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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불륜 스캔들’ 르윈스키 “20대의 치욕 지나 50세 되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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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헤픈 여자’ ‘창녀’ ‘권력에 몸 판 여자’ 등 온갖 모욕 들었지만
“50세는 인생 최대의 선물…나 자신과 삶, 내 위치를 받아들이게 됐다”
“과거에 묻혀 오욕의 삶을 살지 않고, 사회적 괴롭힘 당하는 이들을 돕겠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세 번째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서도, 백악관 무급(無給)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름을 까먹었다. 그는 그냥 “키도(kiddoㆍ‘얘야’ 정도의 호칭)”라고 불렀다. 관계를 가진 뒤 2년 여가 지난 1998년 1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이후 세상은 아무도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름엔 ‘창녀(whore)’ ‘갈보(bimbo)’ ‘헤픈 여자(tart)’ 등 온갖 치욕스러운 표현들이 따라붙었다.

그 르윈스키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올해 미국 대선을 비롯한 연방ㆍ주 차원의 총선에서 꼭 투표하라는 캠페인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일보

미 패션 브랜드 레포메이션, 민간 단체 보트(Vote)와 함께 11월 대선 유권자 투표 독려 캠페인에 나선 모니카 르윈스키/레포메이션


1995년 클린턴이 22세의 백악관 무급 인턴 르윈스키와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50세였다. 르윈스키는 작년 7월 그 나이가 됐다. 르윈스키는 “내게 50세는 축복”이라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클린턴ㆍ르윈스키 섹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애초 미국 여성들은 클린턴보다도 르윈스키를 더 심하게 욕했다. 그런 르윈스키의 이미지가 점차 바뀌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2017년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진 미국의 미투(#MeToo) 운동이었다.

권력을 쥔 탐욕스러운 남성들의 성추행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은 르윈스키를 ‘수호자’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패션 잡지 엘르(Elle)와 피플, 영국의 더 타임스 등 영미권 언론매체들은 르윈스키의 유권자 투표 독려 캠페인을 계기로, 그를 재조명하는 인터뷰를 했다.

◇의류회사ㆍ민간단체와 유권자 투표 독려 캠페인 시작

르윈스키는 11월 미 대선과 연방ㆍ주 차원의 총선을 앞두고 미국 패션 브랜드인 레포메이션(Reformation)이 민간단체 보트(vote.org)와 함께 벌이는 ‘당신에겐 힘이 있어요(You’ve got the power)’ 유권자 등록 및 투표 독려 캠페인의 ‘얼굴’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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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패션 브랜드 레포메이션의 의상들을 입고 나와 '당신에겐 힘이 있어요'라는 유권자 투표 독려 캠페인에 나선 르윈스키/레포메이션


르윈스키는 레포메이션의 여러 의상을 입고 나와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르윈스키는 26일 발간된 패션 매거진 엘르(Elle)와의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의 실망과 정치 무관심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투표 독려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투표는 우리의 목소리이며, 목소리를 낼 때 우리에게 힘이 있다”며 “앞으로 4년간 (정치에 대해) 불평하고 싶다면, 투표하라”고 말했다.

◇자기 이름이 ‘성행위’를 뜻하는 동사(動詞)가 됐던 과거

1995년 갓 대학을 졸업한 르윈스키는 백악관 비서실장 방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대통령 클린턴을 만났다. 이후 2년 간 둘은 성적인 관계에 빠졌고, 선물을 교환했고, 밤늦게 야한 대화를 전화로 나눴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르윈스키의 정확한 나이는 21세, 클린턴은 48세였다. 1998년 공개된 둘의 섹스 스캔들은 미국과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의 성적 관계는 열 차례였다. 둘이 나눈 성적인 대화는 공개됐다. 1998년 7월, 르윈스키는 연방대배심에 클린턴의 정액이 묻은 푸른 빛 드레스를 제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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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미 대통령 집무실에서 백악관 근무 인턴들과 기념 사진을 찍을 당시의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백악관


르윈스키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세상은 그를 몸을 팔아 권력가의 환심을 사려 한 젊은 여성쯤으로 봤고, 가장 치욕스러운 단어로 그를 묘사했다. 미 언론에서 그는 ‘그 여자(that woman)’ ‘그 인턴’으로 불렸고, 대중의 관심과 파파라치들의 카메라는 늘 르윈스키를 따라다녔다.

르윈스키는 2015년 3월 TED 강연에서 “22세에 나는 보스와 사랑에 빠졌고, 24세에 인생에서 참담한 교훈을 얻었다”며 “나는 성적으로 난잡한 여자, 야한 여성, 걸레, 창녀로 묘사됐다”고 말했다.

