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간판 박혜진이 지난달 29일 서울 성북구 팀 훈련장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발바닥 부상과 번아웃이 겹쳐 약 7개월간 팀을 떠났던 박혜진은 ‘신인의 마음으로 뛰겠다’며 데뷔(2008∼2009시즌) 때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팀에 복귀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마음은 신인이다.”
최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박혜진(33)은 이렇게 말하면서 “몸은 신인 같지 않지만…” 하고 웃었다. 쇼트커트 스타일 머리가 눈에 띄었다. 박혜진은 “이렇게 짧은 머리는 신인 시절(2008년)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해보겠다는 각오로 짧게 잘랐다”고 했다.
프로 데뷔 후 우리은행에서만 16시즌째 뛰고 있는 박혜진은 그동안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7번이나 경험했다. 여자프로농구에서 박혜진보다 챔프전 우승을 많이 한 선수는 없다. 비결은 연습,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었다. 동료 선수들은 박혜진을 두고 “하루 종일 체육관에서 산다”며 ‘체육관 귀신’이라고 불렀다.
그랬던 박혜진은 우리은행이 2022∼2023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한 올해 4월 “좀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팀을 떠났다. 박혜진은 “발바닥 부상으로 몇 년간 치료와 재활 등을 거치며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다행히 팀도 내 입장을 존중해 줬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구단 프런트는 “좀처럼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선수라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년도 좋으니까 푹 쉬고 돌아오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속은 타들어 갔었다”고 했다.
박혜진은 지난달 1일 팀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 개막을 나흘 앞두고서다. 체육관을 벗어나 있던 약 7개월 동안 쉬고 또 쉬었다. 박혜진은 “매년 시즌이 끝나면 길어야 한 달 반 정도 휴가를 얻는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도 바쁘게 계획을 짠다. 하지만 이번엔 기약 없이 쉬다 보니 뭘 급하게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침에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켜 놓고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던 적도 있다. 나중엔 아침에 눈을 떠도 딱히 할 게 없어 ‘오늘 뭘 하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두 처음 해본 경험이었다”고 했다. 박혜진은 팀을 떠나 있는 동안 고향인 부산 집에서 지냈다.
박혜진은 시즌 네 번째 경기부터 다시 코트를 밟았다. 박혜진은 “내가 농구 천재가 아닌 이상 팀에 복귀하자마자 잘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차분하게 1, 2분이라도 뛰면서 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박혜진은 복귀 후 6경기에서 평균 28분 9초를 뛰었고 평균 9.8점, 6.5리바운드, 4.2도움을 기록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은행이 BNK를 84-66으로 꺾은 4일 경기에서 박혜진은 10점, 11리바운드, 11도움으로 개인 통산 두 번째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4쿼터 시작 때 15점 차로 앞서 여유가 있었지만 박혜진을 계속 뛰게 하면서 트리플더블 작성을 도왔다. 기록 달성으로 박혜진의 사기가 올라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위 감독은 “코트 밖에 있는 감독이 아무리 소리 질러가면서 지시를 해도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며 “그런 한계를 코트 안에서 알아서 해결해 주는 선수가 혜진이다”라고 했다. 또 “우리 팀의 시스템을 가장 잘 아는 선수다. 혜진이가 돌아와서 경기뿐 아니라 훈련을 할 때도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박혜진은 몸 상태를 가능한 한 빨리 끌어올려 팀을 떠나 있던 시간을 만회하고 싶어 한다. 박혜진은 “코트 위에 서면 잘하고 싶고, 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짜증도 난다”며 “예전의 모습을 빨리 되찾아 팀에 제대로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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