원도 양양 설해원 골프장(파72)에서 열린 2024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총상금 12억원)에서 KLPGA 투어 사상 최초로 동일 대회 4년 연속 우승 역사를 쓴 뒤 또 한 번 굵은 눈물을 쏟았다.

첫날 8언더파 64타 선두로 출발한 그는 2~3라운드 내내 한 번도 리드를 뺏기지 않고 앞장서 달린 끝에 마침내 대기록을 달성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전반 9홀 동안 버디를 한 개도 잡지 못하다가 10번홀(파4)에서 오히려 보기를 기록해 3명 공동선두를 이뤘지만, 이때부터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여유 있는 3타차 우승(13언더파 203타)으로 마무리했다.

‘3차 신경통’ 시달려 우승 예측한 사람 적어

같은 대회에서 4년 연속 우승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 번 우승하기도 힘들지만, 이듬해에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타이틀을 지킨다는 건 더 어렵다. 그 기록을 3~4년 연속 우승으로 연장해 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박민지는 그걸 해냈다. KLPGA 투어 46년 역사상 동일 대회 4연패는 당분간 다시 나오기 힘든 신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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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가 지난 6월 9일 강원도 양양 설해원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24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버디 퍼트에 성공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KLPGA 제공


지난해까지 KLPGA 투어에서 한 대회 3년 연속 우승은 7번 있었다. 1980년대 최고 선수 구옥희 전 KLPGA 회장(작고)이 쾌남오픈, 수원오픈, KLPGA 선수권에서 각각 3연패를 기록했고 강수연(하이트컵 여자오픈), 박세리(서울여자골프선수권), 김해림(교촌레이디스오픈), 박민지(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가 한 차례씩 달성했다.

김해림의 3연패 행진이 2018년 끝난 이후 지난해 박민지가 다시 3연패의 불을 지폈지만, 사실 올해 그의 신기록 수립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올해 벌써 3승을 올린 이예원을 비롯한 경쟁자들의 기세가 거셌고, 무엇보다 박민지가 지난해부터 안면 ‘3차 신경통’이라는 희소질환에 시달리면서 경기력이 전 같지 않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가 신경통이라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가볍게 여길 병이 아니다. 박민지는 우승 인터뷰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병을 앓고 있는지 설명했다.

“3차 신경통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신경통이 머리로 왔는데, 전기가 통하듯 머리나 이마를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에 밖에 나갔는데 바람이 머리에 스치니 미친 듯이 통증이 몰려왔다. 샤워도 잘 못 했다. 그 정도로 겨울에 힘들었기 때문에 ‘골프는 둘째 치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무통기’인 것 같다. 통증이 없는 이 무통기가 오래갈 수 있도록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지난 3월 이후부터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아서 매일 감사하며 사는 중이다.”

박민지가 이번에 우승하고 흘린 눈물은 이전과는 달랐다. 전에도 허리 부상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고, 그 시기를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운동처방을 통해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감정이 북받쳐 운 적은 없었다. 3차 신경통이란 게 선수 생명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일상마저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KLPGA 최다승인 20승에 1승 차로 다가서

KLPGA 투어 최다승인 구옥희·신지애의 통산 20승에 1승 차로 다가선 박민지는 우승 인터뷰에서 “제가 20승을 달성하면 하려던 공약이 있는데, 성격이 급해서 이번에 하겠다”며 “이번 우승상금(2억1600만원)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우승 소감 등을 마친 그는 마지막으로 “감사할 분들께 인사하겠다”며 “다른 건 원치 않고 아프지만 말아 달라고 응원해주시는 팬들, 저를 치료해주시는 세 분 의사 선생님, 그리고 다른 선수에게 떠나지 않고 아픈 저와 계속 같이하겠다며 힘이 돼준 캐디 오빠, 정말…”이라며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울먹이며 뜨거운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이전까지 눈물이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고 흘린 혼자만의 눈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을 향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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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가 지난 6월 9일 강원도 양양 설해원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 투어 2024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후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KLPGA 제공


박민지는 2017년 데뷔 이후 4년간 매년 1승씩 올리다가 2021년 전반기에만 6승을 거두는 도약을 이뤘고, 이듬해에도 6승을 더하며 국내 여자골프 최고선수로 자리를 굳혔다. 1984년 LA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리스트 출신인 어머니 김옥화씨로부터 받은 탄탄한 몸과 혹독한 훈련을 통해 다진 체력, 강한 승부 근성, 많은 버디를 낚아내는 운영능력, 빠른 판단을 바탕으로 한 결단력 등을 바탕으로 ‘대세’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3년엔 해외대회 문을 자주 두드리며 자신감(US여자오픈 공동 13위 등)을 안고 미국 LPGA 진출을 꿈꾸던 터였다.

하지만 차오르던 의욕은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찾아온 3차 신경통으로 인해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말 LPGA 투어 등용문 Q시리즈 신청을 포기했고, 병을 극복하며 운동을 병행하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올 시즌을 완전히 빠지는 병가를 낼까 고민하다가 통증이 수그러드는가 싶어 대회 출전을 재개하고, US여자오픈(6월 초 개최)에도 참가 신청을 올렸다가 다시 증세가 올라오면서 철회해야 했다.

이젠 다시 무통기다. 박민지는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개막 하루 전 인터뷰에서 “US여자오픈 신청 후에 컨디션이 안 좋아져 철회했는데 그 뒤로 멀쩡해졌다. 타이밍이 안 맞아 아쉽지만, 대신 이번 대회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곤 결국 4년 연속 우승 역사를 이뤘다. 박민지의 기부금은 병원, 어린이, 독거노인 등과 관련된 곳에 쓰이도록 할 예정이다. “제가 아파보니 아픈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분들이 많은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몸이 아프다 보니 동병상련을 겪는 이웃을 향해 눈을 돌리게 됐고, 선뜻 큰돈을 기부하는 따뜻한 마음을 실천했다.

그가 내년 셀트리온 대회에서 5년 연속 우승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한 정신력과 승부욕을 바탕으로 새 기록을 썼듯이 내년에도 설해원 골프장의 주인공이 박민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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