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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빵 필요하다"…美와 밀착한 필리핀, 중국에 돌아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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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최근 지정학적 요충지 필리핀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필리핀이 다시 친(親)중 국가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저조한 외국인 투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경제난의 원인을 현 정부의 '반중 친미 노선'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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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남중국해 해상에서 중국 해안경비대가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는 모습. AFP=연합뉴스





두테르테 떠난 필리핀, 美와 밀착



지난달 미군과 필리핀군은 연합 군사훈련인 '발리카탄'을 실시했다. 1만 6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훈련이었다. 또한 사상 처음으로 필리핀 영해 밖인 남중국해에서 진행해 중국을 겨냥한 훈련임을 분명히 했다.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것"(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란 중국의 협박에도 양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내년부터 일본도 함께 남중국해 공동 순찰에 나서기로 하는 등 미국과 필리핀은 한층 밀착하고 있다. 지난해 필리핀은 중국 코앞의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추가 사용권을 미국에 주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은 동남아·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꼭 필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다. 그러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시절엔 강력한 친중 정책으로 미국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22년 6월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친미 행보를 보이며 상황이 급반전했다. 지난 4월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이 "미국과 필리핀은 동맹 이상이며, 가족과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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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군과 필리핀군의 연례 연합 군사훈련이 사상 처음으로 남중국해 해상에서 진행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중국해와 관련한 중국의 압박이 심해지며 필리핀도 미국에 한층 기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오는 15일부터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 침입하는 외국인을 최장 60일간 구금한다는 규정을 시행할 예정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은 마르코스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 남중국해 해상에서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는 등 물리적 폭력을 가해왔다. 필리핀은 미국에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다.



中, 친미 정부에 투자 중단…민심 흔들려



이처럼 양국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음에도 미국에선 필리핀이 언제든 친중 노선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심각해지는 경제난을 '중국과 멀어지고 미국과 가까워졌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국민 정서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필리핀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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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필리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은 5.6%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각종 인프라 프로젝트의 진척도 너무 느리다. 지난해 7월 기준 마르코스 정부는 197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건 71개에 불과하다. 투자 부족 등으로 실제 완성하는 프로젝트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필리핀은 외국인 투자 유치에서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10년 이상 뒤처졌다"며 "인프라, 제조 역량 강화, 광물 개발 등을 위해 투자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이런 상황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마르코스 집권 이후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 시기 약속한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을 미뤘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고속철도 등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활발히 진행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두테르테를 중심으로 한 친중 진영은 현 정부가 민생을 멀리하고 중국과의 분쟁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고 있다고 비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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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남중국해 해상에서 중국 해안경비대가 필리핀 해안경비대를 막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군사 지원만 하다 필리핀 또 잃을라…"총보다 빵 먼저"



필리핀 정계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노골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알프레도 파스쿠알 필리핀 통상산업부 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국방에도 자원을 투입할 수 없다"며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또 다른 고위 당국자 또한 "우리는 전쟁터의 최전선에 있다"며 "경제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미국 정부의 고민은 깊다. 지난 2015년부터 이 나라에 11억 4000만 달러(약 1조5680억원)가량의 군사 장비를 지원하는 등 상당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일반 시민은 '직접적 혜택'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게 딜레마다. 외려 연합 군사훈련으로 조업하지 못한 어부들이 손해를 봤다며 불만을 제기했을 정도로 분위기는 좋지 않다. 중국은 그간 치코강 펌프 관개 프로젝트, 마약 재활 시설 건립 등 '눈에 보이는 사업'을 진행했기에 미국으로선 더욱 신경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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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왼쪽)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워싱턴DC에서 만났다. AFP=연합뉴스


FP는 "만약 2028년으로 예정된 다음 대선에서 또다시 친중 정부가 집권할 경우 미국은 동남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파트너를 잃게 된다"며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현재 미국은 일본과 함께 '루손 경제회랑 개발 프로젝트' 등을 진행 중이지만, 이곳의 부족한 인프라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필리핀 정부가 강력히 요구 중인 자유무역협정(FTA) 진행도 뜨뜻미지근하다. FP는 "필리핀에는 현재 '총보다 버터'가 필요하다"며 "미국은 군사 지원에서 민생 문제 완화로 지원 방향을 전환해야 친중 세력의 복귀를 막을 수 있다"고 짚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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