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풍자만화가 프라이가 1899년에 그린 고종 캐리커처. 화정박물관 제공 |
선거를 앞둔 봄, 어느 때보다 사람의 얼굴을 많이 들여다보게 되는 시절이다. 뉴스나 에스엔에스(SNS)는 물론 매일 오가는 길목에서 숱한 얼굴들이 인자한 눈빛과 호쾌한 웃음을 띠고 자신의 이름과 기호를 기억해달라는 호소를 전해 온다.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 사이에서 때로는 몇년 사이 눈빛과 인상이 완전히 변한 얼굴을 보고 놀라는 일도 있다. 그럴 때면 얼굴이 그 사람의 내면을 나타낸다는 말을 곰곰 생각하게 된다. 과연 사람의 얼굴은 정말 그 속의 면면까지 다 비출 수 있는 것인지, 또 우리의 눈이란 보이는 모든 걸 다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정교한 것인지.
고종의 비굴한 미소와 고사리손
옛 그림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의 특별전 ‘고인물전’(古人物展, 6월30일까지)은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중국·일본의 인물화와 관련 공예품 90여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각기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훗날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을까. 이 질문을 품는 순간, 관람객도 그림을 그린 이와 그려진 이 사이의 팽팽한 긴장에 합류하게 된다.
전시 1부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초상화를 소개한다.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조선 시대 이조판서 등을 지낸 이정영(1616~1686)의 전신 초상이다. 함께 전시된 근대 작품들에는 사진술과 서양화법이 스며들어 있다. 어진화사(왕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진 채용신(1850~1941)은 20세기에 직업 화가로 활동하며, 주문자들에게 받은 사진을 보고 초상을 제작했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인 ‘숙부인 황씨 초상’은 기계가 기록한 사진 속 정보를 전통 초상화 양식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채용신의 솜씨를 잘 보여준다. 아담한 네 폭 병풍을 배경으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황씨는 또렷한 눈매에 야무지게 힘주어 입을 다문 얼굴로 그려졌다. 장수를 기원하는 무늬를 넣은 한복 저고리, 장도노리개와 가락지 등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여성임을 보여주는 치장보다 그의 얇은 피부 위로 비쳐 보이는 꼿꼿하고 슬기로운 인상에 더욱 눈이 가는 그림이다.
반면 함께 소개된 중국 청대의 초상화들 가운데는 옷과 배경은 컬러로 그리고, 얼굴은 사진 그대로 흑백으로 그린 부부 초상이 있다. 이렇게 머리 부분만 빼고 배경과 몸을 다 그려놓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얼굴만 그려 넣어 완성하는 ‘매태공’(賣太公)이라는 형식은 요즘 유행하는 ‘에이아이(AI) 프로필’과 닮았다. 어색하기도 하고 실제 나와는 차이가 있지만, 남들에게 즐겁게 보여줄 수 있는 정교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저렴하고 간편하게 얻고자 하는 수요는 옛날에도 다름없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채용신(1850~1941)이 그린 ‘숙부인 황씨 초상’. 신지은 제공 |
서양의 풍자만화가 프라이가 그린 판화 한 점은 초상화 속 인물의 이미지를 결정할 칼자루를 쥔 손이 바뀐 사례를 보여준다. 영국 잡지 ‘배니티 페어’의 1899년 10월19일치에 실린 고종 황제의 캐리커처에서는 어진이나 초상 사진에서 보이던 후덕함이나 근엄함은 찾아볼 수 없다.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짓는 비굴한 미소, 치렁치렁 늘어진 곤룡포 소매 밑으로 튀어나온 옹색한 고사리손에서는 다소의 악의까지 읽힌다. 눈과 입, 손 등 비언어적 소통 수단인 신체 부위를 유난히 축소한 표현은 아마도 당시 대한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무능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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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의 ‘서원아집도’. 신지은 제공 |
얼굴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2부 이후의 전시는 옛이야기를 다룬 고사인물화나 도가의 신선·풍속 등 다양한 주제의 인물화가 이어진다. 그림에 담긴 문화적인 맥락은 그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모습도 보여주는데, 그 한 예가 19세기에 그려진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다. 북송 시대에 황제의 부마가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 16명을 초대해 가든파티를 벌였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그림이다. 그날 잔치에 참석했던 이공린이라는 화가가 정경을 그렸다고 하는데 작품은 사라졌지만, 서예가 미불이 그 그림에 남겼다는 글이 전해져 이를 바탕으로 재현한 그림이 중국과 한국에서 많이 그려졌다.
초대된 예술가들은 넓은 저택의 정원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풍류를 즐기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명사들이 모여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다. 지위나 솜씨의 순위를 겨루지 않아도 한 화면 안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의 코드로 뭉쳐지는 파티 그 자체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임의 색을 더함으로써, 이날의 자리는 1천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두고두고 후세인들이 기념할 만한 가치가 생겨났을 것이다. 이 자유롭고 느슨함은 오늘날에도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정의로운 내 편, 아니면 불의한 남의 편으로 나누는 아집(我執)으로 이합집산만을 반복하는 피곤한 세상에서 잠시 눈을 돌려 바라본 이 ‘아집’(雅集, 우아한 모임)의 여유와 풍류가 돋보인다.
전시에 나온 수많은 작품 속에서 각양각색의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나면 새로운 생각이 싹튼다. ‘얼굴을 보면 사람이 보이는가’보다 ‘눈은 마음을 이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박물관을 나서는 마음에 따라붙었다.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그 외형에 끌어와 묘사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는 조선 시대 초상화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그림 안에 한 인물을 표현하는 일은 눈과 손의 공이 드는 정교한 연출의 연속이다. 그러나 끝은 다시 본인에게로 돌아와 완성되는 것이니, 초상화란 화가의 눈과 손을 빌린 객관화의 과정일지 모른다. 그러니 얼굴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자 하는가’ 하는 우리의 눈길이 아닐까. 옛 인물화들은 현재의 우리가 서로의 초상을, 또 원하는 세계의 모습을 어떤 모양으로 그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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