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패션 브랜드는 자신을 각인시킬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로고와 폰트, 쇼핑백, 매장 인테리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까지 사람들의 감각이 닿는 부분이라면 무엇이든 통제하여 일관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구찌 제품을 구입했다는 걸 뽐내고 싶어도 사람들이 구찌를 모르면 소용없다.
특정 색상의 사용은 아주 전통적인 방식이다.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의 오렌지나 티파니의 블루는 오랜 시간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각인이 되었다. 사실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색과 브랜드를 연결한다는 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그래도 연결이 잘되면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아진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
버버리는 크리스토퍼 케인, 리카르도 티시에 이어 2022년 대니얼 리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전임인 리카르도 티시는 2018년 버버리 로고의 폰트를 현대적으로 교체하고 모노그램을 적극 활용했는데, 대니얼 리는 폰트를 다시 전통적인 분위기로 교체하고 대신 밝은 파란색을 전면에 내세웠다. 버버리의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낯설지만 상큼한 밝은 파란색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버버리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려주었다(사진).
이렇게 색상이 다시 활용되는 건 패션의 변화 덕분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고급 패션에서 바람막이와 스니커즈 같은 스트리트 패션이 주류를 이뤘고, 따라서 시그니처 컬러 같은 은은한 브랜드 각인 방식은 눈에 띄기 어려웠다. 더 자극적인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커다란 로고, 프린트가 많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최근 패션에서 다시 조용한 럭셔리 등 섬세함,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생겨나면서 색이 돋보일 여건이 마련됐다. 발렌티노의 핑크, 보테가 베네타의 그린처럼 작은 규모로 색상을 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디어의 홍수 속 ‘과잉 트렌드의 시대’에 신선한 시사점을 던진다. 진중하고 은은한 브랜드 각인 방식의 재등장이 과잉 시대에 얼마나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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