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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노인 많아 더 내고 더 받자? 연금개혁안이 놓친 '통계함정' 있다

중앙일보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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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회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뉴스1

시민단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회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모(70)씨는 통계상 ‘빈곤층’ 노인이다. 그는 은퇴한 뒤 연금을 포함해 월 100만원가량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통계에선 가구 중위 소득(중간값)의 50%(약 144만원, 2022년 기준) 이하 가구를 빈곤층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김씨가 사는 집은 12억원이 넘는다. 대출도 없다. 소득은 적지만, 자산을 보면 빈곤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선택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큰 틀에서 ‘더 내고, 더 받는’ 안이다. 연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 때 흔히 소득을 기초로 한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통계를 근거로 든다. 하지만 지난 20일 국회 토론회에서도 “미래 노인은 지금보다 여유 있는 부분이 많다. 국민연금도 많이 받고, 더 많은 자산도 갖고 있다(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장이 나왔다. 연금 개혁 논의에 앞서 노인 빈곤 관련 통계를 더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이 40.4%다. 회원국 노인 빈곤율 평균(14.2%)의 3배 수준으로 압도적 1위다. 에스토니아(34.6%)·라트비아(32.2%)가 뒤를 이었다. 미국(22.8%)·일본(20.2%)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OECD는 “한국의 연금 제도는 미성숙하며 고령 노인이 받는 연금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60대 이상 고령층의 평균 순자산, 2030의 2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60대 이상 고령층의 평균 순자산, 2030의 2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하지만 젊은 시절 번 돈을 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한국의 특성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2.4% 수준이다(2022년 기준). 미국(38.7%)과 차이가 크고, 유럽(60~70%)보다 높다. 지난해 3월 기준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가구의 순 자산(자산-부채)은 4억8630만원으로 나타났다. 40대(4억3590만원)보다 많고 50대(4억9737만원)와 비슷하다. 30대 이하(2억3678만원)의 2배 수준이다.

통계청장을 지낸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노인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있어 노인 빈곤율 통계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며 “자산까지 종합적으로 반영한 빈곤율 통계를 마련해야 연금 개혁안도 정교해진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자산을 소득으로 환산할 경우 기존보다 7~8%포인트, 자산을 맡겨 연금으로 받는다고 가정하면 기존보다 14~16%포인트까지 빈곤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펴낸 보고서에서 노인 빈곤 문제와 관련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쓸 돈이 없는 고령층에 주택연금 가입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젊은 노인’일수록 덜 가난한 측면도 있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2014년 47.1%에서 2021년 37.7%로 주는 동안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65~69세) 빈곤율은 같은 기간 33.1%에서 21.7%로 줄었다. 빈곤율이 노인 평균 대비 16%포인트가량 낮다. 50년대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경제 고속 성장과 함께 자산을 불렸고, 1988년 도입한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한 측면이 반영됐다.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주요국 중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22년 기준 60세 이상 중 소득 상위 20% 가구가 평균 연 1억6017원을 버는데 하위 20%는 1369만원에 그쳤다. 정부에서 받는 연금이나 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 결과다. 전 연령대 중 5분위 소득은 가장 높고, 1분위 소득은 가장 적었다.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급하는 기초연금 수급 대상을 점차 줄이는 대신, 저소득층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승희 KDI 연구위원은 “50년대 이전 출생 세대에 기초연금을 더 많이 지원하고, 상대적으로 덜 빈곤한 50년대 이후 세대에는 기초연금을 축소하는 게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며 “기초연금 재원을 다른 노인 복지제도에 투입해 고령층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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