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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끝내기 6연승' 세계 바둑 새역사...한국 농심배 4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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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3일 열린 농심배 최종국에서의 신진서 9단. 입을 꽉 다문 얼굴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신진서는 이날 중국 구쯔하오 9단을 물리치고 끝내기 6연승을 달성, 한국에 농심배를 안겨줬다. 한국기원


또 하나의 신화가 빚어졌다. 신진서가 끝내기 6연승으로 세계 바둑의 새 역사를 썼다.

한국 최강자 신진서 9단이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에서 중국 구쯔하오 9단을 맞아 흑 249수 만에 불계승했다. 신진서가 중국의 최종 주자마저 꺾으면서 제25회 농심배는 한국이 품게 됐다. 한국의 16번째 농심배 우승으로 대회는 마무리됐지만, 25회 농심배는 한국 바둑을 넘어 세계 바둑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신진서 혼자 이뤄낸 단체전 우승이어서다. 한국 선수 4명이 모두 초반 탈락해 신진서만 남았던 절체절명의 상황, 한국 바둑 최후의 보루는 중국과 일본의 최강자 6명을 차례로 다 쓰러뜨렸다.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신화가 탄생했다.



위대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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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농심배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신진서 9단. 왼쪽부터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홍민표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 신진서 9단, 중국 농심 안명식 법인장. 한국기원


농심배는 흔히 ‘바둑 삼국지’라 불린다. 한·중·일 3개국에서 5명씩 출전해 최종 승자가 남을 때까지 연승 방식으로 승부를 내는 국가 대항전이어서다. 25회 대회는 초반 중국 셰얼하오 9단의 질주가 돋보였다. 무려 7연승을 달렸다. 그 사이 한국 선수 4명이 1승도 못하고 다 탈락했다.

2023년 12월 4일 2라운드 최종국이 부산에서 열렸다. 8연승을 노리는 셰얼하오 앞에 한국팀 최종 주자 신진서가 앉았다. 신진서마저 무너지면, 한국은 최종 라운드가 열리기도 전에 전원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신진서는 달랐다. 지난해 11월 삼성화배재에서 결승까지 올랐던 기세를 농심배까지 이어온 셰얼하오를 신진서는 가볍게 뿌리쳤다. 신진서의 위대한 행보가 시작됐다.

2024년 2월 19일 제25회 농심배 최종라운드가 상하이에서 시작했다. 한국은 신진서 1명, 일본도 이야마 유타 1명, 중국은 셰얼하오를 뺀 4명이 그대로 살아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이 우승하려면, 신진서가 중국과 일본 선수 5명을 다 꺾어야 했다. 그 기적 같은 드라마가 마침내 쓰였다. 19일엔 이야마 유타를, 20일부터는 중국 선수들을 물리쳤다. 20일은 중국 7위 자오천위, 21일은 중국 2위 커제, 22일은 중국 3위 딩하오를 한 명씩 꺾었다. 모두 완승이었다. 신진서는 이들 네 판의 바둑에서 중반 이후 한 번도 우세를 뺏기지 않았다. 특히 무려 103개월이나 중국 1위를 차지했던 커제는 힘 한 번 못 쓰고 물러났다. 신진서는 이날 승리로 커제와의 상대전적도 12승 11패로 앞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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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23일 드디어 최종국이 열렸다. 중국도 한 명만 남은 상황, 이미 중국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신진서의 마지막 상대는 중국 1위 구쯔하오 9단이었다. 지난해 란커배 결승전에서 신진서를 상대로 역전 우승을 거뒀던 강자다. 신진서가 세계대회 결승에서 외국 선수에게 역전패한 건 구쯔하오가 유일하다.

역시 역사는 쉽게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내내 우세했던 신진서가 끝내기를 앞두고 크게 흔들렸다. 우변 전투에서 신진서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형세가 확 넘어갔다. 70% 신진서의 흑 우세였던 바둑이 98.5% 구쯔하오의 백 우세로 뒤집혔다. 신진서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닷새째 이어지는 승부가 끝내 집중력 저하로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아!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아쉬운 패배를 예감하는 순간. 일찍이 초읽기에 몰린 구쯔하오도 실수를 저질렀다. 아마, 그때 신진서의 눈이 반짝였으리라. 예의 그 날카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신진서가 우상귀에서 패를 걸었고 바꿔치기 끝에 형세가 다시 역전됐다. 신진서의 흑 99.7% 우세. 우세는 마침내 승세로 바뀌었다. 중국의 마지막 자존심 구쯔하오는 1분 초읽기에 몰리고서도 1시간 넘게 버텼지만, 농심배의 새 종결자에 고개를 숙였다.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뒤 신진서는 “큰 판을 이겨서 뿌듯하다”며 “첫 판을 둘 때만 해도 먼길이라고 생각했는데 6연승까지 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진서는 “대국할 때 우승을 생각하면 안 되는데 생각이 나다 보니 나중에 좋지 못한 바둑을 둔 것 같다”며 “마지막까지 정신을 바싹 차리고 둬서 이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화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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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신진서의 끝내기 6연승은 농심배 25년 역사에서 처음 나온 기록이다. 농심배에서 7연승 기록은 이번 대회 셰얼하오를 비롯해 모두 4번 있었으나, 모두 대회 초중반 이뤄졌다. 우승을 다투는 마지막 승부에서 끝내기 연승 기록은 5연승이 최다였다. 그 기록을 이창호가 처음 세웠다. 그 유명한 2005년 제6회 농심배에서의 상하이 대첩이다. 그때도 이창호 홀로 남았었다. 이창호는 부산에서 열린 2라운드 최종국에서 승리한 뒤 상하이로 넘어가 파죽의 4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신진서에게도 끝내기 5연승 기록이 있다. 2021년 열린 22회 대회에서였다. 그때는 코로나 시국이어서 온라인 대국으로 대회를 치렀다. ‘신진서의 온라인 대첩’으로 불리는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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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농심배에서 대국장으로 걸어 가는 이창호 9단(오른쪽)과 중국 선수들. 두 나라 기사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홀로 남은 이창호가 저 중국 선수들을 모두 물리쳤다. '프로연우' 유튜브 화면 캡처


