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 열린 ‘제36회 차범근 축구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차범근축구상은 1988년 시작돼 매년 훌륭한 활약을 펼친 한국 축구선수 꿈나무를 발굴해 시상하는 유소년 축구상이다. 2024.2.2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서울=뉴스1) 김도용 기자 = 차범근(71)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최근 내홍을 겪고 있는 한국 축구계 상황에 안타까움을 전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차범근 전 감독은 2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의 HW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제36회 차범근축구상'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섰다.
18명의 축구 꿈나무에게 상을 건넨 차 전 감독은 "오늘은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루다. 그런데 오늘 축구 선수들을 키우는 학부모들과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서 최근 아시안컵 대회 도중 발생한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충돌에 대해 입을 열었다.
차 전 감독은 "최근 많은 선수가 유럽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을 잘 풀어야 한다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적극적으로 교육할 생각을 안 하고, 뒤로 물러나 쉬어도 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유럽에서는 선배와 후배, 어른의 개념 없이 모두가 동료라는 생각이 있다. 코칭스태프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린 선수들은 자신이 경험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닮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제 한국 축구는 동서양 문화 차이와 함께 세대 간 간극까지 더해진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며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범근 전 감독은 일찌감치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현역 은퇴 후에도 유럽의 축구인들과 계속해서 교류하는 등 서양 문화에 아주 익숙하다. 그럼에도 차 전 감독은 동양 문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 열린 ‘제36회 차범근 축구상' 시상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차범근축구상은 1988년 시작돼 매년 훌륭한 활약을 펼친 한국 축구선수 꿈나무를 발굴해 시상하는 유소년 축구상이다. 2024.2.2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차 전 감독은 "어린 세대들은 동양에서 강조하는 겸손과 희생이 촌스럽고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간관계가 한국인들이 (고유의 문화에서) 물려받은 무기이자 자산이다. 유럽에서 성공한 나와 박지성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피력했다.
이와 함께 차 전 감독은 과거 일화를 하나 공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차두리 전 A대표팀 코치가 독일 빌레펠트에 프로에 데뷔한 날 경기장을 방문한 오토 레하겔 감독은 차 전 코치에게 "어떤 경우에도 문을 꽝 닫고 나가면 안 된다"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안 된다는 조언을 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레하겔 감독은 독일에서도 역량 있는 지도자로 2004년 그리스를 이끌고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축구선수권(유로) 정상에 오른 감독이다. 이런 지도자도 (차)두리에게 축구를 잘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인성적인 부분에 대해 조언을 건넸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더불어 차범근 전 감독은 어린 선수들 옆의 부모와 지도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어린 아이들이 (겸손과 희생이라는) 소중한 무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이 실수로 버린다면 옆에 있는 어른들이 주워서 다시 아이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안컵 이후 이강인이 세상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강인의 부모님과 내가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할 일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손흥민이 주장이어서 다행"이라며 지도자와 선배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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