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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수소를 뽑아내자…무한한 ‘천연수소’ 향한 골드러시[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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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면 천연수소가 펑펑 나온다. 아마도 무한대로 계속 생성될 거다.’
이런 얘기, 어떤가요. 웬 허무맹랑한 소리냐고요? 틀림없는 사기꾼이라고요?

최근 유명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와 미국 지질조사국 같은 신뢰할 만한 기관과 과학자들이 이 스토리를 진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천연수소, 지질학적 수소, 백색(White)수소, 골드(Gold)수소 등. ‘지각에서 자연 생성되는 수소’를 일컫는 용어도 참 여러가지인데요. 어쩌면 세상을 바꿀 발견일지 모르는 천연수소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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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를 땅속에서 뽑아내서 쓴다면? 천연수소 또는 백색수소라는 놀라운 발견.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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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식 깬 천연수소

보글보글, 동굴 안에 고인 물속에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프랑스 그로노블알프스대학 연구진이 2월 9일 자 사이언스지를 통해 공개한 영상인데요. 활발하게 방출되는 이 기체의 정체는 바로 수소(H₂)입니다.

발견지는 알바니아의 깊은 지하에 있는 크롬철광 광산. 연구진 측정 결과 매년 최소 200t의 수소가 이곳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발견은 특정 오피올라이트(지표에 올라온 해양판 암층)가 경제적으로 유용한 수소 축적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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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구진이 대량의 천연수소를 발견한 알바니아의 광산. 사이언스가 공개한 짤막한 동영상엔 물속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도 담겼다. 영상은 사이언스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사이언스지


땅속에서 순수한 수소가 펑펑 솟아 나오고 있다고? 이게 무슨 상식을 깨는 소리인가 싶죠.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는 워낙 작은 데다 반응성이 커서 단독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게 그동안의 상식이었습니다.

‘탄화수소(석유나 천연가스)를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수소는 이미 산화되어 연료로 사용할 수 없다. 결합되지 않은 풍부한 수소를 얻고 싶다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태양 표면이다.’ 2007년 보수 색채의 미국 잡지 ‘뉴 아틀란티스’는 ‘수소 사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죠. 외계가 아닌 지구에선 수소를 얻으려면 복잡하고 값비싼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수소가 어떻게 미래의 에너지원이 되겠냐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식이 틀렸습니다. 지구에 수소가 묻혀있고, 그 양이 꽤 많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수소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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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수소 생성과 추출을 설명하는 다소 복잡한 그림. 천연수소는 (1)방사성 광물의 붕괴 에너지로 인한 물 분해 (2)철이 풍부한 암석이 물을 만나 녹스는 사문석화 과정 등으로 만들어진다. 사이언스  


수소를 자연 발생시키는 원리는 12가지 이상으로 추정되는데요. 연구자들은 그중 가장 많은 천연수소를 만들어내는 게 ‘사문석화’ 작용이라고 봅니다. 용어는 어렵지만 개념은 간단합니다. 철이 풍부한 암석이 매우 뜨거운 물과 반응해 녹슬면서 산화철과 수소가스를 생성하는 거죠. 일종의 ‘철이 풍부한 물웅덩이’에서 수소가 퐁퐁 솟아나고, 그 수소가 땅속에 갇혀서 모여있는 건데요. 그 반응은 무한대로 계속 일어날 거고 수소는 재충전될 겁니다. 그 암석과 물은 지구에 너무나 풍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죽은 동물(유기물)이 쌓여 만들어낸 석유나 천연가스(=매장량에 한계 있음)와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수소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요. 천연가스의 개질반응(분자구조를 바꿈)으로 만들거나(그레이수소), 전해조라는 설비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죠(그린수소). 그레이수소는 생산비가 저렴하지만(㎏당 1달러 안팎) 더럽고, 그린수소는 깨끗하지만 너무 비싼 게 문제인데요(㎏당 3~7.5달러). 천연수소, 즉 지하저장고에서 수소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면? 경제성을 따질 때 기준선이 되는 생산비 ㎏당 1달러 이하를 달성할 수 있으면서도(시추업체의 주장)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제로 수준입니다. 수소시대로 가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었던 수소 생산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죠. 물론 저장과 운송의 문제는 여전히 남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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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땅속에서 수소가 관찰된 건 꽤 오래전부터입니다. 100여년 전인 1921년 호주 지질학자들이 남부의 한 광산에서 높은 농도(80%)의 수소를 발견한 기록이 남아있고요. 냉전시대 구소련 과학자들이 지각 속 수소 발견과 관련해 남긴 연구기록은 500건이 넘죠. 튀르키예 안탈리아의 올림포스산에서 2800년 동안 꺼지지 않고 있는 신비의 불꽃 ‘야나르타쉬’ 역시 천연수소 존재의 증거입니다.