팝가수 비욘세는 2013년 노래 ‘파티션(Partition)’ 가사에서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한 특정 성행위를 빗대어 ‘모니카 르윈스키했다(He Monica Lewinsky-ed all on my gown)’는 동사(動詞)를 썼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그를 “너무 뚱뚱해서 고교 시절 무리에 잘 낄 수 없는 여자애”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약탈자”라고 했다.

그는 2014년 6월 잡지 베너티 페어(Vanity Fair)에 기고한 ‘ 수치와 생존(Shame and Survival)’이란 제목의 글에서 “나는 그때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고, 너무 어려서 현실의 결과를 이해하지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내가 희생되리라는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라고 썼다. 르윈스키는 “모두들 나를 잘 아는 양 난도질했지만, 사람들은 ‘그 여자’도 살아 숨 쉬는 사람이고 영혼이 있다는 걸 쉽게 잊었다”고 썼다.

르윈스키는 수차례 극도의 자살 충동을 느꼈다. 어머니는 딸이 자살할까 봐, 르윈스키가 샤워 중에도 욕실 문을 열어 놓게 했고, 밤에도 수시로 딸의 방문을 열어 확인했다고 한다.

◇잊히려고 안간힘 썼던 이후 10년

르윈스키의 재기(再起)는 결코 쉽지 않았다. 르윈스키는 백(bag)을 디자인해 ‘리얼 모니카’라는 브랜드로 팔고 몇차례 방송에도 나왔지만, 언론과 대중은 오명(汚名)을 이용해 돈벌이 한다고 비난했다.

르윈스키는 베너티 페어에 “당시 150만 달러에 달하는 각종 소송 비용을 대느라 허덕이며, 친구와 부모에게서 돈을 빌렸다”며 “그러나 한 번에 1000만 달러 이상을 벌게 해준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옳은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려고 애썼다. 2005년 영국 런던으로 갔고,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사회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조용히’ 강의실과 도서관만 오갔다. 졸업 후 ‘보통 생활’로 복귀하기를 원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직장은 없었다. 늘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2008년은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맞붙은 해이기도 했다. 르윈스키는 클린턴 부부의 캠페인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게 된 계기

르윈스키는 2014년 다시 미국 대중 앞에서 섰다. 이번엔 스스로 선택했다. 계기는 뉴저지 주 럿거스대의 한 동성애자 남학생이 다른 남성과 키스하는 것이 몰래 촬영돼 공개된 뒤, 수치심에 자살한 사건이었다.

르윈스키는 “나는 ‘온라인 괴롭힘’이란 질병의 전세계 ‘최초 감염자(patient zero)’였다”며 “내가 겪었고 이겨낸 고통을 공유해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을 타인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온라인 괴롭힘과 사회의 모욕을 받는 이들에 대한 드라마ㆍ탐사 도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르윈스키는 작년 10월, 사회의 왕따ㆍ괴롭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나는 소셜미디어에서 나를 공격하는 이는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그런 글을 읽지도 않는다”며 “(공격하는) 당신은 말할 권리가 있지만, 나는 당신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르윈스키는 “사회적 괴롭힘을 당한 한 개인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부정적 표현이나 상처를 스스로에게 되풀이하는 자학(self-bullying)적인 행동에 빠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그 개인에게 최악의 악한(惡漢)이 바로 자신이 된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으로 변신

더 타임스는 50세가 된 르윈스키엔 전세계의 모욕을 받은 ‘최초 감염자’ 르윈스키와, 이 모든 것을 견뎌낸 강인한 르윈스키가 모두 존재한다고 평했다.

2017년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불어닥친 미투 운동은 역설적으로 르윈스키에겐 ‘구세주’가 됐다. 수백만 명의 여성이 르윈스키를 기억했고, 한 여성 운동가는 르윈스키에게 “그동안 그렇게 혼자 외로웠을텐데, 정말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타임스는 “22세 나이에 전세계에서 ‘헤픈 여자(slut)’ 수치를 당했던 르윈스키는 이제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는 ‘저항의 지도자’로 변모했고, 권력을 쥔 탐욕스러운 남성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파괴되는 여성들의 ‘수호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했다.

그 시작은 2015년 3월 TED에서 한 ‘수치의 대가(The Price of Shame)‘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여러분은 저에 대해 떠오르는 특별한 이미지가 있나요? 아, 그 베레모 쓴 거요?” “저도 이제 실수를 인정합니다. 특히 그 베레모 쓴 거 말이에요.” 사람들은 르윈스키의 재치 있는 이 말에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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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2일자 타임 매거진 표지를 장식한 베레모를 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사진/Time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했다. 르윈스키는 “역사상 가장 큰 수치를 겪었던 여성으로서, 글로벌 차원에서 평판을 완전히 잃은 최초 감염자로서, 이제 나는 살아남아서 소셜미디어에서 대중의 수치를 겪는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내 과거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며 오욕(汚辱)의 삶을 살 때가 아니라, 이제 내 이야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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