신진서는 이번에 농심배 통산 16연승의 대기록도 경신했다. 이전 기록은 이창호의 14연승이었다. 이창호는 1회 대회부터 6회 대회까지 6년간 14연승을 이뤘는데, 신진서는 22회 대회부터 25회 대회까지 4년 만에 달성했다. 그만큼 더 한국 바둑이 위기에 몰렸다는 뜻이고, 그만큼 더 신진서가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이뤄냈다는 의미다. 신진서는 파죽의 6연승으로 이창호가 갖고 있던 대회 최고 승률 기록 86.36%(19승 3패)도 넘어섰다. 현재 신진서의 농심배 통산 승률은 88.88%(16승 2패)다. 2월 23일 현재 신진서의 통산 승률 79%(784승 208패)를 고려하면, 신진서의 농심배 전적은 차라리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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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신진서가 이번 농심배에서 거둔 기록 중에 가장 통쾌한 기록은 따로 있다. 신진서 혼자 중국 선수 전원을 다 쓰러뜨렸다. 이 기록도 이번에 새로 쓰였다. 한 선수가 한 나라의 선수 전원을 소위 ‘올킬’ 시킨 것. 한·중·일 3국 중에서 전력이 가장 약하다는 일본도 이런 치욕은 겪지 않았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 랭킹 1위부터 3위까지 최정예 선수가 출전했다.



반상의 롤드컵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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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열린 농심배 13국에서 중국 딩하오 9단과 대국 중인 신진서 9단.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표정이다. 한국기원


한국 팬은 통렬한 승리에 열광한다. 젊은 바둑 팬은 지난해 ‘2023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의 쾌거에 비유한다. 지난해 롤드컵에서 한국팀 T1이 중국의 최강 4개 팀을 예선부터 8강, 4강 그리고 결승에서 차례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 있다. 중년 팬은『삼국지』에서 관우의 ‘오관 돌파’가 연상된다고 한다. 관우가 혈혈단신으로 조조 진영의 5개 관문을 통과하며 6명의 장수를 벤 일화가 신진서의 나 홀로 싸움과 닮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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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의 우승이 확정된 뒤 신진서 9단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든 중국 바둑 팬들. 한국기원


반면에 중국 바둑은 초토화 분위기다. 22일 딩하오가 패배했을 때 중국 바둑 팬은 이미 자국 바둑 사이트에서 ‘내일 중국 바둑 전멸하나’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혼자 남은 신진서가 다 이기는 게 가능한 일인가’ 등의 댓글을 남겼다.

한국 바둑의 허약한 저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팀은 신진서를 제외한 선수 4명이 1승도 못 거두고 전패 탈락했기 때문이다. 조훈현·이창호·이세돌 등 불세출의 영웅이 한국 바둑을 이끄는 게 전통이라지만, 신진서 한 명만 바라보는 현실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 ️ 농심배 우승 상금 5억원, 어떻게 나눌까

농심배는 단체전이다. 한 나라에서 5명씩 출전한다. 우승 상금이 5억원인데, 우승국이 독차지한다. 이 5억원을 어떻게 나눌까? 원칙은 있다. 출전 선수 5명이 상의해서 나눈다. 규칙은 없다. 그때그때 정한다는데, 지난해 기준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 상금의 70%가 출전 수당이다. 본선 진출 선수 5명 전원에게 7000만원씩 똑같이 나눠준다. 20%는 승리 수당이다. 한국 선수 중 승리한 선수들이 나눠 갖는 몫인데, 이번 대회에선 신진서만 승리했으니 신진서가 다 갖는다. 나머지 10%는 한국팀의 우승을 확정시킨 마지막 주인공에게 주는 우승 수당이다. 이것도 신진서 몫이다. 하여 신진서는 우승 상금 5억원 중 총 2억2000만원(세전 기준)을 받는다. 7000만원(출전 수당)+1억원(승리 수당)+5000만원(승리 수당).

우승 상금 말고 대회 주최사에서 주는 돈이 있다. 우선 대국료. 본선에서 한 판 둘 때마다 대국료 300만원을 받는다. 이번 대회에서 신진서는 모두 6번 대국을 했으니 신진서의 대국료 총수입은 1800만원이다. 연승 상금도 있다. 농심배는 3연승부터 1승을 더할 때마다 1000만원씩 연승 상금을 준다. 신진서는 6연승을 했으므로 연승 상금 4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대회 신진서의 수익 총액은 우승 상금과 대국료, 연승 상금을 더해 총 2억7800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화재배 우승 상금 3억원에 육박한다. 박정환·변상일·설현준·원성진 등 한국팀 선수 4명도 각자 7300만원씩(우승 상금 7000만원+대국료 300만원) 받게 된다. 올해 대회는 매우 희귀한 상황이 벌어져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도 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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