다만 아무도 수소를 찾아내려 애쓰지 않았죠. 돈이 된다고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동안은 석유나 천연가스를 찾으려고 땅을 파다가 실수로 수소를 발견하는 식이었습니다. 수소는 무색무취잖아요. 작정하고 달려들지 않는 한 매장지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는데요.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미 미국·호주·캐나다·스페인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수소 시추를 시작했습니다. ‘수소 우물’을 파고 있는 곳은 미국 네브래스카주와 캔자스주, 아프리카 말리의 부라케부구, 호주 남부 민라톤 근처, 스페인 피레네 산맥 기슭 등이죠. 이밖에 브라질, 콜롬비아, 오만에서도 천연수소가 발견됐고요. 프랑스 연구자들은 알자스-로렌 탄광지역을 유력 매장지로 보고 탐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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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기업 하이테라가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시추 중인 천연수소 우물. 하이테라


이 ‘수소 사냥꾼’ 기업에 기대를 거는 투자자들도 상당합니다. 호주의 하이테라(HyTerra)나 골드하이드로젠(Gold Hydrogen)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이미 수백만 달러를 유치했고요. 미국 스타트업 콜로마(Koloma)는 무려 2억4500만 달러를 유치했습니다. 특히 콜로마 투자자 중엔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설립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가 있죠. 빌 게이츠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천연 수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거대할 수도 있고 파산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면… 와우!”

지금의 이 열기는 딱 ‘수소 골드러시’라 부를 만합니다. 대규모 수소 매장지를 남들보다 먼저 찾아내기 위한 돌진이 시작된 거죠.

그중 눈에 띄는 선구자 중엔 말리 출신으로 지금은 캐나다 스타트업 하이드로마(Hydroma)를 운영 중인 알리우 디알로가 있습니다. 그는 말리의 시골마을에서 1987년 우연히 발견됐다가 버려졌던(저주받았다고 여겨서) 수소우물을 2012년 개발했죠. 거기서 나온 수소는 마을의 전기 공급원이 되고 있습니다. 말리에서 이미 24개의 수소우물을 시추한 그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수소는 인류의 게임체인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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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말리의 부라케부구 마을은 천연수소의 활용도를 입증해보인 사례다. 하이드로마 직원들의 모습. 하이드로마


“전 세계 천연수소 매장량 5조t”

자, 그런데 좀 냉정하게 따져보자고요. 아직까지 수소 시추는 꽤 리스크가 커 보이는 사업입니다. 일단 수소가 어디에 얼마나 많이 묻혀있는지,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얼마나 땅을 깊이 파야 하느냐에 따라 경제성 차이가 크죠. 현재 시추 중인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수소우물은 이미 3400m를 팠지만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시추의 안전성은 보장되는 건지, 기존 화석연료 시추방식을 그대로 쓸 수 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하고요. 기왕 뽑아낼 거라면 수소의 생성양을 자연 상태보다 확 늘릴 방법도 고안해 내야 할 겁니다.

아마 실제 지하에서 천연수소를 대량으로 뽑아내서 이걸 시장에서 판매하게 되기까진 수년이 걸리겠죠. 그래도 일단 분위기는 긍정적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서 천연수소 프로젝트를 이끄는 제프리 엘리스 박사가 17일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회의에서 미발표 연구결과를 미리 공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전 세계 지하에 최대 5조t의 수소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5조t이라니, 잘 와닿지 않는데요. 그는 “이 중 몇 퍼센트만 회수하면 연간 5억t에 달하는 모든 예상 수요를 수백년 동안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발이 불가능한 매장지도 많지만, 전체의 2~3%만 개발해도 전 세계 수소 수요를 충족시키기 충분할 거란 겁니다.

