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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무 사퇴 배경된 ‘정보사 회칼 테러’는 무슨 사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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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정보사 현역 군인들 언론인 습격
군 비판 칼럼에 준장 “한 번 혼내라” 지시
집단 폭행에 허벅지 자상…사회 ‘충격’
조직적 테러에도 처벌은 솜방망이 그쳐
오홍근 “언론 바로 서야 ‘군사문화’ 청산”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발언으로 소환된 ‘정보사 회칼 테러’는 1988년 군 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현역 군인들이 상관의 명령을 받아 당시 중앙경제(중앙일보 자매지) 사회부장이었던 오홍근 기자를 칼로 습격한 사건이다. 오 기자가 군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에서다.


테러가 벌어진 건 노태우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은 1988년 8월6일. 당시 중앙일보 보도 등에 따르면 오전 7시30분쯤 출근 중이던 오 기자는 서울 청담동 삼익아파트 인근에서 괴청년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오 기자는 회칼로 보이는 흉기로 허벅지에 길이 30㎝ 이상의 자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쳤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이후 이 사건에 정보사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아파트 경비원이 수상한 승용차의 차량 번호를 메모해놓은 덕에 해당 차량이 정보사 소속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국방부 수사 결과 오 기자의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에 불만을 품은 정보사 예하 부대 부대장인 이규홍 준장이 박모 소령과 안모 대위 등 부대원 5명에게 테러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수사 결과를 보도한 기사들에 따르면 박 소령은 이 준장으로부터 ‘오 기자를 한 번 혼내주라’는 지시를 받고는 자신의 부하인 대위 1명과 하사 3명을 행동대원으로 선발했다. 박 소령은 부하들에게 오 기자의 칼럼 내용을 보여주는 등 범행 계획을 설명한 뒤 25㎝ 길이 흉기를 하사 3명에게 나눠주며 “죽이지는 말고 혼만 내주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오 기자의 아파트 주변을 사전 답사하고, 범행을 벌였다. 아울러 정보사 참모장 권기대 준장은 범행에 사용된 차량의 운행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관계 서류를 정리하라고 지시하는 등 사건을 은폐했고, 정보사령관 이진백 소장은 이러한 범행 사실을 보고받고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묵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연합뉴스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연합뉴스


이같은 조사 결과에도 군 검찰은 같은 해 9월 이 준장과 박 소령, 안 대위만 구속기소하고 나머지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직접 범행에 가담한 하사 3명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 단순히 행동했다는 점을 불기소 사유로 들었다. 이 소장과 권 준장은 각각 지휘책임 및 범행 은폐에 관련한 책임을 물어 예편 조치하는 데 그쳤다.

재판을 맡은 육군보통군사법원은 같은 해 10월10일 이 준장과 박 소령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안 대위에게는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사건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군을 아끼고자 한 충성에서 비롯됐고, 오 기자의 피해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양형 과소를 이유로, 이 준장과 박 소령은 양형 과중을 이유로 모두 항소했다. 고등군사법원은 같은 해 12월28일 원심을 깨고 아예 이 준장과 박 소령에게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지난 14일 MBC는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MBC를 포함한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고 말한 뒤 ‘정보사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테러사건 피해자인 오홍근 기자가 1988년 8월6일 군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군인들로부터 습격을 당한 뒤 병원에 입원한 모습. MBC 뉴스데스크 캡처

지난 14일 MBC는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MBC를 포함한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고 말한 뒤 ‘정보사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테러사건 피해자인 오홍근 기자가 1988년 8월6일 군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군인들로부터 습격을 당한 뒤 병원에 입원한 모습. MBC 뉴스데스크 캡처


오 기자는 테러사건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18년 8월6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30년 전 오늘의 회칼테러를 기억하며’ 글에서 “30년 전 칼을 맞고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언론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며 “그 테러사건과 관련해 유형무형으로 짓쳐오는 여러 ‘압력’들과 맞닥뜨리면서 나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현실을 절감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언론은 자본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바로 설 수 있다. 또 있다. ‘내가 조작하면 조작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숙달된 여론 조작꾼들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며 “그렇게 언론이 바로 서야 군사문화는 ‘청산’의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기자는 2022년 3월9일 향년 8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테러사건 이후 중앙일보 논설위원, 상무를 지낸 뒤 1999년 초대 국정홍보처장,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날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황 수석은 언론인 출신으로, 공영방송 KBS의 9시 뉴스 앵커를 맡기도 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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