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연구동에서 만난 양준영 선행기술연구소장(상무). 박해리 기자 |
“우리는 디스플레이를 잘하지만 반도체가 없고, SK하이닉스는 반도체를 잘하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없기에 둘이 합쳐서 시너지를 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렇게 ‘반딧불이 프로젝트’가 탄생했죠.”
지난 17일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만난 양준영 LG디스플레이 선행기술연구소장(상무)은 최근 개발에 성공한 초고해상도 올레도스(OLEDoS, OLED on Silicon) 신기술의 시작점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기술을 공개한 논문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디스플레이 학회 SID2024에서 ‘올해의 우수논문’으로 선정됐고, 양 소장은 공로상을 수상했다.
LG디스플레이는 2021년 SK하이닉스와 연구개발(R&D) 단계부터 협업해 가상현실(VR)용 올레도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올레드(OLED)는 유리 기판으로 만들지만, 올레도스는 이름처럼 반도체 실리콘 위에 올레드를 증착시켜 화소 크기를 한 자릿수 마이크로(㎛·100만분의 1m) 단위까지 줄이는 방식으로 초고해상도를 구현한다. 이 때문에 올레도스 개발에선 실리콘 기판을 잘 다루는 반도체 업체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LG디스플레이의 이번 올레도스 신기술은 해상도와 화면 밝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VR용 올레도스를 구현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500원 동전만한 1.3인치 크기에 4K급인 4175ppi(인치당 픽셀수)의 초고해상도를 구현했다. 1만니트(nit, 1니트는 촛불 1개 밝기)의 초고휘도(밝기)를 구현했으며 디지털영화협회(DCI) 표준 색 영역인 DCI-P3를 97% 이상 충족해 정확한 색 표현이 가능하다.
양 소장은 “1만 니트 휘도를 달성한 것은 세계 최초이며 DCI 규격을 맞춘 것도 우리가 유일하다”라며 “현재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이 요구하는 사양을 맞출 수 있는 건 우리 샘플 뿐”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2월 출시한 애플의 비전프로에 탑재된 소니의 1.3인치 4K급 올레도스의 휘도를 5000니트 정도로 추정하며 발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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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우군 만나 개발단계부터 협업
LG디스플레이 연구진이 VR용 올레도스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
양 소장은 SK하이닉스와 ‘반딧불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제안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올레도스 기술의 특성상 반도체 기술을 가진 협업 상대를 찾아야 했는데, 대만 등 다양한 해외 기업들로부터 연락이 왔었다”면서 “올레도스 기술이 한국 밖으로 나가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에 국내 기업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명은 송창록 SK하이닉스 이미지센서(CIS) 개발 담당(부사장)이 제안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함께 만나 한국 기술의 불을 밝히는 반딧불이가 되자’는 데 양사가 의기투합했다. CIS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의 색상과 강도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반도체로, 올레도스와 공정이 유사하다. 덕분에 CIS공정 라인을 올레도스 개발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양 소장은 “일종의 파운드리(위탁제조)식으로, SK하이닉스가 가공해준 웨이퍼를 LG디스플레이의 마곡 연구소로 가져와 올레도스를 디자인했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SK하이닉스가 단순 위탁제조사에 그치지 않고, 수율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며 “양사의 이익이 모두 커질 수 있도록 협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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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뿐 아니라 워치까지...양산은 숙제
지난 12일(현지시간)부터 3일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SID에 전시된 LG디스플레이의 올레도스를 넣은 스마트 워치 시제품. 사진 상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구름이 홀로그램 처럼 시계 위 허공에 떠 보인다. 사진 LG디스플레이 |
최종 샘플은 SID 학회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달 말 완성됐다. 애플 비전프로와 같은 VR 기기와 증강현실(AR)기기가 주 타깃 시장이다. 고객사들에 보여줄 헤드셋 시제품도 2500만원 들여 개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홀로그램 워치 시제품도 제작했다. 스마트워치에서 날씨예보 메뉴를 선택하면 손목 위에 구름이 둥둥 뜨는 모습이 재현되는 것. 양 소장은 “올레도스의 화소가 높기 때문에 무안경 3차원 디스플레이인 ‘라이트 필드 디스플레이’(LFD) 기능까지 넣어 홀로그램 영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라며 “앞으로 올레도스 사용처가 헤드셋뿐 아니라 워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려한 기술이지만 양산에 돌입하려면 풀어야할 숙제가 아직 많다. 회사가 과감히 선제 투자를 결정하거나 주요 고객사와 규모 있는 계약을 따내는 등 모멘텀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니와 중국 몇 업체 외에는 양산을 시작한 기업을 찾기 힘들 만큼 시장은 초기 단계다. 양 소장은 “이번 학회에서 많은 고객들을 만나 양산 수요를 확인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양산을 시작해 수율을 50%선으로 올리면 현재 700달러인 소니 올레도스의 절반 수준으로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시장성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부터 3일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SID에 전시된 LG디스플레이의 올레도스. 사진 LG디스플레이 |
양 소장은 중국 디스플레이 발전이 위협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30년간 LG디스플레이 선행연구소에서만 몸담으며 미래 기술 한 우물만 파오던 그는 최근 전례 없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면서 이토록 치욕을 느낄 만큼 중국에 쫓기던 적이 없었다. 올레도스가 차기 먹거리인 만큼 이 기술 만큼은 한국이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올래도스 시장은 올해 5억6000만달러(약7600억원)에서 2028년 13억6000만달러(약 1조8500억원)로 4년 새 14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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