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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신화 탄생···신진서, 농심배 최초 끝내기 6연승 ‘한국 4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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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진서 9단(오른쪽)이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라운드 본선 최종 14국에서 중국의 구쯔하오 9단과 대국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세계 최강의 바둑 기사 신진서 9단(23)은 딩하오 9단을 완파한 22일, 대국 후 늘 그랬듯 상대를 집중분석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1승만 더하면 적지에서, 그것도 전무후무한 끝내기 6연승으로 농심신라면배 역사상 가장 짜릿한 대역전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 그런데 하필 상대가 지난해 란커배 결승에서 자신에게 아픈 추억을 선사한 구쯔하오 9단(중국)이라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장판교를 홀로 지키는 장비처럼,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83만 대군을 무아지경으로 헤집고 다닌 상산 조자룡처럼 일기당천의 위용을 뽐내는 신진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진서가 중국 랭킹 1위 구쯔하오마저 격파하고 한국 바둑의 새로운 신화를 썼다.

신진서는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라운드 본선 최종 14국에서 구쯔하오를 249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꺾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7연승의 셰얼하오 9단(중국)를 누르고 한국에 첫 승을 안겼던 신진서는 상하이로 무대를 옮겨 진행된 3라운드 총 5번의 대국을 모조리 잡아내며 끝내기 6연승으로 한국에 짜릿한 대역전 우승을 안겼다. 전날 딩하오 9단을 누르고 이창호 9단을 넘어 농심배 최다 연승 신기록을 수립했던 신진서는 이날 승리로 그 기록을 16연승까지 늘렸다. 또 한국은 신진서의 맹활약에 힘입어 22회 대회부터 농심신라면배 4연패를 달성했다.

신진서는 농심배에서 한국 바둑의 최후 보루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던 22회 대회에서 4번째 주자로 나서 끝내기 5연승으로 상하이 대첩에 버금가는 ‘온라인 대첩’을 만들어냈던 신진서는 23회 대회에서는 마지막 주자로 나서 또 4연승을 기록했다. 24회 대회에서는 최종국에서 승리하며 한국에 3년 연속 우승을 안겼다.

이번 대회에서는 설현준 8단과 변상일·원성진·박정환 9단이 단 1승도 건지지 못하고 탈락해 이전 대회들보다 훨씬 큰 부담을 안아야 했다. 특히 적지에서 중국 기사를 4명이나 만나야 해 우승 확률이 희박했다.

하지만 신진서는 지난 19일 이야마 유타 9단(일본)을 누른 뒤 시작된 중국 최고 기사들과의 4연전 첫 3번의 대국에서 자오천위 9단, 커제 9단, 딩하오 9단을 모조리 연파하며 중국 바둑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날 만난 구쯔하오는 신진서가 실력도 인품도 모두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기사다. 상대 전적에서는 9승6패로 신진서의 우위지만, 2022년까지 4승4패로 팽팽했다가 지난해 5승2패로 차이를 벌린 것이 컸다. 그런데 지난해 거둔 5승의 기쁨보다, 2패가 준 아픔이 컸다. 그 2패는 지난해 제1회 란커배 결승 3번기에서 당한 것으로, 신진서가 1국을 먼저 잡고도 내리 2~3국을 내주며 준우승에 그쳤다. 특히 유리했던 바둑을 터무니없이 역전당한 것이라 신진서가 한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늘 그랬듯 신진서는 이날 아침을 걸렀다. 그리고 대국 시작 시간에 맞춰 카레라이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신진서는 21일 커제전이 열린날도 점심에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신진서가 상하이에 와서 중국 기사들과 4연전을 치르며 먹은 점심은 돼지국밥 2번, 카레라이스 2번. 중국 기사들과의 승부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 신진서는 대국 전 배를 든든히 해 장기전에 대비하려고 했다.

대국은 신진서가 초반을 유리하게 끌고 가며 격차를 조금씩 벌리면서 기분 좋게 시작했다. 하지만 구쯔하오도 만만치 않았다. 100수 부근까지만 하더라도 신진서의 예상 승률이 90%를 상회했으나, 우변 싸움에서 신진서가 실수를 연발한 사이 구쯔하오가 정확하게 받아치면서 순식간에 구쯔하오가 형세를 뒤집었다.

지난해 란커배 결승의 뼈아픈 역전패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 그러나 신진서는 두 번 당하지는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린 신진서는 바꿔치기를 통해 다시 분위기를 돌렸고, 이후 구쯔하오가 우변을 잇는 떡수를 두면서 신진서가 다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신진서는 종반 끝내기 싸움에서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정교하게 수를 두어가며 대국을 마무리했다.

2005년 6회 대회에서 홀로 끝내기 5연승으로 한국의 우승을 확정했던 이창호의 업적은 상하이 대첩이라 불리며 한국 바둑사에 길이 남아있다. 하지만 신진서는 이번 대회에서 이창호를 넘어 농심신라면배 역사상 최초로 끝내기 6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을 안겼다. 상하이 대첩을 넘어, 상하이 신화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2024년 2월23일 오후 6시12분, 상하이에 ‘바둑의 신’이 강림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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