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거머쥔 이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이미 역사가 스포일러나 다름없다. 그들에게 맞서 끝까지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1931년생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모티브다. 군사반란 약 한 달 전인 1979년 11월 19일 제7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된 그는 군사반란에 끝까지 저항한 군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군사반란 후 모진 조사 끝에 6개월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가족도 비극을 겪었다. 시름에 빠진 부친이 1980년 4월 별세했고, 1982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수석입학한 했던 외아들이 실종돼 숨진채 발견되는 사건이 이어졌다.
그는 이후에도 12.12 군사반란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1993년에는 여러 장성들과 함께 전두환 등을 반란, 내란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한국증권전산과 르메이에르 회장을 역임했으며,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제16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0년 7월 별세했다. 2년 뒤에는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제예편 이후에도 12.12 군사반란에 대판 비판을 계속했던 그는 1988년 행방불명됐고, 이듬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34살의 나이로 숨진 그는 당시 소령이었다. 사후 10여년이 지난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다. 비극은 이어져 시력이 좋지 않던 아내는 충격으로 완전 실명했으며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다 1991년 실족사했다.
굴욕적인 처분으로 그치지 않고 장교로서 받은 급여를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권리도 뺐겨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1987년 대선 직전 김영삼과 손잡았으나 노태우가 당선되자 곧 정계를 떠났다. 이후 복권돼 예비역 육군 대장 자격은 물론 급여, 연금 등을 돌려받았다. 2002년 6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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