한편 USGS는 천연수소 매장과 관련해 가장 유망한 지역에 대한 평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죠. 일종의 ‘보물 지도’가 공개되는 셈입니다. 그럼 천연수소 개발 열기는 더욱 달아오를지 모릅니다. 다들 찾고 싶어하는 ‘천연수소의 사우디아라비아’는 과연 어디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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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천연수소 매장량이 확인되고 있지만, 아직 어디가 가장 크고 경제성이 높은지를 알아내긴 쉽지 않다. 현재 가장 활발히 탐사와 시추가 벌어지는 곳은 호주이지만 어디가 ‘수소의 사우디아라비아’일지는 연구가 좀 더 필요하다. 그림은 스페인 천연수소 개발업체 헬리오스 아라곤이 설명하는 천연가스 시추 방식. 헬리오스 아라곤


170년 전 석유시대도 그렇게 열렸다

땅속에 파묻힌 보물 같은 수소를 찾기 위한 무한 경쟁. 참 영화 같은 스토리인데요. 이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운 건 과거 석유시대 개막과 참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땅에 구멍을 뚫어 매장된 석유를 퍼 올린다’는 개념. 지금이야 다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데요. 1850년대까지도 지금의 ‘천연수소’ 개발론보다 더 미친 소리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때 연료로 쓰이던 가장 중요한 기름은 석유가 아니라 고래기름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고래의 지방을 끓여 녹인 기름으로 램프등을 밝혔죠(다행히 아직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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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대에 쓰인 고래기름 램프.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소장품.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출판한 1851년, 당시 포경은 미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산업이었습니다. 연간 8000마리의 고래가 도살돼 전 세계 등잔에 기름을 제공했죠. 고래기름과 포경업의 지위는 매우 단단했습니다. 포경업자들은 다른 기름(예-냄새나는 돼지기름)이 고래기름을 대체할 거란 신문기사를 두고 “사기꾼들의 소음”이라며 코웃음 쳤죠.

그때도 석유가 있긴 있었죠. 하지만 암석층 틈으로 흘러나오는 걸 모으는 수준이었습니다. 땅을 드릴로 뚫으면 땅속에서 석유가 펑펑 솟아나오지 않을까. 당시로선 몽상에 가까운 이런 생각을 한 모험가 중 하나가 에드윈 드레이크였습니다. 그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펜실베이나주 타이터스빌에서 1년 넘게 땅을 팠죠. 투자금이 바닥나기 직전, 그는 최초로 석유를 시추하는데 성공해냅니다. 1859년 근대적 석유산업의 시작입니다. 이로써 고래기름은 등유로 대체됐고 포경산업은 순식간에 쇠락합니다.

고래기름에서 석유로의 전환이 알려주는 것은? 뉴욕타임스의 16년 전 기사 속 표현을 빌리자면 “한 시대의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원이 다음 시대의 유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더 새롭고 깨끗하고 적합한 에너지원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한순간에 대체될 수 있는 거죠. 그럼 다음번엔 혹시 그게 수소일 수도 있을까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하나 알아둘 점은 그 석유 유전을 처음 개발한 에드윈 드레이크의 그 이후 이야기입니다. 그는 유전 개발로 약간의 돈을 벌었지만 결국 말년엔 무일푼으로 잊혀지고 말았죠. 결과적으로 동시대에 미국의 ‘석유왕’이 된 건 석유를 뽑아내는 시추업자가 아니라 석유를 정제하는 정유업자 록펠러였습니다.

어쩌면 천연수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이야 누가 더 빨리 시추에 성공하느냐를 두고 경쟁하지만 빨리 간다고 진짜 승리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참고로 쉘, BP, 셰브론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은 아직 수소 시추에 뛰어들지 않은 채 관망 중입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그들이 나선다면 판도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By.딥다이브

천연수소와 관련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점 중 하나는 발견되는 곳이 석유나 천연가스와 겹치지 않는다는 거죠. 솔직히 그래서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땅속 깊은 곳엔 석유 말고 수소도 묻혀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된 천연수소가 세계 곳곳에 매장된 것이 확인됩니다.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거의 없어 친환경적이면서도 생산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수소입니다.

-천연수소 시추에 뛰어드는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소 골드러시의 시작입니다. 빌 게이츠가 지난해 투자한 콜로마처럼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는 곳이 생겨났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지각에 매장된 천연수소가 5조t에 달한다고 봅니다. 이 중 아주 일부만으로도 전 세계의 수백년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양입니다.

-하지만 정말 경제성과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요. 상업화까지 가려면 수년은 더 걸릴 텐데요. 과연 고래기름을 대체했던 석유처럼, 천연수소가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열게 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상상력으로 많은 부분을 채워야하는 단계입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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