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아르헨 밀레이 취임 한달… 전속력으로 톱질했지만 “아직 첩첩산중”

조선일보 부에노스아이레스=서유근 특파원
원문보기
아르헨 밀레이 취임 한달 점검
10일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앞줄 오른쪽)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 의사당 앞에서 취임 연설을 마친 후 부통령 빅토리아 비야루엘(앞줄 왼쪽)과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밀레이는 1983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의회 내 연설을 생략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10일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앞줄 오른쪽)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 의사당 앞에서 취임 연설을 마친 후 부통령 빅토리아 비야루엘(앞줄 왼쪽)과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밀레이는 1983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의회 내 연설을 생략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8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마트. 지난달까지 보였던 ‘공정 가격’(precios justos)이라 적힌 팻말들이 사라졌다. 공정 가격은 이전 정권 때 생필품 약 2000종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내리며 정부가 붙인 가격이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하고 가격 책정을 시장에 맡기면서 공정 가격은 폐지됐다. 이날 마트를 찾은 한 손님은 “1.5L 콜라 한 병이 650페소에서 1700페소가 돼 세 배 가까이로 올랐다”며 “월급은 그대로인데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한 페로니스트(대중 영합 주의자)들의 포퓰리즘을 단번에 잘라내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전기톱 계획’으로 집권에 성공한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는 경제학자 출신 ‘정치 아웃사이더’로서 신속한 개혁 드라이브를 펼쳐 경제난 극복과 국가 정상화 기대를 키우고 있다. 반면 ‘아르헨의 트럼프’란 별명답게 정책을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 일부 제동이 걸려 초보 정치인으로서 한계도 드러냈다는 평가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밀레이는 취임 3주 만에 1000개에 달하는 개혁 법령을 발표·시행했다. 취임 열흘 만인 지난달 20일 오후 9시쯤 밀레이가 “경제 발전을 막는 각종 문제를 신속히 개선하겠다”며 긴급 대통령령(DNU) 300개를 즉시 시행한다고 발표하자, 이날 자정 무렵 의회 주변 거리에서 시위대 수백명이 냄비 등을 두드리며 “밀레이는 독재자”라고 외쳤다. 이날 조치 중 노동 개혁 부문에서는 기업의 신규 직원 채용 시 고용 의무가 없는 수습 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늘리고 과도한 퇴직금 보상을 줄였다. 기업들이 손쉽게 인력을 채용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토록 한다는 의도다. 의료, 제약, 항공, 관광 등 일자리 창출이 많은 분야에는 정부 규칙 개정을 통해 기업 간 경쟁을 장려토록 했다. 주택 임대차, 토지 소유, 수출 통관 등에서 국민 불편과 경영 지연을 불러온 행정절차를 폐지하는 등 규제를 줄였다. 국가 재정을 축내고 정권 낙하산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평가를 받은 국영기업을 더 쉽게 민영화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변경했다.

지난달 27일에는 헌법상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 세법, 형법, 선거법을 비롯한 각종 법안 개정안(옴니버스법) 664개를 발표하고 의회에 제출했다. 이 가운데는 도로를 막아서는 시위와 주도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법안도 포함됐다. 한편 의회가 내년 말까지 세금, 연금, 에너지, 치안 등에 대한 일부 입법권을 대통령에게 이양한다는 등 다소 과격한 내용도 들어갔다.

지난달 27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법원 앞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경제 개혁에 반대하는 노조 등 반정부 시위대가 손가락으로 승리를 뜻하는 'V 자'를 그리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밀레이 대통령은 공공 부문 축소, 규제 철폐, 노동 개혁 등 1000개에 달하는 법령을 발표·시행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법원 앞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경제 개혁에 반대하는 노조 등 반정부 시위대가 손가락으로 승리를 뜻하는 'V 자'를 그리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밀레이 대통령은 공공 부문 축소, 규제 철폐, 노동 개혁 등 1000개에 달하는 법령을 발표·시행했다. /AP 연합뉴스


법 개정이 필요없는 분야에서도 상품 가격 책정을 시장에 되돌린 것을 비롯해 그간 국가가 간섭, 통제하던 각종 민간 부문에서 손을 떼고 자율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금융 부문에선 외환시장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첫 단계로 페소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달러당 366페소이던 공식 환율을 취임 직후 단번에 800페소 이상으로 올렸다. 아르헨티나는 정부가 승인하는 ‘공식 환율’과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 환율이 공존해 왔는데 정부 공식 환율을 시장 환율에 더 가깝게 조정한 것이다. 한편 공공 부문 지출을 축소하겠다며 지난해 채용된 계약직 공무원 5000명의 계약은 연장하지 않았다.

이 같은 조치 이후 아르헨티나 증시의 메르발 지수는 8일 종가 기준으로 밀레이 당선일(지난해 11월 19일) 대비 71% 상승했다. 시장 자유화와 경제 회복 기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실물경제엔 충격이 발생하고 있다. 페소화 평가절하, 가격통제 폐지, 보조금 축소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고 가처분소득이 줄었다. 8일에는 정부가 가스 요금 중 생산원가에 들어가는 보조금을 축소한다고 밝혀, 4월까지 가스 요금이 최소 2.4배 인상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고됐다. 노조 등 좌파 진영에서는 “밀레이 때문에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현지 언론들도 “밀레이가 과격한 정책과 미숙한 소통으로 개혁 추진에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보수 성향 일간 라나시온은 밀레이의 개혁 방향에 대해 긍정 평가하면서도, 최근 사설 등을 통해 반대파와의 소통과 헌법 준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의회에 제출한 개혁 법안들도 난항이 예상된다. 밀레이의 소속당 ‘자유의 전진’이 상하원 모두 제3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0일 노조 등 주도로 열린 첫 번째 반정부 집회는 당초 예상의 10%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밀레이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조는 24일로 전국적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해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 ☞ 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부에노스아이레스=서유근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손예진 현빈 아들
    손예진 현빈 아들
  2. 2하나은행 사키 신한은행
    하나은행 사키 신한은행
  3. 3김동완 가난 챌린지 비판
    김동완 가난 챌린지 비판
  4. 4쿠팡 정부 진실 공방
    쿠팡 정부 진실 공방
  5. 5황하나 마약 투약 혐의
    황하나 마약 투약 혐의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