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어맨다 킴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
1974년 미국 뉴욕, 모처럼 돈이 생긴 백남준은 골동품 가게에서 작은 부처상을 산다. 가난한 살림에 부처상에 돈을 쓰다니. 백남준은 아내 구보타 시게코에게 말한다. “재밌는 걸 할 거야.”
백남준은 작은 TV 앞에 부처상을 세운다. 부처상은 폐쇄회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찍은 TV 화면 속 얼굴을 지그시 바라본다. 동양 문화의 신성한 상징 부처와 현대문명의 상징 TV의 만남에 세계는 열광했고, 백남준은 ‘미디어 아티스트’의 선구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 그런데 화면 속 자신의 얼굴에 푹 빠진 부처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50년이 흐른 지금 지구 곳곳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화면 속 ‘나’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보며 산다.
“백남준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우리 삶에 하는 역할, 새로운 기술의 진보가 지닌 긍정적 영향과 위험에 대해 섬뜩할 정도로 정확히 예견하고 있어요. 그는 이 시대 모두가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사람입니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어맨다 킴 감독(33)은 말했다. 백남준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이 6일 개봉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킴 감독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영화는 가난한 나라 한국의 특권층 출신인 백남준이 일본과 독일, 미국을 거치며 미디어 아티스트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담았다. 생애 대부분을 타지에서 보낸 그가 왜 ‘소통’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는지,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어쩌다 ‘해체’와 ‘파괴’에 깊이 빠지게 되었는지 다각도로 조명한다. 백남준과 그의 옛 동료 및 가족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백남준은 천재 아티스트 그 자체다.
어맨다 킴은 어린 시절 미술관에서 본 백남준의 작품이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회상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한동안 최면에 걸린 듯했다. 성인이 되어 백남준의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어느 날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흥미로운 사람인데 왜 어디에도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없는 거지?’
의문을 곧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낡은 신문기사나 테이프 더미를 헤집었고, 백남준의 해결되지 못한 저작권 문제를 다방면으로 조사했다. 지난한 설득의 과정도 필요했다. 제작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백남준이 진정한 글로벌 노마드(유랑민)였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관련 자료가 온갖 언어로 세계 각지에 숨어 있었거든요.”
백남준에게는 ‘괴짜’, ‘천재’, ‘파괴자’, ‘크리에이터’, ‘아웃사이더’, ‘예언자’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백남준의 개인적 삶은 복잡한 그의 예술세계 만큼이나 많은 굴곡이 있었다. 엣나인필름 제공 |
백남준이란 인물의 복잡함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작업의 난도는 올려놓았다. ‘이제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싶을 때 백남준은 감독의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킴 감독은 “백남준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로 상당히 애매모호하다”며 “그의 진면모를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과 끈기, 열린 마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남준에게 매료된 것은 어맨다 킴 혼자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세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미나리>의 배우 스티븐 연은 총괄 프로듀싱과 내레이션을, 지난 3월 작고한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을 맡았다. 킴 감독은 자신이 한 것은 ‘연락’뿐이었다고 했다. “백남준에 대한 좋은 기억과 사랑을 가진 분들이 기꺼이 도움을 자청하고 참여해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훌륭한 아티스트들에게 연락만 했고, 모두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어맨다 킴은 2006년 세상을 떠난 백남준의 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위대한 예술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그는 지극히 독창적인 사상가로, 인생에서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고 생각하며 항상 도전했어요. 그의 이야기와 작품은 지금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러닝타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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