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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주요국들의 보조금 경쟁과 자국기업 선호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파운드리·D램·낸드 등 전 부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상태다. 연초 대비 주가 상승폭이 엔비디아 58.6%, TSMC 17.5%, 도쿄일렉트론 44.8%, AMD 23.4% 에 달하지만 삼성전자는 -7.1% 하락한 것은 이같은 위협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BAE시스템스와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에 이어 자국 반도체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스에 대한 15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IFS 행사에서 “모든 칩셋을 미국에서 만들 수는 없지만 AI를 이끄는 칩셋에 대한 주도권은 확보해야 한다”며 “‘제2의 반도체법(Chips Act 2)’와 같은 형태든 계속 투자가 있어야 한다. 해당 내용은 6~8주 이내 추가 발표로 알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요국의 보조금 경쟁과 자국기업 선호 분위기는 삼성전자에 있어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대부분이고 엔비디아 동맹에 합류한 SK하이닉스에 비해 삼성전자가 받는 위협은 더 전방위적이다.
우선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 상황이 한층 격화됐다. 인텔은 IFS 다이렉트 커넥트에서 2027년 1.4nm(나노미터·1nm은 10억분의 1m) 공정 도입과 함께 삼성전자를 추격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졌다. 미국 정부는 인텔에 100억달러(약 13조원)가 넘는 보조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선두기업 대만 TSMC도 보조금을 바탕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TSMC가 일본 규슈에 짓는 제2공장 건설에 7300억엔(약 6조5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일본 정부는 이미 TSMC의 구마모토 제1공장에 이미 4760억엔(약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도 12~28nm 반도체 공장 건설도 추진중이다.
삼성전자가 ‘절대 강자’로서의 지위를 지켜 온 D램 시장에서도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경쟁사 제품 대비 소비전력이 30% 적고 성능이 10% 뛰어난 HBM3E(5세대 HBM)를 납품할 것”이라고 선언했던 바 있다.
특히 마이크론의 기술적 수준은 D램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매우 근접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가장 큰 무기는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라며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것은 물론 미국 내 기업들의 자국기업 선호 분위기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낸드 시장에서도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오는 4월 반도체 부문 경영통합 협상을 재개한다고 보도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10월 합병논의를 진행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세계 낸드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4%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키옥시아(14.5%)와 WD(16.9%)가 합병에 성공한다면 31.4%의 점유율로 SK하이닉스를 제치는 것은 물론 1위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른다. 일본 정부는 키옥시아와 WD가 건설할 욧카이치 공장과 기타카미 공장에 2430억엔(약 2조1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보조금을 무기로 반도체 패권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세제혜택을 중심으로 제공되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현재와 같은 적자 상태에서는 기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는 “세제혜택 뿐 아니라 적자 상태에 빠져있는 반도체 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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